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오늘날 가정에서 자기본연의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잠든 부성애를 일깨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자신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전무하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불치병에 걸린 친구아들을 생각하며 한숨과 안타까움으로 소설을 썼고 소설속의 주인공아들을 건강하게 회복시킴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꿈과 재능을 좇아 이혼을 하고 어린 아들을 뒤로 한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다움이 엄마, 여성잡지 기자를 거쳐 출판사 근무를 하며-작가 자신의 이력과 같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다움이 아빠 정호연, 백혈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골수검사와 이어지는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는 10살 소년 다움이.
내용의 흐름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다움이와 다움이 아빠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형식이다. 다움이는 마치 일기를 쓰듯 자신의 감정을 독자에게 이입시키며 다움이 아빠의 독백은 소설 특유의 대화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움이 부자를 중심으로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투병생활과 여러 가지 갈등이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게 한다. 어려움 가운데도 다움이가 가진 신앙과 다움이 아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후배 여진희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도록 골수를 기증하는 일본여성 미도리가 다움이 부자의 생명의 끈이 된다. 희망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어려움들은 매우 현실적인 데서 온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내키지도 않는 시를 써서 돈을 벌고, 신장을 팔기 위해 건강검진을 하다가 뜻밖에도 간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화가로서 성공한 다움이 엄마에게는 조금도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는 마침내 각막을 팔아 아들의 골수이식 비용을 마련한다.
중병에 걸린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도 없이 헌신적으로 아들을 살려내는 그가 바로 '가시고시'인 것이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난 후 혼자 남아 알들이 부화되어 제 갈 길로 헤엄쳐 갈 때까지 사력을 다해 아버지의 역할을 해내고 결국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는 '가시고기'. 독자들은 이쯤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여성이라면 자신의 아버지, 남편의 소중함에 대해, 그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들의 헌신적인 사랑은 직장과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우리들을 지켜준 원동력이었음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부성애와 모성애가 대치되는 듯한 줄거리 전개와 비극적인 결말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주인공 정호연의 대쪽같은 성품이다.
결말에서 다움이는 엄마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따스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다움이를 잘 키워준 전남편과 화해하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었다면, 책을 읽는 내내 죄책감에 사로잡힌 여성독자들의 가슴 한켠을 가볍게 해 주었을 것이다. 결굴 작가는 성 대결로 부성애를 부각시키려 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움이에게 신앙을 갖도록 도와 준 영재누나와 아무런 조건 없이 골수를 기증한 미도리 역시 여성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처참한 현실뿐만 아니라 다움이 아빠의 자식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과 이들과 함께 했던 주변인물들의 아낌없는 사랑이었다. 여유 없이 바쁘고 힘들 때 걱정과 사랑으로 나의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 준 가족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