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재 동문선 현대신서 41
아티크 라히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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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리내어 울고 싶을 정도로 감정을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무리 슬퍼도 그저 속으로만 삭혀야 하는 것이지요. '흙과 재'에서의 다스타기르의 슬픔은 후자에 해당되는 듯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살아갈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손자 야씬은 귀가 멀어서 할아버지의 슬픔을 받아줄 수가 없지요.

이 책은 명분도,내용도 없는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다스타기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원망하고,가족을 그리워하고,손자를 안타까워합니다. 이 모든 것을 속으로만 뇌까리며,그는 이 참담한 소식을 탄광에 일하러 간 아들에게 전하러 가야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형벌이지요.

우리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처참하게 죽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살아남아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며,처참했던 전쟁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정신대의 할머니나 히로시마의 원폭투하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픈 기억을 안은채 평생을 괴로워합니다. 혹은 육체적 상처로 괴로워하고, 혹은 정신적 상처로 괴로워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고통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게다가 평생을 갈 정도의 고통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지요.

우리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합니다. 그저 겉만 보고 '괜찮을 거야'라고 짐작해버리지요. 하지만 다스타기르의 독백을 따라가다보면,야씬의 '왜 소리를 다 삼켜버린거지?'라는 얘기를 듣다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을 감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겪어보지 못한 전쟁의 아픔이 아무리 추상적이어도 말이지요.

이 책을 읽다보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벌써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비관적인 설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아들에게도 일종의 배신을 당한채 터덜터덜 걸어나가는 다스타기르의 뒷모습을 응시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결국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만 할것 같습니다. 가스타기르의 처참한 모습에서라도, 야씬의 처량한 모습에서라도. 그것이 아무리 말라붙은 한조각의 희망이라 해도.

결국 우리는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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