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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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하고도 최첨단을 걸어가는 요즘. 갑자기 기생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생이 무엇이더냐? 텔레비젼 사극에서나 볼수 있고, 역사 책 그것도 야담집에서나 겨우겨우 그들의 면목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니던가? 기생이라고 해봤자 조선의 명기 황진이 정도만 떠오르고, 유식한 말로 해어화로 불린다는 눈동냥만 한 나에게 기생을 다룬 이야기는 참으로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울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기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신(新) 자를 앞에 떡하니 붙였으니 이름하여 '신 기생뎐'이다. 이름부터가 옛 것과 요즘 것이 뒤섞여 있는것이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 총 일곱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이 일곱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그냥 우연같지는 않다. 우리의 판소리는 총 12개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양반들의 눈에 난 일곱 마당은 유야무야 없어져 버린채 춘향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심청가와 같이 양반들에 입맛에 맞는 다섯 마당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생이라는 존재가 이 시대에는 거의 없어져 가는 존재이고, 그와 함께 없어져가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잊혀져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기 위해 이 책의 구성또한 7마당으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총 7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마당마다 화자가 바뀌어 진행된다. 즉, 주인공이 여러명이라는 얘기다. 먼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자 기생집 '부용각'의 주인이며 정신적 지주인 타박네가 등장한다. 타고난 박색으로 인해 기생의 대열에는 오르지 모했지만, 기생집 부엌에서만 보낸 칠십평생의 경력자 답게 기생집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소사는 물론이며 기생들의 군기, 진상 손님들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다. 그의 이름 타박네가 보여주듯이 그에게서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욕을 하는이도 듣는이도 모두 그것을 고깝게 생각하지 않으니 욕 밑에 잔잔히 깔려있는 애정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타박네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음식솜씨다. 기생집 전통음식의 유일한 전승자로써, 일이 잘 풀렸으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만큼의 탁월한 실력은 부용각을 지금까지 존재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전통을 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삼합솜씨 하나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그로 인해 소중한 씨앗까지 잉태한 것을 보면 그의 음식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능히 짐작할 부분이다. 그로 인해 어린 젓먹이를 남자에게 빼앗긴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한 맺힌 인생인 걸 보면 뛰어난 음식솜씨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젓먹이 아이를 보낸 채 , 젓투정 하는 아이를 그리며 밤 새 흘렸을 눈물을 생각해 보면, 그의 이름 타박네가 욕만 잘해서 그런것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디메 울고가니?  / 우리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깊어 못간단다. 물이깊으면 헤엄치지 / 산이높아서 못간단다  산이높으면 기어가지

명태줄랴? 명태싫다  가지줄랴? 가지싫다 / 우리엄마 젖을 다오 우리엄마 젖을 다오

우리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 빛갈좋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손으로 따서들고 정신없이 먹고보니    / 우리엄마 살아 생전 내게주던 젖맛일세

명태줄랴? 명태싫다  가지줄랴? 가지싫다 / 우리엄마 젖을 다오 우리엄마 젖을 다오   [ 함경도 전래민요 / 타박네 ]

