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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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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ija Zaric on Unsplash
무협지를 읽고 계단 위에서 뛰어내리지 않은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화자는 무술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검색하고 광고를 보고 서점 서가를 뒤졌다. 50여 권의 무술책이 모였다.
한 권을 사면 처음부터 끝까지 숙독했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내공을 훈련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기를 바랬다. 호흡을 통해 외부의 기를 받아들여 단전에 축적하고, 이를 몸 안에서 순환되게 하여, 바벨이나 중력 이기기를 하지 않아도,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으며, 더불어, 파괴력을 지닌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생각했다. 중국은 무술의 진수를 제자 중에서 뛰어난 이를 지정해 남긴다고 한다. 그것도 책이 아니라 대부분 구술로. 당연히 내가 산 책에는 무술의 핵심이 들어있지 않았다. 실망, 대실망이다. 지금은 유산소 운동을 위해 14권 정도를 남기고 모두 중고 서점에 팔았다.
무협지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술을 익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술 관련 만화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강함이란, 자신의 오만을 관철하는 힘'이라고. 그 말의 50% 정도는 동의한다. 오만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면 남보다 강해야 한다. 강하다는 말 속에는 비단, 육체적 투쟁의 우위 외에도, 어떤 분야든, 그 분야 최고에 가까울수록 강하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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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rik Mclean on Unsplash
내가 미슐랭 3 스타 셰프다. 그런 내가 '요리란.."이라고 정의를 내리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이것이 강함이 가진 영향력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 존재감 없는 내가 옳은 이야기 해도 그 말에는 영향력이 없다. 무엇을 이룬 적이 없으므로, 의견이나 주장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해'라는 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성이 쓰레기 수준이라도, 분야 상위자의 말은 영향력이 있고, 소위 '잘 나간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세상은 인과법칙과 일등주의에 지배된다. 영업 톱의 말에 사장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즉, 지금의 상태를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무술은 '약자가 강자의 침략을 물리치는 힘'이라고 정의된다. 현대 사회에서 무술은 폭력이다. 그렇다면 무술은 폭력 기술의 모음일까? 타인의 무법적 침략에 대응하는 호신술은 폭력의 범위에 넣지 않는다. 정당방위 혹은 방어의 범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현대에 무술로 강하다는 말은, 타인을 무법적으로 침략하지 않고, 어떤 외부의 침략도 모두 물리치는 수준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이나, 타인을 침략하기 위한 공격이나 동일한 동작과 힘이다. 핵심은 의도에 있다. 무협지에서 우리가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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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의 말미에, 주인공 곽정은 그동안 익힌 상승무공을 모두 잊으려 한다. 정의를 위해서라도 사람의 목숨을 앗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높은 수준의 무공에 이르기 위해 불철주야 무학을 익히고 수련을 해도, 인간을 다치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비록 상대가 악인이라도, 내가 그를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뺏을 이유는 없다고 고민한다.
곽정의 무공 익히기는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시작된다. 비단 그의 사부들은, 구처기와의 내기를 곽정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계기로 삼았지만. 마옥에게 내공을 배워,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부들에게 보답하고 무공에 진전을 보여 사부들을 기쁘게 하고 싶은 곽정의 마음은, 홍칠공을 만나 그의 절학을 배워 더 강해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무공이 강할수록 번뇌는 커지고 죄의식이 커졌다.
하지만, 구천인이 '죄 없는 자만이 자신을 벌할 수 있다'라는 외침에 모두가 손을 내리지만, 홍칠공 만은 자신이 그 자격이 된다고 했다. 232명의 목숨을 앗았지만, 모두 백성을 괴롭히는 악인이고, 선량한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고 했다. 이에 곽정은 무공을 익혀 선을 행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마음을 돌린다. 천하제일의 명성을 좇지도,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침략하지도 않고 부단히 무공을 닦고 이를 기반으로 선을 행한다면 더 이상의 번뇌는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해리포터, 사조영웅전 시리즈, 그리고 중국 무협 시리즈 등은 초월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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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ira auf der Heide on Unsplash
마법과 무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계기는 작품마다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마법과 무술은 인간이 타고난 능력을 초월할 방법이 된다는 점이다. 현대는 과학이 그 역할을 한다. IT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 세계를 초월할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 혹은 매달 몇 번 초월을 꿈꾼다. 지금까지의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어떤 기술을 익힘으로써 해내는 자신을 꿈꾼다. 누구는 황당한 생각을, 누구는 현실적인 생각을 앞에서 초월할 방법을 소유하려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의 장애물 앞에서 좌절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좌절하지 않고 장애를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대단한 무엇을 원하는 마음이 아니다. 단지 장애물 앞에서 주저앉지 않길 바랄 뿐이다.
경신술을 익힐 수 있다면, 대중교통은 필요 없이, 혹은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지붕을 밟고 뛰어가든, 허공을 밟고 날아가든.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낀다면, 불시에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보다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면, 실효성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무협지와 판타지를 읽으며 앞서나가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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