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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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 이어진 


시를 좋아하고 시집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가의 마음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적어낸 글들은 아름다운 서정적인 느낌을 제 마음에 와닿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는 산문보다는 짧고 함축적인 글입니다. 글을 길게 풀어내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기보다는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게 됩니다. 이해가 어려운 글은 계속 읊기도 많이 해봅니다. 작가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고 나의 생각대로 상상을 하며 읽으며 의미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이어진 시인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입니다. 청색지시선 일곱 번째 책이라고 해요. 책 제목을 보고 어릴 때 알던 노래 '도깨비 나라'가 생각났습니다. 도깨비 나라는 방망이로 두드리면 금도 나오고 은도 나오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환상적인 나라였어요. 이 시집은 이런 느낌일까요? 첫 상상을 하며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이어진 시인은 2015년 등단 이후 시집을 이어오고 있는 현대문학가 시인입니다. 시집에 나오는 단어들과 문장이 머릿속과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이야기가 연결되고 전개되는 느낌이라서 읽으며 그 장면을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짧은 시가 아니라 산문시여서 좀 더 저는 풀이되는 글들이 다가가기 재밌고 편안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저를 그 안에 들여다 놓은 느낌이랄까요.

좋았던 시들이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아서 계속 읽어봤고 필사도 하게 되고요.

몇 가지 좋았던 내용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어제 책을 읽었는데

책 속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

오늘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곳이 이웃 나라 바닷가였다

나를 책에서 봤다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고 그곳을 그와 어깨를 부딪치며 걸었다

나는 원래 여자였는데

오늘은 남자의 음성이 내 입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고 싶은데

그는 나더러 구름이라고 말한다

나는 뛰어가는 아이스크림이고 싶은데

그는 나더러 모자라고 말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자

그는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가보자고 말한다

그는 버스를 탔고

나는 기차를 탔고

우리는 빌딩 위에서 만나 각자 자신이 가져온 커피를 마셨고

(이하 생략)


이어진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p21

작가의 창의적인 시선이 돋보입니다. 책 속에서 발견한 나. 그리고 자신은 이곳에서 도깨비 같은 존재입니다. 공놀이를 하는 아이라고 합니다. 시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중 '이것은 뭐다'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바닷물이 되고 싶고 뛰어가는 아이스크림이고 싶지만 '그'는 나더러 구름이고 모자라고 하는 시선. 그런 뒤에 과거로 가서 함께하는 모습.

이상하고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이 이 시와 잘 어울립니다. 신비로운 문장으로 가족을 이야기합니다. 도깨비가 되어서 말이죠.


(앞부분 생략)

묻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벚나무를 심고 벚꽃을 피우고 버찌를 실은 트럭을 모는 동안

너는 아직 벚나무 밭으로 이직하지 않았는지

벚나무 안에서 우리는 한 알의 씨앗이었나

마주보고 웃던 두 세계의 무역이었나

여름이 묻는데 겨울이 하얀 눈송이를 수북이 쌓아 놓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어느 세계에서 이민 온 벚꽃들처럼

각자의 조국을 잊지 못하는 얼굴로

벚나무의 흔들림을 캄캄하게 듣고 있으리


이어진 [벚꽃 크로키] p36

겨울과 여름 사이에 끼어 잠시동안 머무는 계절, '봄'입니다. 봄에는 벚꽃이 핍니다. 벚꽃잎은 하늘하늘 바람이 불면 금세 날아가버리는 여린 잎이지요. 시에서 '우리'는 벚꽃들이고, 꽃잎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그 흔들림을 캄캄하게 듣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몸에서 벚꽃이 피어난다는 이미지가 인상적인 시입니다. 입속에서도, 이빨이 벚꽃처럼 보인다는 시인의 시선이 흥미로웠습니다. 여름이 묻는데, 겨울이 하얀 눈송이를 수북이 쌓아왔다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시의 계절감이 느껴집니다.


(앞부분 생략)

내 슬픔을 위해서라면 너는 눈사람을 녹여 바다의 음식을 만들고, 우리는 물결처럼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고, 여름의 바닷가는 복잡한데 마음에 드는 물결을 골라 지느러미를 흔들어 본다

다 사용한 바다는 어항에 가두듯 책장에 가둔다 태양의 빛이 좋아서 따라온 물결 자국들 나뭇잎으로 반짝이고 이런 이런, 빛이 흘러넘치고 있군 어항 속에서 두 마리의 물고기가 뻐끔뻐끔, 푸른 바닷가, 구름들이 떨며 흘러가고 책장은 고딕식 건물처럼 우리의 깊고 푸른 물결을 들여다본다

이어진 [물고기처럼] p58

이 시에서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내가 슬프면 너는 나의 물결을 쓰다듬고 이마를 맞대고 구름의 부력으로 떠오르고 가라앉지 않기 위해 두 손을 맞잡고, 너는 눈사람을 녹여 바다의 음식을 만듭니다.

겨울 바다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바다의 파도를 통해 밀려갔다 다시 밀려오는 그들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일 좋았던 구절은 '다 사용한 바다는 어항에 가두듯 책장에 가둔다'입니다. 바다를 사랑을 위해 잠시 사용했다는 말이 물결 같은 그들의 관계를 흘러가는 계절을 표현한 것 같아서 아름다웠습니다.


문장과 문장의 호흡이 자연스러워서 다가가기가 좋았습니다. 산문시가 많은데 작가의 긴밀한 감정과 마음, 관계의 형상이 잘 보여서 읽기가 편했습니다. 사랑의 여러 형상이 이미지처럼 만져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정하고 따뜻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문장의 흐름이 인상적이고 꿈을 꾼 듯한 세계로 들어갔다 나온 기분입니다. 시는 사람에게 깊은 감성을 전달해 주고 잔잔하게 여운이 남습니다. 이어진 시인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시집을 추천드립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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