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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커리큘럼 -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계삼 선생은 필력이나 활동력이 참 흔치 않은 인물이다. 그것이 가능한 자산은 정직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공감능력.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전태일과 권정생 선생에 버금가는 마음을 가진 이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는 생각하는대로 살고 말하는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석유와 핵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도시문명의 위기. 이 시대의 교육불가능성을 통절히 비판하던 그는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 제도권학교를 떠났다. 그는 예민한 촉수는 버려야 할 것과 되살려야 할 것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래서 이계삼의 판단과 선택을 믿고 지지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다. 그는 지금 참된 배움과 삶의 공간을 일구고 있다. 농업 인문학교. 아이들과 청년들, 노인들로 함께 흥성스러운 마을 공동체. 혼자서는 꿈이지만 함께는 현실이 된다. 함께 꿈꾸고 기쁘게 깨어날 벗들이 늘어나리라.

 

그의 애독자들에게 기쁜 일. 얼마전 새 책이 나왔다. <청춘의 커리큐럼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십대와 십대 청춘을 위한 책. 이 문명의 위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생존과 생계를 걱정 해야 하는 처지에 나는 어떤 인생행로를 선택해야하나. 세계적인 사상가. 작가와 그들의 명저를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으나, 어떤 유형의 글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지금 여기 우리들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계삼 자신도 이번 책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지만 내 보기에도 그의 저서중 젤 좋을 뿐 아니라 근래에 보기 드문 명저다. 여러 독서모임의 교재로도 쓰면 좋겠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여기서 소개하는 책을 또 읽고 하면 제대로 공부가 되겠지. 점수나 스펙이 아니라 진정 삶과 영혼을 위한 책이다. 이런 책을 함께 읽고 얘기나누며 공부하면 홀로 괴로워하다 목숨을 던지지는 않을 텐데...청(소)년들과 그 청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특히 추천하고 싶다.

 

 현대문명의 미로 속에서 공생의 길을 찾는 사상가들의 지혜. 그것을 깊이 공명하고 통찰하는 필자 이계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느낀다. 허물어져가는 세상에 매달려 전전긍긍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은 아니다. 분명 인류 현대문명의 많은 부분은 오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날 수도 없다.

 

청년들이여 공부 좀 하자. 인테넷도 좋고 트윗도 페북도 멋지지만 지혜로운 스승들의 책도 좀 읽자. 먼저 그 훌륭한 스승들에게 우리를 데려다주는 이런 친절하고 유능한 필자를 만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은혜로운 인연인가.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책. 나의 스테디 추천도서 목록에 기꺼이 추가할 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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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음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도마복음서를 읽고 따랐다면, 만일 그랬다면 인류 역사상 그 숱한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과 죄악들이 없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세의 욕망의 도구로서 종교행위를 하는 듯이 보이는 많은 종교인들, 특히나 철저히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독단과 맹신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긴 했습니다만 매우 싫어했지요.

그러나 오강남 선생이 풀이한 도마복음서를 읽고는 참된 예수의 가르침이란 결국 진리의 깨달음을 설한 것, 불경이나 노자, 장자나 다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가 통탄할 일이지요. 참된 가르침은 외도로 몰리고 그토록 경계하라고 한 현세의 욕망만 추구하고 사는 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을 안다면. 

모든 종교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고, 진리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계와 동떨어진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지금 오욕칠정, 탐진치에 시달리는 이 중생 그대로의 삶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깨달음을 향한 발심을 강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종교간의 위험한 경계를 넘어서 참종교의 실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교양으로 읽어도 좋지만, 참된 빛,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마음을 견결히 하는 책으로 읽히면 더욱 좋겠습니다. 

본문의 한 대목 인용합니다.

제 69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하는 사람마다 그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적인 박해를 통해 아버지를 아는 진정한 깨침을 얻게 된다고 했다. <<도마복음>>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말로 공관복음서에는 없는 대목이다.  마음속에서 받는 박해란 무엇일까? 

 그 박해란 자신의 이기적인 자아와의 싸움이 아닐까? 이는 교만과 정욕과 욕심 등 우리 내부에서 우리를 못살게 고는 요소들이다. 2세기 말에 살았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박해는 외부에서 오는 박해가 있는 반면 , 가장 고통스럽고 심각한 박해는 내면적 박해로서 "각자의 영혼이 부정한 욕망, 다양한 쾌락, 천박한 소망, 파괴적인 꿈 등으로 시달리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내면적 박해가 더욱 고통스럽고 심각한 이유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 박해자를 우리 속에 모시고 다니는 셈이기에 도저히 도망하려고 해도 도망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욕망이나 교만이나 정욕 같은 내면적 갈등으로 박해를 받으려면 이런 것을 박해의 요인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누추한 내면을 꿰뚫어보는 것을 전통적인 말로 하면 '자기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의 실상을 본 후에야 그것을 정화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정화를 통해 내면의 빛을 볼 수 있고, 나아가 하느님과 하나 됨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내면의 길을 각각 자기 발견의 단계, 자기 정화의 단계, 조명의 단계, 합일의 단계라고 했다. 

이 절은 이렇게 마음속에서 생기는 내면적 박해를 시발점으로 하여 그것을 견디고 이기는 사람, 이를 물리쳐 결국 마음이 청결해진 사람만이 아버지를 아는 참된 깨침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그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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