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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상실, 다름 그리고 받아들임.......
디디의 우산( 황정은 연작소설/ 창비 펴냄 )은 2편의 연작소설이 있는 책이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두 편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나는 그 중 한편의 제목을 ‘d’가 아닌 ‘디디의 우산’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첫 번째 소설은 ‘디디의 우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디디의 우산’은 제목인데...... 왜일까? ‘d’가 아닌 ‘디디의 우산’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나는 ‘d’가 아닌 ‘dd’, ‘디디의 우산’에 집중하며 ‘d’라는 소설을 읽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집중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물론 ‘d’와 ‘디디의 우산’을 나눈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 실수가 내가 이 소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d’의 주인공 d는 dd의 우산을 핑계로 ‘dd’와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우산은 ‘dd’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핑계였고, 생각이었다. 관계, 그리고 그것의 상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소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구절 한구절을 읽으며 도대체 이건 멀까? ‘왜 이런 쉬운 얘기를 이렇게 어렵게 써놓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d’와 ‘dd’ 그리고 사람들. 그리고 만남, 죽음, 상실, 그리움......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거나 움직일 때,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죽음을 느껴요.
매우 정지된 지금을요.
너무 정지되어서,
지금 바로 뒤를 나는 상상할 수 없고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지금이라는 것은 이미 여기 와 있잖아요.
그냥 슥......
그렇죠 아지씨 말대로 슥......
따로 상상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 세계 이후의 저 세계라는 것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내가 현재나 과거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매번 죽음이고,
죽음을 경계로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엔 죽음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나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나에게 조금은 친숙한 소재였다. 주인공 ‘나’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같은 고민을 해온 시대의 사람이었다. ‘나’와 ‘나’의 시대에는 연대항쟁이 있었고, IMF가 있었으며, 촛불항쟁이 있었으며, 세월호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은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하지만 다른 고민을 해온, 사람의 다름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같은 경험을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한...... 그리고 또 상실. 어렵다. 또 나에게 생각이라는 숙제를 준 소설이다.
“어떤 책을 남기고, 어떤 책을 버릴 것인가.
기준은 한가지다.
두 번 읽고 싶은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대답에 이르는 과정은 그다지 간단치 않다.
쌔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와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는
둘다 내게 풍성한 독서경험을 안겼지만
전자는 한번으로 족하고
후자는 두 번도 부족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이 책은 나에게 의문과 깨달음을 한꺼번에 주었다. 같은 것을 바라보지만 같지 않은. 그렇다고 또 그렇게 다르지 않는 그들!! 그들의 의지와 그들의 가치관.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내야하는 시대인 것인가 보다. 그런 시대인가 보다. 지금은......
“언니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뭐를.
그 얘기.
......내가 뭘 많이 얘기했어?
아, 늘 하지. 하지 않아도 하지.
하면 안되는 얘기야? 너는 그래서 안하는 거야?
그 나이로 자랄 때까지 아이를 키웠을 엄마아빠들이,
그러니까 내가 그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처럼 내게 말하지 마.
나는 그 일을 생각해.
그 사람들의 집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생각해
그래서 말할 수 없어.
무서워서.
뭐가 무서워.
나는 무서워.
아니 네가 무서운 것이 뭐냐고.
그걸 말하는 동안 네가 두렵고 상처받을 것이 무서워?
그것이 너는 무서워?
......
너는 그게 제일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