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 침실로 가는 길
시아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2월
평점 :
"괴물을 사랑한 한 여자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푸른 침실로 가는 길 | 오도스
글. 시아
'이 기억들을 한마디로 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한 남자가 있다. 목덜미에 기억의 총을 맞고 쓰러져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온갖 기억들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그래서 그 끔찍한 기억들을 살해하고 싶은 남자가 말이다. 자신이 죽지 않는 한 이 고통이 끝날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여기 기억을 퇴치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자기 나이만큼 매일 한 가지 기억을 글로 쓰고 글이 완성되면 고통은 끝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쓰는 동안 고통을 마취시킬 수 있으니 무조건 해야한다.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이 깨기까지 혼란의 아수라장 같은 기억들과 마주해야했다. 이제 꿈속의 남자이자 저자의 이야기를 49일동안 쓴 49개의 이야기를 들려줄것이다. 그녀가 꺼낸 고통스런 기억들을 펼쳐 읽으면 그녀가 얼마나 아픈 과거를 헤쳐나왔는지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냈는지를 알 수있다.
그녀는 아빠, 그미(엄마), 언니와 함께 산다. 아빠는 사업가였는데 그 사업의 성과가 들쑥날쑥해서 가족의 행복도 그에 따라 들쑥날쑥해졌다. 확실히 크게 성공했던 사업이 잠깐 잘 되었다가 폭망한 이후로는 계속 어렵게 살게된 가족들. 그즈음 그미의 폭언과 폭력이 심해졌다. 그미는 그녀를 악마라고 부르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언을 끊임없이 해댔다. 갈수록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그녀. 어찌 견뎠을까 싶을정도로 불행하고 험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몸과 마음이 아팠던 언니는 시도때도 없이 나쁜짓인줄도 모르고 그녀에게 성추행을 해대고, 집안사정으로 잠시 집에 머물렀던 이모부에게 두 자매가 노골적인 성추행을 당한일도 있었다. 그게 나쁜짓이라고 알려주는 어른이 곁에 없었기에 스스로 깨닫기 전까진 그냥 당할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언니에게 첫 성추행을 당했을때 그미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야단만 듣는다. 그게 왜 어때서 그러냐고 핀잔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문제는 언니가 아니라 예민한 그녀에게 있었던거라고 받아들인다.그런 생활을 무작정 견디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녀. 정상적으로 자랄수 없는건 새삼스러울것도 없다. 어느덧 자라 대학생이 되고 간호학과에 다닐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다. 그미는 더 억척스러워지고 그녀는 그미를 떠날 궁리만 한다. 잠깐 나와살다가 다시 돌아가야했다. 그러는동안에도 쉬지않고 불행은 그녀를 쫓아다니고 참 기구하게도 남자 복마저 없다. 결혼과 함께 겨우 그미를 떠날 수 있었지만 결혼한 남자는(남편을 남자라고 부른다) 능력도 없고, 술주정뱅이에다 폭력까지 휘두른다. 아이까지 낳고 살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살기위해 다시 그미를 찾아간다. 그러는중에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미의 폭언들. 그래도 그녀는 그미를 찾아가고 의지할 곳이라곤 그미밖에 없다. 그렇게 그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이혼도 한다. 하기싫었지만 간호사 일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녀는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녀앞에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이런저런 이유로 종교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늘 원망했던 그미가 밉지 않았고, 그녀의 폭언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보였다. 사실 문제는 그미가 아니라 모든것을 부정적으로만 봐왔던 자신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된 후로 그녀는 더이상 그미를 그미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 어머니로 그미의 호칭을 바꿔적기 시작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말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년을 정신병원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고,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수가 된다. 이제 그녀앞에 탄탄대로만 있을것 같다. 하지만 아이와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딸을 온마음을 다해 돌봐주지 못했다. 그 싫었던 그미였던 시절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겼으니 아이또한 그미의 폭언과 폭력에 노출된 채 자랄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괴물같은 그미에게 아이를 밀어넣은 것이었다. 엄마가 제일 싫다는 아이, 엄마를 악마라고 부른 아이. 하지만 그녀는 기다린다. 잠깐 돌고 돌아 딸도 제자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기억의 글과 마주한다. 그녀는 이 기억들을 '어머니 극복기'라고 했다. 어머니를 미워하면서도 어머니를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반성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면 행복할 수 있을것 같았던 인생도 그렇게 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녀의 길 끝엔 항상 어머니가 함께였음을 알게된다. 어머니는 괴물이었다고, 여전히 한번씩 괴물이 된다고.. 그럼에도 그녀는 그런 괴물을 사랑한다고.. 그 힘이 그녀 자신을 괴물이 되지 않게 했다고 고백한다.
49개의 글이 완성되었고 드디어 그녀는 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기억을 풀어내는 동안 머릿속 고통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가슴이 아팠다. 그 모든 순간을 이겨내서 지금의 그녀가 존재하는 것이라는걸 너무나 잘 알기에 가슴이 아팠다. 49개의 기억의 글은 그녀 내면의 불행과 마주하고 풀어내는 일을 했다. 숨기고 감추었던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글을 쓰는 일로 끊어냈던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은 인생을 지혜롭게 풀어나갈것이다. 그녀곁에 괴물이었던 여자를 끌어안고 사랑할 수 밖에 없기에 사랑하며 그렇게 말이다. 한편 한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깊은 내면의 불행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것도 과거의 꾸러미를 풀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거라고.. 그녀는 신의 영광을 만나 새로운 빛과 삶을 얻었다고 말한다. 모든 삶이 쉽기만 한건 아닐것이다. 나역시 무탈해 보이는 허우대속에 감춰진 절대로 꺼낼 수도 없고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아직 마주할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꺼내야 할 날이 온다면 그래서 이겨내야할 용기를 얻게 된다면 나이만큼의 기억을 꺼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과연 내가 풀어 놓은 기억들은 한마디로 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