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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호타루의 빛 (총15권/완결)
Satoru Hiura / 대원씨아이 / 2013년 10월
평점 :
필자가 좋아하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전적 의미로 보면 단방향이다.
그래서 사랑이 아름다워지려면 이 단방향이 서로를 향해야 하고, 그 결과가 '만족'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단방향의 품질을 놓고 품평을 하고 있진 않나? 아니면 그 단방향의 행동들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하고 있지 않나? 결국 마음으로 느낄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았나? 느낄 수 없다면 사랑을 할 수 없나?
그래서 '경험'이 많으면 그런 것을 잘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건가? 그럼 여러 번의 시운전을 통해 나의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과정이 우리 인생 중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둔감하다고 스스로를 규정한 호타루는 다나까 부장에게 자문을 구하고, 주위 사람들과 상의하고 그들이 '듣기만 하고 내린 결론'에 휘둘리고, 끊임없이 오판을 거듭하고 삽질을 한다. 그 사이 나로부터 나아가야 할 그 단방향의 존재는 멈추거나, 중단 되거나 관심의 밖에 있다. 단방향이 있어야 할 곳에 그 오판에 따른, 혹은 판단을 위한 자료 모으기의 활동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인간다운 점인가? 어설프고 그래서 고난을 겪고 그것을 어덯게든 이겨내고 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책 속 분류대로라면 '멋진' 남자와 여자 아래 평범함이다. 그 평범함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에 우리는 공감하고 웃고 한다. 필자도 이 책을 읽으며 '푹' 내지는 '풋' 혹은 '푸하하'의 경험을 책 읽는 과정 중 여러 곳에서 했다.
사랑은 상대를 아까고 귀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고 즐기는 마음, 혹은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다. 여기에 '경험'이란 단어나 개념은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랑을 하거나 이를 응원하는(사실 이런 것도 없으면 넘어질 테니) 잡지 기사들에 호응을 하긴 한다. 그러나 사랑할 시간에 분석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충분히 분노하고 짜증을 낼 필요가 있다.
'내가 정말 저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이 자문이 갖는 무게감을 알 수 있는가? 너무 사전적 의미를 논하다 보니, 무슨 논문 쓰는 것 같긴한데, 그 의미가 틀린 것은 아니다. 100인 100색의 사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관심이 없다면 분석을 하겠냐 하겠지만, 분석 후 결과가 좋으면 상대를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건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상대를 분석한 결과에 맞추겠다는 건데, 자신을 잘 모르는데 과연 잘 맞출 수가 있을까?
결국 '저 사람은 내 사랑이 아니었어'가 아니라 '분석 결과가 좋지 않아'가 맞다.
오히려 순수함을 포기하면 지금까지의 논리와 이야기 전개는 달라진다. 내가 필요한 상대방의 품질과 조건은 아래와 같다. 부합해? 몇 %나 부합해? 부합 기준을 충족하면 그 때부터 '정성'을 쏟으면 된다.
뭐 어떤가? 행복하기 위해 내 요구사항은 이와 같고, 상대방이 이를 충족해야 내가 행복한데. 적어도 의식주 걱정은 없었으면 해. 상대가 충족할 능력이 되거나 둘이 합해 해결되어도 좋아
다리가 좀더 길고 허리를 좀더 짧아 옷을 입히면 태가 났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 조건은 아래 조건이 충족되면 무시할 수 있어:
부자이거나, 그래서 내가 결혼을 해도 그 부가 끊기지 않거나
거기에 날 위해 모든 정성을 평생 쏟을 확신이 있다면 신체적 조건은 포기할 수 있어
아, 차는 아반테 이상이면 돼
같이 취미 생활을 할 정도로 취향이 맞거나, 자신의 취향과는 달라도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
같이 다닐 때, 상대방이 내 약점이 되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이럴 때는 이 드라마 주인공 같이, 저런 상황에서는 스마트하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
한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경험' '토론' '정보 수집' '기대치' 등이 작용한다.
