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메시지 - 지구와 인류를 살리려는 동물들의
개와 돼지 외 지음 / 수선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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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동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다. 꿀벌, 북극곰, 소와 돼지 그리고 개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들. 아니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우리들 곁에 있기만 했던 존재들.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주장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생존에는 만물의 영장이자 가장 똑똑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인간들과의 공존이 주된 내용이다. 자신들이 살아야 인간도 같이 살 수 있으며, 자신들이 죽으면 언젠가는 인간들도 사라지게 된 다는 것이다. 협박같기도 한 끔찍한 그들의 주장은 결코 헛되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야만 잘 살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한없이 관대하지만, 또한 그 무엇보다 잔인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자연앞에서는 더이상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전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꿀벌과의 대화를 보며 조만간에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지진,해일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온다. 물론 여러가지의 과학적 경로를 통해 이미 예견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꿀벌들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욱 섬듯해 진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머지않아 인류또한 멸망할것이라고 말했다. 꿀벌이 환경의 피해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꿀벌의 집단 폐사가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꿀벌 뿐만이 아니다. 고래,뱀과 같은 야생동물들이 집단 죽음을 맞이하고 있으며, 북극곰은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점점 자신들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흔히 가축이라고 말하는 소,돼지,닭등의 피해는 말 할것도 없다. 광우병,조류독감, 구제역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의 동물들이 집단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되는 소와 돼지의 수는 수치화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지금의 현상을 과연 그들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들 죽음의 공통적인 원인에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거대한 원죄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위대한 인간만이 잘 살기 위해 행하는 행동들이 결국에는 자신들의 목을 옥죄는 형태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편하고 빠른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물론 편하고 빠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지구의 허파(이책에서는 지구의 자궁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와 같은 아마존이 서서히 없어져 가고 있다. 오로지 먹기 위해 키워지는 소,돼지,닭은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지 오래이다. 인간의 반려동물이라고 불리어지는 개 또한 어느덧 식용동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냉랭했다. 구제역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무참히 살육되는 그 들. 인간이 아프다면 단지 타인에게 전염된다는 이유만으로 생매장을 시키는 행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음조차 자유로울수 없다. 어쩔수 없이 죽어야 한다면, 어쩔수 없이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면 최소한의 고통만을 바란다는 그들. 그도 아니라면 마음속으로나마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져 달라는 그들의 부탁이 결코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길이 있다면 그 길이 비록 돌아가야하는 불편한 길이라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사람과 자연에게 모두 이로운 행위 일것이다. 단지 빨리 가려는 욕심으로 산을 깍고 나무를 훼손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행위는 사람과 자연에게 모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전염병이 돌았을 때 스스로 치유해 나갈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면역이다. 최첨단이라 불리는 항생제는 더욱 커다란 항체만을 만들 뿐이다. 결국 그 항체앞에 인간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만을 하자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하지 않는다. 명상을 통해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을 굳이 종교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들이 하고 싶은말.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제는 더이상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이제 더이상 참거나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오만함은 이제 그만 거둘 시기가 되었다. 자연과 인간은 떨어져 살수 없다. 인간또한 당연히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해서 변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달라져야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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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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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어떤 내용의 작품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소설이다. [ 설계자들 ] 이라니... 과연 무엇을 설계한단 말인가.. 통념적으로 설계라고 하면 건축설계 또는 기계설계를 이야기 한다. 또한 요즘에는 보험에서도 설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건축,기계 혹은 보험 설계사들의 이야기 일까? 그것도 아니면 거창하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걸인지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까?  이도 저도 아니었다. 이 책의 설계자는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암살자 혹은 청부 살인업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정도 되면 이 책의 내용이 대충 간파 될 것이다. 청부 살인업자를 주제로 한 이야기... 아무래도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외국의 첩보물이나 혹은 우리 나라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던 레옹과 같은 영화를 상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 우리 나라에는 청부살인 혹은 킬러와 같은 일들을 거의 찾아 볼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 나라에는 청부살인업자나 킬러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작 [캐비닛]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준 경험이 있다. 심토머라는 충격적인 존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엄청난 경종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면 , 이 책에 등장하는 설계자들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해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는 평범하게 보이는 죽음들을 의미심장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범하게 보이는 죽음의 배후에는 고도로 수련된 설계자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꽤나 잘나가는 킬러 래생(來生)이다. 