다시 ‘세 가지 인간 정주지‘ 이론으로 돌아가자. 총탄이 배치된 국경, 사회적 증오, 계층적 증오, 경쟁의 광기, 이 모두는 바로 ‘삶을 위한 투쟁’ ‘시간이 돈이다’ 등과 같은 부끄러운 말들이 난무하는 돈벌이, 즉 사업 때문에 생겨났다. - P44
핵무장을 중단하자. 지구 위에 올바른 인간 정주지를 정착시키자. - P45
첫번째는 소와 말의 의존에서 벗어나 트랙터를 이용하게 된 ‘농경지’이다. 여기에는 절박한 내재적 혁신이 있었다. - P45
두번째, ‘교역을 위한 방사형 도시’는현대에 심각한 도시 팽창을 일으켰고, 대탈출의 해법을 ‘선형 산업 도시‘에서 찾게 되었다. - P45
‘선형 도시‘ 라는 세번째의 인간 정주지는 갈등에 맞서며 증오와 이기주의를 불식시킨다. - P45
희망이 없는 밤을 보여 주는 그림 (p.42)과 완전히 자유로운행동, 광대한 프로그램, 현대사회를 위한 무한정의 해법, 말하자면 기쁨을 주는주거(거주 공간), 친환경 녹색 공장작업 공간), 육체와 정신을 위한 여가(휴식 공간), 그리고 이동 동선을 보여 주는 그림 (p.43), 두 가지 그림 중에서 선택만이 남았다! - P45
삶을알아내고 삶을 따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의 생각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이십 년이 걸리는 법이고, 평가를 거쳐 이해되기까지는 삼십 년을 기다려야 하며, 오십 년이 지나서야 적용되어 진화의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 P46
따라서 우리는인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해결하지못할 불가능이란 없으며 모든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념을 가지고 문제를 탐구하면서, 모든 물질, 기술, 생각을 향해 손을 열어야 한다. - P50
찬디가르에 계획된 ‘열린 손‘은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나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제 조화의 증거로서 실현되어야 할 때가되었다. - P50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장관님, 동료 및 친구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간디의 제자 네루(J. Nehru)가 만들고자 했던 도시, 찬디가르의 하늘아래에 ‘열린 손‘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 P51
건축가라는 소명의식을가진 우리는 작업을 함으로써 정체성을 발견한다. 작업을 위한 간단하고 진실한원동력, 이것은 물질과 상상과 발명과 용기,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분출되어야 하는 힘이다. - P53
위험 없이는 강해질 수 없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정신, 우리의 재산, 우리의 가족, 우리의 처지, 이 모두는 항상 위험을 안고 있다. 구속적 장애물, 법적 규제, 무자비한 야심, 사업가들의 속임수를 제외하면 우리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원망하지 않는다. - P53
우리는 언제나 투쟁을 하면서 산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태도나, 우리의 인상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우리의 작품이다. - P53
작업은 천천히, 천천히, 매우 천천히 점진적으로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작품에의 충동은 쉬지 않고 물리 법칙과 지식 법칙을 두드려댈 만큼 생동적이어야 한다. - P53
그렇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노력의 고결한 결실인 사유 사유는 죽음을 넘어 운명에 승리를 거두고, 다른 미지의 차원으로 이끈다. - P57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 생명과 자연과 우주의 기본 법칙이 서로 정확히 만나게 되는 곧은 선을 재발견해야 한다. 바다의 수평선과 같이 절대 꺾이지 않는 선말이다. - P58
41. 르 코르뷔지에는 한 번도 건축을 디자인의 영역으로 간주한 적이 없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 중 하나는 중력이며, 따라서 형태보다 구조를 더 앞에 위치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이십세기 근대주의 건축가들도 건축은 축조 예술(art de bâtir)이며, 무엇보다 건설(construction) 또는구축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 P69
이처럼 르 코르뷔지에는 여러 개의 수평 바닥판을 걸쳐서 덮는 하나의 거대한 유리 대신, 태양의 고도와 방향을 통제하여 조망과 채광과 환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건축적 형태로서의 차양 장치, 즉 브리즈 솔레유를 개념화했다. - P69
48. 르 코르뷔지에는 193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화학제품협회의 회장을 만나 플라스틱으로 칫솔, 컵 등 생활 필수품들을 얼마나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플라스틱이 건설 산업에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70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허위적인 종언 이후의 ‘그저 그런 삶mere life’을 ‘진정한 삶real life’과 대비시킨다.
그저 그런 삶’은 자신의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는 삶이며, 자신의 기득권이 아무 탈 없이 그대로 자자손손 보존되기를 매주 기도하는 삶이다. 그것의 정치적 버전이 자유민주주의다.
우리가 뭔가 인위적으로 단절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인식은 어떤 불길한 행위자가 우리를 항상 위협하고 있다는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편집증적 전망에서 테러와 테러리스트들은 ‘추상화’된다. 즉 구체적인 사회적·이데올로기적 네트워크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사회 환경을 환기시키는 모든 설명은 은밀하게 테러를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기각된다.
"현실의 충격은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와 텍스트성 중심의 문화연구라는 고립된 탑을 무너뜨렸다."
‘문명의 충돌’ 전도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실 미국 내에서 ‘근본주의’의 위협은 오히려 내부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가난한 제3세계에 대한 책임과 죄의식을 갖는 대신에 미국의 선택은 ‘이제 우리가 피해자다!’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의 경찰이라는 예외적인 역할을 강력하게 재단언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미국에 대한 원한이 미국이 지닌 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결여 때문에 빚어지기라도 했다는 듯이.(『실재의 사막』, 73쪽)
정신분석에서 행복은 ‘욕망의 배반’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일단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충족되어선 안 된다. 과도한 소비는 불행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바닥나는 물건도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일이 잘못됐을 때 비난할 수 있는 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지만 결코 덜 중요하진 않은 조건으로 ‘다른 장소other place’의 존재를 들 수 있다. 동유럽인들에겐 소비 천국으로서 서구가 그 다른 장소였다
주체가 자기 욕망의 불일치 안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행복의 대가이다."(『실재의 사막』, 89쪽)
즉 실제로는 욕망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체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우리는 타자를 우리의 적으로, 거짓 지식의 소유자 등으로 환원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그녀의 안에는 항상 다른 사람의 헤아릴 수 없는 절대적 심연이 들어 있다.(『실재의 사막』, 99쪽)
바디우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 자주 유해하며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편다. 특히 ‘주관적으로는 정당한 행동’일 때 그렇다.
"누군가 인류의 진정한 단 하나의 적을 죽인다면, 그는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실재의 사막』, 100쪽)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면, 냉소주의는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면서도 한다"이다.
"지배이데올로기를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우리에 대한 그 지배를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실재의 사막』, 104쪽)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정보도 많았으나, 최초의 아파트를 정하는 것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아파트에 관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대부분 비판일색이다. 기획과 달리 전체를 꿰뚫는 관점이나 대안은 여전히 제시하지 못한다. 새로운 점은 ‘아파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가 문제’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