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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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사건을 기억한다. 80년대 종말론을 거론하며 무수히 많은 신도들을 착취했던 사이비 종교집단. 그들은 오랜시간 감금과도 같은 생활을 했으며 오대양이라는 공장을 통해 불합리한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그들이 믿던 종말론은 결국 자신들의 종말로 종결되고 말았다. 삼십명이 넘는 사람들의 집단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종말은 어떠한 종말론보다 섬득하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별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 하성란의 장편 에이를 통해 부활했다. 작가 자신도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작품을 썼다고 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오대양 사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오대양 사건을 아는 사람에 한해서 이다.

 

오대양은 신신양회라는 수도권의 작은 시멘트 공장으로 분한다. 시멘트 공장에는 어머니라 불리우는 사장이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는 신신양회의 사장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어머니이기도 하며, 하느님 아버지와 상응하는 존재로서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필두로 일곱명의 젊은 엄마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자식들이 생긴다. 어머니와 일곱명의 엄마. 그들이 신신양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출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과, 모두 여자라는 점. 그리고, 자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아버지라 불릴수 있는 남편. 즉,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신양회에서의 유일한 남자는 삼촌이라 불리우는 사람 한 명 뿐이다. 물론 공장 근로자들은 제외하기로 한다. 어머니만이 존재하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는 훨씬 더 강력한 신격화를 이룰 수 있다. 신신양회에서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남자를 멀리하는 금욕적인 단체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억압받지 않는 신연애사상으로 가득차 있다. 남자를 만나고 정을 통하고 헤어지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하지만,그들은 결코 아버지를 만들지 않는다.  어머니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젊은 엄마들의 노력으로 신신양회는 고도의 성장을 거듭한다. 거기에는 건설경기 활황이라는 호재와 어머니의 공격적인 경영법 이라는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면에는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거대한 배경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 시멘트 파동과 사일로 증축등의 무리한 경영 거기에 동반된 건설경기의 침체로 인해 신신양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고도의 성장은 급격한 추락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다락방에 모인  어머니와 젊은 엄마들. 그들에게 신신양회의 파산은 인생의 종말과도 같았다. 어머니를 포함한 25명의 사람들은 집단자살이라는 거룩한 의식을 치룬다. 좁은 다락방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절명의 시간들. 24명의 목숨이 사라져간 시간. 마지막 생존자는 일곱명의 젊은 엄마중 한명의 딸이었던 한 소녀였다.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 글의 화자가 된다. 보지못했지만 누구보다 이야기를 좋아했던 그녀. 보지못했기에 누구보다 많은 느낄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그녀. 그녀가 살아남은 이유는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한다. 그 날 다락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 그녀는 많은 상상을 하고 끊임없이 기록한다. 이 책은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눈 먼 기억들이다. 그 곳에는 어느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느낌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느낌을 에이(A)라고 부르기로 하자.

 

사건이 있은 후 3년이 지났다. 어머니와 젊은 엄마들의 집단 자살이 남기고 간 것은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세간의 손가락질과 고아가 된 그 들의 자식들이었다. 신신양회와 함께 자라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신신양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 공장으로 모이게 된다. 기태영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여성이었던 그 들은 어머니와 엄마들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신신양회의 부활에 앞장선다.   예상했던 대로 그 들의 방법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물론 외부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경영방식은 부활이라는 말을 떠나 완벽한 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간과했던 민심을 사로잡았고, 친환경 이라는 트렌드와 보여주기라는 방식의 홍보 방식은 사이비 집단이라는 손가락질을 무색케 할 정도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엄마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유전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이었다. 화자에게 조차도 의문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기태영이라는 존재로 인해 제2의 신신양회는 성공의 길을 걷기도 하지만, 또한번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는 위태로운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그 길을 에이(A)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렇다면 과연 A는 무엇일까? 연예부 기자 최영주는 어느 순간부터 유명 연예인들 앞으로 배달되는 이상한 편지의 정체를 알게된다. 연예계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한 그들의 편지 내용은 너무도 자신들을 잘 알기에 오히려 많은 거부감을 일으키게 된다. 그 편지의 발신인이 바로 A이다. 또한 A의 색깔이 주홍색이었기에 사람들은 주홍글씨의 의미를 되새기며 A라는 존재에 의문을 갖게 된다.정말 A는 간통을 의미하고 있을까? 물론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작가는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A의 정확한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다. 내밀함과 모호함이다. 하지만, 내밀함과 모호함에는 A라는 철자는 들어가지 않는다. 나 또한 A의 의미를 파악할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책의 후기를 읽어보면 A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작가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로 넘나든다. 시점 또한 한 가지로 일관되지 않는다.이야기는 또 한가지의 이야기를 유발시키고, 인물은 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결코 만나지 않지만,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은 결국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복잡한 연결고리로 이루어진 작품. 작가는 책의 제목으로 Z가 아닌 A를 선택했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수도 있지만, 알파벳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철자가 A라는 점은 그냥 간과하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는 듯 하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지금에서 꽤나 재미있는 책을 읽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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