킬러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는 이름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영화 레옹이 자꾸 연상된다. 작은 화분을 들고 다니는 레옹. 이 책의 주인공 래생은 화분대신 독서대와 스탠드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나 화분이나... 킬러들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건 똑같다. 수녀원 앞 쓰레기통이 고향인 래생. 그는 현존하는 대표적  청부조직의 수장인  너구리 영감에게 입양되어 진다. 자연스럽게 어려서 부터 킬러의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너구리 영감은 표면적으로는 '개들의 도서관' 관장이다. 최고의 청부업자와 도서관 관장은 꽤나 동떨어진 직업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백과사전만을 탐독하는 너구리 영감. 그 밑에서 혼자서 한글을 깨우치며 킬러 수업을 받는 래생. 그들은 오랜시간 동안 찰떡 궁합을 선보이며 도서관의 황금기를 구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의문을 가질수 있다. 요즘과 같은 민주화 시대에 백주 대낮에 사람을 쏴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는 청부살인이 성행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그런 청부업자에게 살인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즉 설계자들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조직의 가계도를 한 번 살펴봐야 한다.  조직의 최 하부에는 래생과 같은 킬러들이 존재한다. 그런 킬러들을 고용한 사람이 너구리 영감같은 사람들이다. 개들의 도서관같이 조직화된 킬러집단을 우리는 '푸주'라고 부른다. 푸줏간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너구리 영감과 같은 체인점 대표들 위에는 설계자들이 있다. 설계자들은 모든 암살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이다. 킬러는 물론 푸줏간의 대표들조차 설계자들의 존재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설계자들의 위에는 누가 존재할까? 짐작은 가지만 실체는 아무도 본적이 없다. 아니, 알수가 없다. 책에서 처럼 설계자들의 맨 위에는 빈 의자만 있을지 모른다. 킬러를 시작으로 그 윗단계 조직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해도 맨 마지막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빈 의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설계자들의 조직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킬러들 또한 분업의 시대이다. 래생과 같이 최전방에서 사람을 죽이는 실무형 킬러가 있는 반면에 , 그의 절친 정인과 같이 정보만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청부살인의 역사는 어떻게 될 까? 서슬이 퍼랬던 군부독재시설로 거슬러 올라가자.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그 시절이 청부업자들에게는 더욱 호황기 였을지 모른다. 이것 저것 눈치보지 않고 일처리를 하면 될 것 같았지만, 막상 그 시기에는 청부살인이 대중화 되지 않은 시기였다.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 워낙 청부살인업자 못지 않은 실력가들이었기에 누가 보든 아무 상관없이 지하실에 가두고 조지면 되는 시기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산 모처와 같은 곳에 며칠만 다녀오면 일처리가 산듯했던 시기였다. 오히려  청부업이 정식적으로 대접을 받고 좀더 전문화가 되어간 시기는  군부독재 시절이 끝난 소위 민주화라 불리우는 문민정부 시절부터 였다. 이것저것 눈치를 봐야 하는 시기.성질 나는 대로 살았다가는 쪽박 차기 쉬운 시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밥그릇을 조금 덜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비로써 전문적인 설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히 출근하던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든지, 자살의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 등등... 뉴스의 가십거리로 밖에는 취급되지 않는 일들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설계자들과 래생과 같은 킬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푸주의 세계에도 개혁의 바람이 분다. 너구리 영감과 같이 오랜시절부터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했던 사람들의 방식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한자로 대표되는 소장파 킬러. 명문대학까지 나와 버젓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자는 개혁의 바람을 업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너구리 영감에게 반기를 들고 나선것이다. 하지만, 너구리 영감에게는 아들과 같은 래생이 있었다. 너구리 영감을 대표하는 래생과 신흥세력 한자를 대신하는 전설적인 킬러 이발사. 이제 그들은 개인의 생명이 아닌 조직의 명예를 건 사투를 펼쳐야 한다. 사실 이발사라고 하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요즘과 같이 바리깡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발사를 연상하면 안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발사는 현란한 가위솜씨와 더불어 날까로운 칼로 비누거품만을 걷어낼수 있는 고난도의 면도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칼과 가위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전설적인 이발사라면 그의 솜씨는 명불허전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수가 없다. 킬러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을 만한 명결투가 펼쳐진다. 래생과 이발사의 피튀기는 사투.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설계자들의 등장. 빈 의자의 주인이 되기 위해 혹은 빈의자 자체를 없애기 위해 펼쳐지는 설계자들의 두뇌게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의 도입부에서는 지루한면도 없잖아 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한 순간도 책에서 눈을 돌릴수가 없다. 일당 백의 싸움에 도전한 킬러 래생. 그는 과연 목숨을 건 전쟁과도 같은 싸움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건인가? 너구리 영감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낸 한자는 이 세계에 새로운 실력자로써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설계자들. 그들은 과연 오랫동안 존재해온 설계자들의 악성 고리를 끊을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금에도 어디에선가는 끊임없는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만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것이다. 지금 당장 확인할 필요가 있다.어쩌면 , 그 다음 설계의 대상은 바로 우리들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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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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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 그 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엇이든지 재미있다.  지금까지 야구를 주제로 한 재미있는 소설이  많지 않았던 것이 꽤 아쉬웠는데  이 작품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 줄 수 있었다. 이재익이라는 이름이 꽤 생소했었는데 현직 라디오 피디이자 벌써 여섯 권의 장편을 발표한 중견 작가였다.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계속해서 연재를 하고 있을 정도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현역 라디오 피디라 그런지 그의 글은 꽤나 경쾌하고 지금 세대에 걸 맞는 발랄함이 묻어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이 경쾌,발랄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구어체적인 말투는 현재의 유행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듯 하다.

