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세요 1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똥에 관하여.........)
사실 똥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글을 쓸려니 똥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야후 사전을 클릭해보았다. '똥-사람이나 동물이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어 항문으로 나오는 물질. 사람의 것을 가리키는 말로는 점잖은 자리에서 잘 쓰지 않으며,흔히 '대변'이라는 말을 씀. 대변.분.' '점잖은 자리에서는 잘 쓰지 않으며'라는 설명을 보며 웃음이 픽 나왔다. 역시 똥은 하는 일의 중대성과는 달리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똥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항문만큼 민감한 사고체계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바꾸어 얘기하면 그 동안 우리가 항문에 대해서 가져왔던 생각은 '항문이 하는 일은 보잘것없다'라는 말도 된다. 그러니 그 결과물인 똥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항문이 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항문이 하는 일중의 하나인 배설의 욕구는 식욕,성욕과 더불어 1차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욕구라고도 할수 있지만 그 단순성의 쾌감은 인간이 가장 절실하고 뼈저리게 느낄수 있는 감정이다. 그 순간만큼은 인간이 가장 순수한 쾌감을 느낄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며칠동안 막혀있던 똥이 시원하게 쭉쭉(죽죽이 아니라 쭉쭉이다) 나오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지 않을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 그러한 쾌감을 느껴보지 못했다거나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경원시하는 사람들이 과연 더 높은 고차원적인 욕구를 진정 느낄 수나 있을까? 즉,똥을 누는 그 순간만은 어느 인간도 가식을 떨치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똥을 누면서 시원해하는 그 모습만큼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면 그 명쾌함과 단순함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아마 세상의 다툼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이것을 우리가 학문을 대하는 자세에 연결시킨다면 어떨까. 우리가 하찮이 여기는 똥 앞에서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가 학문과 진리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지지 않을까. 김용옥의 말대로 철학은 대단한 곳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가장 비근한 데서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깊게 천착해들어가는데 철학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김용옥의 탐구의식이 놀라울 뿐이다.

(성에 대하여......)
성에 관한 얘기를 할때 우리의 자세......한번쯤 얘기를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단 얼굴은 좀 상기되어 있거나 애써 평정을 유지하지만 조금씩 흔들리는 얼굴근육을 조절하는 표정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거의 얘기는 피식피식 웃어가며 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뒤로 감추려 하는 속성 때문에 오늘날 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된 것이 아닐까?

특히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여자의 쾌락이 성교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여성을 깊디깊은 동굴로,남성을 그 동굴을 탐사하는 작은 지팡이로 본 것은 참 유쾌한 비유였다. 혹자는 지나친 페미니스트적 시각이라고 혹평할지도 모르지만 그 동안 성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남성을 중심으로 얘기해 온 것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기분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성은 성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이 주는 쾌락만이 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쾌락만을 생각하는 성행위는 자칫 성행위의 주체인 인간마저도 하찮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종족보존을 위한 성행위는 한 생명을 책임지는 부모가 될 준비를 위한 성행위이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그만큼 자신의 몸을 소중하고 고귀하게 생각할 이유가 더 또렷해지는 것이다. 성행위의 주체인 자기자신은 소중하고 고귀한 인간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은 가장 많이 얘기되는 주제인 동시에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미묘한 주제이다. 성을 좀더 떳떳히,당당하게, 본래의 목적에 맞게 얘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닫힌 시각을 좀더 열어야 할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본질적 의미로 살수있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