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살아도 사는게 아니요. 죽어도 죽은게 아니다'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실재로 일어난 일이다. 살아도 사는게 아닌, 죽어도 죽은게 아닌 사람이 존재한다. 바로 터키의 국민작가라 아지즈 네신의 소설속에 야샤르라는 이름의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가 탄생했다. 웃지못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설마 그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실재로 있었던 일이다. 거짓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야샤르라는 인물은 평생을 생사불명의 기로에서 살아왔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게 아닌 아주 이상한 존재로써 살아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그렇다고, 중간에 너무 화를 내면 안된다. 혈압은 건강에 지극히 해롭기 때문이다. 살기위해서는 말이다.

 

야샤르는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공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러 동사무소에 간 야샤르. 그는 거기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야샤르는 이미 4살때 전쟁에 참여하여 작렬하게 숨져 있는 사람이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야샤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전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도 아니고 4살이라는 나이에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야샤르와 아버지는 동사무소 직원을 상대로 말도 안돼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동사무소 직원 ( 이 책에서는 관료라는 말로 통한다)은 온갖 말도 안돼는 논리를 펴댄다. 결국 야샤르는 전쟁에서 죽은 인물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공립학교의 입학에 대한 야샤르의 꿈. 어린 야샤르의 불타는 학구열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러 들게 된 것이다. 불행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제대로 취업을 할 수도 없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야샤르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대충대충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 여기서 또 한번의 사건이 터진다. 어느날 갑자기 야샤르에게 헌병이 들어닥친 것이다. 이유는 '병역기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사지멀쩡한 남자가 군대를 안가면 어떻게 되는지. 반대로 사지멀쩡한 남자가 군대를 다녀오면 어떻게 되는지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야샤르는 갑자기 들이닥친 헌병들에 의해 병역기피자라는 천인공로할 대역죄인이 되어 버린것이다. 자신은 이미 네살때 전쟁에 참여해서 작렬하게 순국한 사람이라고 해명을 해보지만, 헌병들에게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일 뿐이다. 하지만, 야샤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군복무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요, 그렇다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군복무를 마친 야샤르. 하지만, 야샤르는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된다. 징집할 때에는 분명히 자신이 살아있다고 하더니, 제대를 하려고 하니 전역증을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야샤르는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역증을 발급해줄수 없다는 것이다. 야샤르가 다시 한번 죽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야샤르는 취업을 할 수 도 없고, 결혼도 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사람이 어찌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때 부터 야샤르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 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난 강한 사람편에 설 뿐이다. 관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관료들은 언제나 '내 탓이요'가 아닌 '네 탓이요'로 돌려버린다. 하지만, 야샤르가 항상 죽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의 채무를 대신해서 변제할 의무를 부여 받게 된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빛을 갑고나서 유산을 상속받으려고 하는 순간에는 다시 한 번 죽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유리할 때에만 살리고, 자신들이 불리할 때에는 가차없이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포복절도할 일이 아니라, 환장할 노릇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서는 막강한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야샤르는 소위 실세로 통하는 정치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 친구이자 아버지가 친 자식처럼 돌봐 주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름만 대면 죽은 사람도 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야샤르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못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군력은 결코 약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죽은 사람에게는 일말의 보탬도 될수가 없다.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된 야샤르. 하지만, 야샤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사람이 애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군대도 다녀오고 세금도 납부한 상황인데 애 낳는 것 정도야 애교로 봐 줄수 있는 일이지만, 관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야샤르는 감옥에 까지 가게 된다. 죽은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 이것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감옥은 야샤르에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해주는 교두보 역활을 하게 된다. 감옥을 학교라고 하는 이유를 야샤르를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야샤르의 기구한 인생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 보다는 화가 났다. 화가나다 못해 눈물이 났다. 터키라는 낯선 나라에서 벌어진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야샤르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야샤르가 무수히 만났던 관료들을 나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야샤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의무를 조금만 게을리하면 날카로운 법의 잣대를 드리댄다. 하지만 아주 소소한 권리라도 찾으려고 하면 모르쇠로 일관해 버린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다는 이유로, 전임자의 실수라는 이유로, 행정상의 착오라는 이유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권리를 행사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민등록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존재 사실이 때로는 관료주의라는 이름하에 무의미해지는 경우를 당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이유를 서류한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풍자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든 작가 아지즈 네신의 글솜씨가 돋보인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생사불명 야샤르를 읽어보면 그가 왜 터키의 국민작가라고 불리우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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