 

저자 또한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다.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공부를 잘하면 무엇이든지 잘 할 것 처럼 보이며, 최소한 지금까지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보장되었던 사회이다.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서울대가 없어져야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 그 사람 또한 서울대 출신이기에 많은 이들의 지탄을 피해갈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지 잘 할것 같은 서울대생들에게도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랜시간동안 깨지지 않는 연패의 기록이다. 사실 서울대에 야구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만큼 의외의 일이며, 서울대의 야구부는 다른 학교의 야구부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사실이 그럴 것이다.  1승 1무 265패라는 찬란한 기록을 가진 서울대 야구부. 한국 야구 위원회에서 조차도 서울대와 경기에서 발생한 기록은 공식 집계에서 제외할 만큼 다른 팀과의 경쟁이 되지 않는 약체중의 약체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타 학교의 학생들은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다. 야구가 아니면 인생이 끝날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울대 생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야구는 취미일 뿐이다. 경기에 져도 상관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면 그 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자신의 길을 걸으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승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서울대 불멸의 4번타자이자 왼손잡이 포수인 장태성만은 예외이다. 한번도 꼴찌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그에게 서울대 야구부는 언제나 꼴찌만을 선물했다. 패배를 모르고 살아온 그들. 그들은 비로서 야구를 통해 승리보다 더 값지 패배를 배워간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아픈 기억이기에 그들에게 야구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주원규의 '천하무적 불량 야구단'을 연상케 했다. 아마도 아내와의 이혼 장면이 첫 머리를 장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같은 야구를 주제로 한 책이기에 비슷할수 밖에 없겠지만, 첫 장면을 보고는 많이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은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꼴찌에게 박수를 . 항상 패배만을 아는 선수들의 모습 등등... 비슷할 수 밖에 없는 패턴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이재익의 책에서는 다른 두 책과는 다른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어차피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서울대 야구부가 감동의 1승을 거두는 순간을 주된 이야기거리로 제시했다면 ,순간의 울컥하는 감동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식상함은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예상된 수순을 따르지 않았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자 야구부 에이스 였던 김지웅이 화자로 등장한다. 대학 졸업후 영화 투자사등을 통해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걷지만, 어느 덧 실직과 이혼이라는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드디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 진정으로 던지고 싶었던 공을 던지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지웅. 학창 시절 서울대 야구부를 주제로한 시나리오늘 집필해서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지나간 야구부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되지만, 정작 가장 핵심에 있었던 4번타자   장태성의 행보만은 오리무중이다.  변호사로 의사로 저마다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하는 법대 출신 장태성. 그의 행방을 찾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줄거리이다. 학창 시절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야구부를 떠났던 것과는 다르게 마지막 까지 야구부에서 함께 했던 인물 장태성.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 야구에 인생을 걸었던 인물 장태성. 사랑도 명예도 야구 앞에서는 모두 후순위일 뿐이었다. 사법고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장수생으로 남아있을수도 있었고, 아니면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평범한 샐러리 맨의 길을 걷고 있을 수 도 잇었다. 하지만, 장태성의 현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날, 그를 오랫동안 흠모했던 여인을 통해 장태성의 행방을 찾게 된 지웅. 장태성은 아직까지도 야구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롯데자이언트의 2군 포수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태성에게는 야구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진정한 꿈이자 삶이었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2군 포수. 생활을 연명하기 조차 힘든 삶이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대의 중반이 된 장태성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야구를 그만두려는 순간이었다. 서울대생이라는 특별한 프리미엄을 가진 그 였지만, 야구에서만큼은 서울대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욕만 앞선 별볼일 없는 2군 선수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인 진정한 2류였을까? 보장된 명예와 사랑을 포기한 채 수십년은 야구에 바친 그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은퇴경기에 쏟아진 갈채는 그것을 증명한다.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 멋진 동료에게 바치는 박수는 이 책의 말미에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이야기들은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프로야구 원년 부동의 에이스였던 박철순, 롯데자이언트의 전설 최동원, 국보급 투수 선동열,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등... 그들의 이야기를 가상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로 등장시켜 이야기의 사실성을 배가 시키고 있으며,  야구의 뒷 이야기들과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장면등은 지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전혀 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한번 정도는 야구장에 가서 시원에 맥주를 마시며 고함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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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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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사는게 아니요. 죽어도 죽은게 아니다'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실재로 일어난 일이다. 살아도 사는게 아닌, 죽어도 죽은게 아닌 사람이 존재한다. 바로 터키의 국민작가라 아지즈 네신의 소설속에 야샤르라는 이름의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가 탄생했다. 웃지못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설마 그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실재로 있었던 일이다. 거짓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야샤르라는 인물은 평생을 생사불명의 기로에서 살아왔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게 아닌 아주 이상한 존재로써 살아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그렇다고, 중간에 너무 화를 내면 안된다. 혈압은 건강에 지극히 해롭기 때문이다. 살기위해서는 말이다.

