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9월. 1년 간의 휴학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하던 때를 기억한다. 3월의 새싹만큼이나 싱그러운 기대와 눈부신 12월의 흰눈과 같은 소망을 품고 나는 캠퍼스를 신나게 거닐었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학교인가! 후회 없이 공부하고, 캠퍼스만의 행복을 누려야지..' 라고 다짐하며, 나는 그렇게 복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 품었던 마음을 잊어버리고 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의 그 싱그러움과 소망들은 잊혀지고, 바쁜 삶들에 쫓겨 하루 하루를 지내고 만다.

20살이 되어 그토록 바라던 대학교에 입학할 때...
무언가 새롭고 놀라운 일을 시작할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될 때...

이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가지는 희망찬 마음을 마지막까지 가질 수는 없을까? 늘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함 없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이런 생각을 가진 이라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제목의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나의 마음과 똑같은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 지금은 어떤 일도 새로 시작하는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새로워졌다. 그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목숨을 끊은 이가 있다. '박하사탕'의 주인공이다. 영화 '박하사탕' 은 주인공의 일생을 통하여 순수를 잃어 가는 한 사람의 비극을 보여 준다. 주인공은 무척이나 순수하고 멋진 청년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세상의 추한 모습에 물들어간다. 그러면서, 결국 40대의 그는 자신의 변해 가는 모습에 절망하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철로에 서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는 이 세상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이 말을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공간적 개념이 아닐 것이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있던 처음의 그 순수함일 것이다. 다만, 그 순수함과는 시간적으로 너무나 멀어져 버렸기에 그에게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니, 그의 죽음이 참 안타까웠다. 분명한 것은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5년 전이나, 10년 전의 그가 아닌, 순수함을 가졌던 처음의 모습인 것이다. 난 참 행복하다. 이제라도 이렇게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이 책에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얘기 외에도 많은 삶의 지혜들이 들어 있다. 자그마한 연못에 돌맹이를 던져보면 원을 그리며 퍼지는 잔잔한 물결이 인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잔잔한 물결과 같은 감동이 나에게 몰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인 정채봉씨는 동화작가이다. 어른을 위한 생각하는 동화를 많이 지으신다. 그의 언어는 정제되어 있으며,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분명 나 자신을 성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분이시다.

이 책 중에 『첫길들기』라는 글이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창을 열고 푸른 하늘빛으로 눈을 씻는다.
새 신발을 사면 교회나 사찰 가는 길에 첫 발자국을 찍는다.
새 호출기나 전화의 녹음은 웃음소리로 시작한다.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 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
새 안경을 처음 쓰고는 꽃과 오랫동안 눈맞춤을 한다.'

나도 어제 새 볼펜을 샀다. 맨 처음 쓰는 글씨를 '사랑하는 이희석' 이라고 쓰며, 참 흐뭇해했다.

자... 이제 또 한 번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 곳은 결코 지루함이 없으며, 싫증도 없으며, 절망감도 없다. 오직 기대와 소망과 싱그러움과 그리고, 기쁨이 있을 것이다. 창가로 불어드는 가을바람이 참으로 시원하게 느껴지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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