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헤세전집 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헤르만 헤세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책의 지은이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자꾸 까먹기만 하고 결국은 다 기억하지도 못할 학문을 왜 자꾸 해야만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학문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문을 계속 해야만 한다고, 그는 대답했다.

싯다르타의 주인공 싯다르타도 그러하다. 처음에 그는 아버지와 스승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알 수 없는 패배감과 회의감을 느끼며 주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 고행자의 체험, 고타마 싯다르타와의 만남과 깨달음, 카말라와의 만남과 세속적인 체험, 뱃사공과의 생활, 아들과의 갈등을 거치면서 그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혜'를 알게 된다.

우리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던,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찾고 싶어하고, 그것을 찾아내기 위한 지혜를 얻기를 원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고난을 적게 겪으면서 지혜와 진리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교육'이라는 것도 그 방편 중의 하나로 제시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무수히 널려있는 지식을 돌아다니며 배우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다르면서도 여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식을 종합해서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고, 그러한 가르침을 엮어놓은 '책'을 기초로 하여 '교육'은 숭고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의 교육을 보라. 과연 교육이 그렇게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진리와는 거리가 먼, 잡다한 지식만을 가르치기 바쁜 학교, 자식을 위한다며 봉투를 내밀며 정작 자식들을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는 일부 부모들, 해마다 올바른 교육을 실시한다며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정부. 이것은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얘기일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혼란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 '싯다르타'는 좋은 책이며, '헤르만 헤세'도 너무나 훌륭한 작가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흐르는 삶과 진리와 배움에 대한 메시지는 조용하게 가슴을 적셔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너무 '이상적'이라는 단점이 숨어있었다. 그것을 집어내면서도 나의 가슴은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헤세가 이런 대작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적 재능도 한몫 했겠지만. 사색하고 탐구하게 할 수 있었던 교육환경, 나아가서 사회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헤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고, 자연과의 생활을 꿈꾸며 사색하고 사색하며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만약 헤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학교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다면, 아마 사회에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정박아 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후에 문학작품을 출시하려고 시도해도, 출판사에서 받아나 줄까? 요새는 재밌기만 하면 받아주니 좀 기대를 해도 좋겠다. 하지만 후에 출세해도 학력의 벽은 끓임없이 그를 절망하게 할 것이다. 아마 후에 나이가 들어서 어느 대학이라도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까?

지금도 아마 헤세 같은 천재들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어딘가에서 사그러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같은 둔재는 저만치 밀어두더라도, 축복받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여기를 떠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의 능력만큼 그것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의 '진리'중 하나일 테니까. 그 단순한 진리마저도 짓밟아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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