 

야샤르는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공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동사무소에 간 야샤르. 그는 거기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야샤르는 이미 4살때 전쟁에 참여하여 작렬하게 숨져 있는 사람이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야샤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전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도 아니고 4살이라는 나이에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야샤르와 아버지는 동사무소 직원을 상대로 말도 안돼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동사무소 직원 ( 이 책에서는 관료라는 말로 통한다)은 온갖 말도 안돼는 논리를 펴댄다. 결국 야샤르는 전쟁에서 죽은 인물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공립학교의 입학에 대한 야샤르의 꿈. 어린 야샤르의 불타는 학구열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러 들게 된 것이다. 불행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제대로 취업을 할 수도 없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야샤르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대충대충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 여기서 또 한번의 사건이 터진다. 어느날 갑자기 야샤르에게 헌병이 들어닥친 것이다. 이유는 '병역기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사지멀쩡한 남자가 군대를 안가면 어떻게 되는지. 반대로 사지멀쩡한 남자가 군대를 다녀오면 어떻게 되는지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야샤르는 갑자기 들이닥친 헌병들에 의해 병역기피자라는 천인공로할 대역죄인이 되어 버린것이다. 자신은 이미 네살때 전쟁에 참여해서 작렬하게 순국한 사람이라고 해명을 해보지만, 헌병들에게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일 뿐이다. 하지만, 야샤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군복무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요, 그렇다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군복무를 마친 야샤르. 하지만, 야샤르는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된다. 징집할 때에는 분명히 자신이 살아있다고 하더니, 제대를 하려고 하니 전역증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야샤르는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역증을 발급해줄수 없다는 것이다. 야샤르가 다시 한번 죽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야샤르는 취업을 할 수 도 없고, 결혼도 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사람이 어찌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때 부터 야샤르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 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난 강한 사람편에 설 뿐이다. 관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관료들은 언제나 '내 탓이요'가 아닌 '네 탓이요'로 돌려버린다. 하지만, 야샤르가 항상 죽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의 채무를 대신해서 변제할 의무를 부여 받게 된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빛을 갑고나서 유산을 상속받으려고 하는 순간에는 다시 한 번 죽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유리할 때에만 살리고, 자신들이 불리할 때에는 가차없이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포복절도할 일이 아니라, 환장할 노릇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서는 막강한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야샤르는 소위 실세로 통하는 정치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 친구이자 아버지가 친 자식처럼 돌봐 주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름만 대면 죽은 사람도 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야샤르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못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군력은 결코 약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죽은 사람에게는 일말의 보탬도 될수가 없다.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된 야샤르. 하지만, 야샤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사람이 애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군대도 다녀오고 세금도 납부한 상황인데 애 낳는 것 정도야 애교로 봐 줄수 있는 일이지만, 관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야샤르는 감옥에 까지 가게 된다. 죽은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 이것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감옥은 야샤르에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해주는 교두보 역활을 하게 된다. 감옥을 학교라고 하는 이유를 야샤르를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야샤르의 기구한 인생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 보다는 화가 났다. 화가나다 못해 눈물이 났다. 터키라는 낯선 나라에서 벌어진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야샤르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야샤르가 무수히 만났던 관료들을 나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야샤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의무를 조금만 게을리하면 날카로운 법의 잣대를 드리댄다. 하지만 아주 소소한 권리라도 찾으려고 하면 모르쇠로 일관해 버린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다는 이유로, 전임자의 실수라는 이유로, 행정상의 착오라는 이유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권리를 행사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민등록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존재 사실이 때로는 관료주의라는 이름하에 무의미해지는 경우를 당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이유를 서류한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풍자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든 작가 아지즈 네신의 글솜씨가 돋보인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생사불명 야샤르를 읽어보면 그가 왜 터키의 국민작가라고 불리우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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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 길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편리함 이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것들이 많다. 좀더 빠르게 좀더 쉽게를 외치다 보니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불편한 것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대관령 길이다. 지금은 옛길이라는 이름으로 차량의 통행이 많이 뜸해 졌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강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였다. 아흔아홉구비의 험란한 고갯길인만큼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은 웬만큼 운전이 능숙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도전하기 힘든 길이었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길. 대관령 아래로 시원하게 뻥 뚫린 고속도로는 시간의 단축과 더불어 추억의 기록장마저 없애 버리고 말았다. 참 아쉬운 일이다. 