그러다가 '저 사람이 내 사랑이야'에서 모든 조건이나 기준은 무너진다. 겨우 순수를 찾은 걸일까? 혹시 이런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촬영을 해서 사랑이 끝나거나 결혼에 골인한 후 보여주면 부정할 것인가?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해야 할 것이다. 일기, 사유 뭐 다 좋다. 방법이 무엇이든. 자신을 잘 알고 향상될 폭과 하락될 폭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면 사실 위의 이야기들은 휴지조각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정 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의 사유도 필요하다.
사랑이 뭐고, 자신을 알고 있는 지 생각해 봤다.
관계의 현상황을 파악하는 역량은 어떨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참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왜? 아주 귀중한 감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잔소리가 많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려는 감정인데 얼마나 아름다운 thing인가? 관계는 1:1, 1:N, N:N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다.
우선 1:1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진행을 원활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탁구를 같이 하거나 테니스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하거나 같이 공 하나를 두고 주고 받는 연습을 하진 말아라. 하지만 하면서 자신을 바라봐라. 상대가 잘 쳐낼 수 있게 공을 주는 지, 내가 잘 치려고 공을 치는 지.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라고 용** 통뼈는 아니다. 실수 많고 죄 많은 사람이다. 소위 경험자다.
대화를 하면서:
내가 상대를 평가하고 있는지
생각을 맞춰 보려고 하는지
상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뭔지, 왜 이야기하는지
하지 말라는 거다:
상대를 평가하지 말라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라. 질문은 왜 안하나?
상대의 이야기 내용을 이해하고,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고민하고 스마트하게 질문한다
결혼이 어려운 시대다. 하지만 결혼이 '이제 저 사람의 짝은 나야. 잘 살께'를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는 책 속 내용에 긍정할 수 없었다. 필자의 결혼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양가의 만남이다.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
우선 이 2 가지를 충족할 역량이 되는 지 판단해서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면 하는, 관계 깊이 조정 행위이다.
결혼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
같이 있고 살짝살짝 살이 닿으면 정말 좋고 긴장감이 상승한다. 사랑을 서로 확인하고 더 가까워진 후, 더 편해진다. 그런데 잠시만. 서로 사랑을 하기 전에 대화는 내실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 자신이 던지는 화제, 상대가 전하는 화제 모두 말이다. 그냥 즐기고 노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정의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랑은 그만큼 하기 어렵고 절제가 필요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것만큼 실행해 나가기 어려운 감정이다.
정확히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손해보기 싫다' 혹은 '나쁜 경험하기 싫다'라는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책 속의 이야기처럼 완벽한 파도가 오기까지 기다리다가 파도를 다 놓쳐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진 않나?
'멋진' 남자와 '멋진' 여자는:
자신을 잘 안다. 그 한계와 성장 범위를. 그리고 인식하는 범위를 넘어서고 싶어하는 도전 의식과, 그 도전을 실행하는 행동력도 가지고 있다.
그들도 무식하게 돌진할 때가 있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상대가 기준이 아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감히 '예상'하고 여러 가지 정황상 혹은 사실 근거 상 이럴 '것이다'로 결정하고 행동을 하면 필자를 포함해 필자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도 없이 땀을 많이 소비했다. 그렇게 이야기해 봐야, 통계적으로는 몇 표에 불과한 사례이긴 해도 말이다.
인생에, 특히 사랑에 첩경은 없다. 사전적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보라.
'순수하게 도전한다'는 것에 진지한 고민을 던져 본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다. 순수하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잘 알아보고 스마트하기 진행한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것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조사, 분석, 판단, 행동 방법, 행동, 검토, 사실 확인, 피드백을 한다는 말이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내 '이익'을 얻기 위해가 아니다.
손해볼 것 같으면 중단해라. 그래도 아쉬우면 욕쟁이 할머니에게 가서 상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