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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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동면을 한다면 어떨까?

추운 겨우내 몇 달이고 푹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로했던 육신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가능해질까?

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는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그려져 나간다.

재산, 학벌, 외모, 젊은 나이.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주인공.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님의 방치로 인한 상처, 갓 성년이 된 후 잇따른 부모님의 사망, 정신적인 연결고리 하나 없는 주변의 인간관계로 그녀의 생은 안타까우리만치 퍼석하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호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 않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일말의 책임의식 없이 돈벌이를 위해 신경안정제 처방전을 남발하는 정신과 의사 닥터 터틀.

친구인 듯 늘 옆에 붙어있지만 속으로는 질투와 패배감에 빠져있는 리바.

자기 마음 내킬 때만 나타나 그녀를 성적으로 이용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트레버.

짜증 나는 인물 묘사를 보고 있자면 '아니 이 여자는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거야? 왜 이런 사람들을 옆에 두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저 딴 세상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묘하게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캐릭터들, 진실로 소통하지 못하고 겉도는 인간관계들.

과장된 듯 보이지만, 정말 과장된 걸까? 싶기도 한 뼈 때리는 인물묘사 되시겠다.

혹은 뼛속부터 염세적인 주인공의 눈에 비친 주변인들이기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계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라면 동면이 아니라 죽음을 꿈꾸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머지않아 약을 세게 쓰면서 낮이나 밤이나 내내 잤고 중간에 두세 시간 정도만 깨어 있었다. 참 좋구나,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잠이 생산적인 일이라고 느껴졌고, 무언가 정리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았다. 당시에 내 마음이 아는 건 그것뿐이었다, 아마도. 충분히 잠을 자고 나면 난 괜찮아질 것이다. 다시 새로워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이고, 모든 세포가 거듭 재생되어 옛날의 세포들은 전부 머나먼 흐릿한 기억이 될 것이다. 과거의 삶은 꿈에 불과할 것이고, 나는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 축적될 희열과 평정의 힘을 받아 후회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리라 생각한다.

기계처럼 리셋 버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의 삶이란 그리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온갖 약물을 통해 깊은 잠을 자고, 잘만큼 잔 뒤에 생을 다시 시작해 보려는 그녀는 생을 포기한 쪽에 가까울까 뜨겁게 욕망하는 쪽에 가까울까?

그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정말 새로울 수 있는 걸까?

과거의 기억과 흔적 따위는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걸까?

누구도,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도 답을 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그 삶을 끝까지 이어가 보기를 바라본다.

이번엔 좀 더 솔직한 인간관계를 맺고, 좀 더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보기를.

그리하여 더 이상 과거에 잠식 당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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