 

은비령,나무의 작가 이순원. 그의 작품은 항상 따뜻하다. 뛰어난 감수성은 시와 같은 언어를 만들어 내고 , 투명한 글에서는 푸릇푸릇한 풀내음이 나곤 한다. 강원도가 고향이 작가. 그의 글에서는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풍겨난다. 작가에게 아름다운 고향의 기억은 꽤나 두둑한 밑천임에 틀림없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대관령을 걸어서 내려가는 이야기를 쓰고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다섯시간이 넘는 장거리 도보여행은 분명히 힘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 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소통이라는 말이 절실한 요즘이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소통이 단절되고 있다. 그것은 가정이라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울타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가족은 숙식을 제공하는 또 다른 수단일뿐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생활하는 요즘. 집안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한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자연히 서로간의 간격이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대화를 위해 대관령 걷기를 제안한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또한 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아들또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대관령 한굽이를 지날 때 마다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다.  여행이 끝날무렵 그들은 어느덧 하나가 되어 있었다.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15년전에 이미 출판되었다가, 2011년 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계기로 다시 발행된 이 책은 참된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맺기가 무엇인지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어린왕자의 여우 만큼이나 아름답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산길을 걸으며 느끼는 풍경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그 어떤 글보다 아름답다. 평상시에 하기 힘들었던 대화들. 그로인해 발생하기 쉬운 오해들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서로의 벽을 허물게 한다. 내 아이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부모에게 미처 못다한 이야기들이 있다면 아주 낮은 동산이라도 좋고, 아주 좁은 오솔길이라도 좋다. 그것도 힘들다면 서너정거장의 거리이면 충분할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걷다 보면 집으로 향하는 길이 그 어떤 길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길은 더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나무를 생각하는 건 과연 내가 쓰는 이 글이 저 푸른 나무들을 베어내 책으로 만들어도 부끄럽지 않은가를 생각하는 거란다. 내가 쓴 책을 읽은 사람들이나 너희들보다 먼저 내가 쓴 글을 위하여 몸을 바칠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란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빠가 늘 그랬던 것 같지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안타깝기도 하고. [본문 69쪽]

 

아빠가 지금 하는 얘기는 네가 그런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잃어버리더라도 무얼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늘 생각하라는 얘기야. 우리가 그걸 잃어버린다고 해도 아주 못찾을 만큼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었을 때나 어른이 되기 전이나 우리가 다시 찾고자 하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잃어버렸는 지는 몰라도 다시 금방 우리 마음 안으로 우리를 찾아 들어오는 것이거든. [본문 140쪽]

 

이기심이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자기 이익을 위해 남한테 손해를 주는 것만 이기심인 게 아니라 그때그때 계산하면 자기에게 손해가 없지만 그것들이 뒤로 쌓여 살아온 날 전부가 손해인 것. 그러면서도 그게 손해인지 모르고 사는 게 바로 이기심 때문인 거야. [본문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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