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여행법 - 딸과 함께 떠난 유럽 사진기행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봄비가 나린 지 얼마나 됐다고, 곧 피어날 새싹과 꽃을 시샘하는 것인가? 하룻밤 사이 세상은 눈에 덮혔다.


그 시샘은 동장군의 몫이다. 이젠 자신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 봄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9개월간 칩거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 그것이 꽃샘 추위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시샘에 비한다면, 이번 눈은 참 어여쁘게도 내렸다. 소복히 쌓인 것도 그렇고, 발길 닿지 않고 손길 닿지 않는 곳은 겨울 추억을 떠올리기에 좋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장군이 가진 좋은 이미지는 눈의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비는 조금 우울하지만 눈은 포근하다. 을씨년스러움, 어두운 실내, 따스한 차 한 잔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그렇게 눈이 내리면, 요즘은 스마트폰을 든다. 좀더 하얀 눈이 내릴 지, 뽀드득거리던 눈이 얼어버리는 것은 아닌 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그런 정보는 눈을 바라보는 마음엔 필요하지 않다. 포근하게 내린 눈, 그 포근함 속에서 하하 호호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기억하는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이다.


예전엔, 똑딱이를, DSLR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 폰의 카메라를 애용한다. 우선 곁에 두는 기계가 하나로 줄어든다. 복잡한 설정이나 기능을 몰라도 ‘찰칵’만으로 보기 좋은 사진을 거둘 수 있다. 내가 고민하거나 차분히 수행하지 않아도 말이다. 요즘은 필터도 여러 가지 제공이 되어 다양한 느낌을 담을 수 있다.


이렇게 필자의 ‘좋은 사진’의 기준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사진’을 남기는데 필요한 기능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 폰의 다른 기능들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필자는 사진 앱의 편집 기능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HDR(뭔지는 잘 모르지만)을 설정해 두면 스마트 하게도 알아서 광경을 판단해 나에게 좋은 사진을 남긴다.


한 때, ‘장인도 좋은 도구를 가지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장인도 아닌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DSLR을 비싼 값으로 구입했다. 몇 개월은 정말 사진작가라도 된 듯, 목에도 걸고 혹은 스트랩을 손에 감고 카메라를 휴대했었다.


가장 처음 찍은 대상은 도라도라의 피큐어 있다. 빛도 잘 맞았는 지 명암도 표면의 광택도 전체적인 사진의 질감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주로 만지는 것은 렌즈였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줌도 하고 광각으로도 촬영을 했다. 그러다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사진 작가들의 사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구도라는 것도 생각해야 했고, 명암도 좀더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궁금한 대로 이것 저것을 참고하고 해보는 동안 머리 속은 정리되지 않고 셔터는 잘 누르지 못하게 됐다. 그러고 얼마 후 DSLR은, 렌즈가 잘 닦여 가방에 담겼고, 여행 중 휴대하는 귀중품이 되었다. 언제나 자동 초점으로 초점을 맞추고, 자동 모드에서 모든 것이 스마트 하게 진행 되도록 카메라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구도란, 사각 프레임 안에 담으려는 대상과 주변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이며, 구성을 위해서 광각 렌즈도, 줌 렌즈도,  필터도 필요하다. 그러나 책 몇 권보고 바로 실전에 적용해 봤다고 향상되는 능력은 없다. 여전히 사진 작가들의 사진에 부러움만 쌓였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 폰만으로도 만족하고 바로 바로 꺼내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점만 취하고 있었다. 


그런 희망과 바람만을 마음에 두고, 스마트 촬영의 날들은 잘도 흐르고 있었다.


이 책, 사진가의 여행법은 사진 촬영을 위한 매뉴얼은 아니다. 다만 도서관에서 이 책을 펼쳤을 때(평소에도 사진집을 가끔 보니까) 사진 아래 적힌 설정치들이 보였다. 초점, 노출 등이 촬영된 사진 아래 캡션으로 적혀 있었다. 부글부글. 그 동안 느낀 부족함이 되살아 나며 똑같이 설정해서 촬영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이번 떠올린 기준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자동으로 맞춰져 있던 마메라 모드를 ‘M’ 수동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초점과 노출을 사진 캡션으로 맞추고 아무 거나 찍어 보았다. 흠…… 뭔가 놓친 것이 있었다. 사진은 굉장히 어두웠고, 대부분의 사물이 식별되지 않았다. 다만, 밝은 곳이 아무 강조되었다. 흠… 캡션의 사진을 다시 보고, 내가 찍은 사진을 비교했다. 그러다가, 밝은 대상은 노출을 늘리고, 어두운 대상은 노출을 줄이는 것을 알게 됐다(물론, 다른 책을 참고해서 알았다).


조금씩 생각과 유사한 장면이 사진에 나타나게 됐다. 물론 아마추어인 필자의 눈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의도한 것에 가까운 결과를 얻자, 발동된 호기심은 열정으로 변화했다. 그 이후, 똑딱이를 수동으로 맞추고, 찍고자 하는 부분에 맞춰 노출과 초점을 이리저리 맞춰 보았다. 좋은 결과도 있고, 하얗게 탈색된 듯 흰 이미지가 될 때도 있었다. 


마치 사진 작가가 된 듯, 빙의되어 이리 저리 이것 저것을 찍고 뷰 파인더를 살펴보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흥미가 더해진 이유는, 이렇게 빛의 양에 따라 장면의 특정 대상을 강조할 수 있다면, 무언가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림과 사진 모두 메시지를 담는다. 장면의 전달이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말을 담아 내는 것이 그림과 사진이다. 아마추어 치고는 원대한 것을 생각해 낸 것이지만.


능력 없이, 바탕 없이 원대한 희망을 담고 있으면 언젠가 물을 쏟듯 업지르게 된다.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목표 의식 없이 호기심으로 시작해, 작은 결과에 마음껏 목표를 드높이다 보니, 벽에 부딪혔을 때 중단하긴 너무도 쉽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길을 잃고 멈추어 있다, 작은 희망에 전진을 할 수 있었던 경험, 마음껏 그 전진을 즐긴 경험, 좋은 결과를 얻은 경험, 나쁜 결과를 얻은 경험.


이 책의 작가는 딸과 함께 유럽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함께 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스스로 많은 시도를 했다. 그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시도들에 필자가 자극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시도라는 것을 경험해 보려 한 것은 아닐까?


오늘 설경은 사진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쳐다보고 머리에 담으려 노력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수집을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닌가 한다. 다시 볼 기회는 거의 없고, DVD에 저장되어 캐비넷만 채워온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기 보다는 오래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물론 손에 스마트 폰은 들고 말이다. 좋은 순간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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