 
타박네가 부용각의 실질적 주인이자 부엌을 지키는 정신적 지주였다면, 부용각의 얼굴마담이자 기방의 중심에는 소리명창 오마담이 있다. 오마담 또한 어린 시절 기방에 입문해 소리로 잔뼈가 굵은 육십줄의 원로 기생이다. 그녀의 소리는 전국 팔도 어디에 가도 빠지지 않을 명창이었으며, 얼굴 또한 누구에게도 절대 빠지지 않는 절색중에 절색. 한마디로 탑클래스의 기생이었다. 단순히 술과 웃음,몸을 파는 것이 기생이 아니요, 기와 예를 겸비한 것이 기생의 본분이라면 그야말로 거기에 가장 적합한 기생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 오마담이다.  어린시절 기방의 입문동기이자 가장 친했던 친구의 자살로 인해 받은 충격은 평생 그를 사랑만을 좆는 부나방과 같은 삶을 살게 만든다. 수많은 남자를 사랑한 여인, 수많은 남자로 부터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여인.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진심으로 남자를 사랑한적 없기에 단 한번도 남자에게 배신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인.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속에 그에게 남은 것은 술독오른 육신과 나오지 않는 소리뿐이다. 소리명창으로 살아온 그 녀에게 잃어버린 소리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와도 같다.  그런 여인에게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 사랑이 있었으니 부용각의 집사 박기사이다. 멀쩡한 직장생활을 하던그가 군산 뒷골목의 부용각에 찾아든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지난 밤의 숙취를 이기기 위해 해장국집을 찾아 헤매던 그의 발길을 잡은 것은 능소화의 농염함도 아니고, 부용각의 비릿한 부엌내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끈이었다. 바로 오마담의 존재다. 오마담을 본 순간 박기사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은 모두 잊은채 부용각에 주저않게 된다. 바로 20년간의 외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오마담의 빼어난 외모도 아니요, 절창의 소리도 아니요, 사향냄새에 사로 잡혔다는 그는, 쉽게 식지 않는 뚝배기와 같은 은은한 사랑을 보여준다. 2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마다 챙겨다 준 ,꿀물 대접이 새겨놓은 마룻바닥의 둥근 테는 오마담에 대한 박기사의 사랑만큼이나 깊고 은은하다. 대접이 만들어 놓은 마룻바닥의 둥근 무늬는 어떠한 인위적인 행위로도 지워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상처일 것이다.   그런 은은한 박기사의 사랑에 오마담은 뭇 남자들과의 질펀한 애정행각으로 화답을 하곤 한다. 박기사는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오마담의 진심은 어떠했을까?
 
이보오, 박기사. 오늘은, 오늘만은 그리 바쁘게 돌아서지 마오. 지난 이십 년 동안 꿀물 대접을 들고 내게로 오는 당신의 발소리를 들었소.한 발 한 발 이 꽃살무늬 방문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당신의 발소리를 나는 귀를 열고 듣고만 있었소. 한 발을 뗄 적마다 이리저리 흩어질 당신의 어지러운 마음과 한 발을 디딜 적에 오롯이 맺힐 아픈 마음도 환히 알고 있었소. 그럼에도 나는 자는 척 누워 있었소. 당신이 그림처럼 몸을 움직이며 소리도 없이 방문 앞에 꿀물 대접을 놓고 돌아설 때에 내 여러 마음들이 가만히 모이는 것, 모인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려 하는 기미를 나는 모르는 척 애써 눌러두었소.아침 햇살이 꽃살문을 적시며 방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들리던 당신의 기척을 부러 듣지 않으려고 이불을 덮어쓴 적도 많았소. 내가 당신을 모르 체한 것. 끝내 당신이 내게로 오지 못한 것.당신은 그것 때문에 평생을 아팠겠지만 그 또한 사랑의 한 형태요. 내 사랑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해주오.[본문234쪽 ]
꽃들이 모이는 곳에 어찌 박기사와 같은 진솔한 벌과 나비만 있겠는가? 꽃들의 단물만을 노리고 모여드는 온갖 잡 것들이 다 있으니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의 기둥서방  김사장이다. 평생을 제비족에서 기둥서방으로 여인네들 등만 쳐먹고 살아온 하류인생. 그에게 여인은 인생이요, 인생의 최대 목표는 여인들을 등쳐서 한 몫 단단히 챙기는 일이다. 그런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지막 으로 접근한 사람이 바로 오마담 이요. 오마담 또한 그런 기둥서방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물론 그 결과는 또 한 번의 배신과 떠남이다. 김사장이라는 인물은 타박네의 지청구대상 최우선이자, 이 책의 밉상이면서 웃음을 주는 양념적인 역할을 한다.무례한 그의 행동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현실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뻔뻔함이 절대적이라는 커다란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오마담이 소리기생의 대표주자였다면, 미스 민은 이시대 마지막의 춤기생이요 부용각의 대를 이을 유일한 기생이다. 불우한 가정생활 속에서도 언니들의 뒷바라지로 인해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로써의 길을 걷던 나끝순에서 부용각 최고의 춤기생 미스 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우한 우리 누이들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미스 민이 화초머리를 올리는 과정은 작가의 역사적 문화적 고증에 얼마나 세심한 관심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백미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타박네의 기방음식 전승자로 등장하는 김천댁과 그의 시다(주방보조) 뚱땡이와 같은 인물도 이 책에서 빼 놓을수 없는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한 편의 판소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육담이 때론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해학과 따뜻함이 있어 이 책의 추락을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사라져가는 기생들의 이야기. 기생들의 문화마저 우리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계승해야 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생이  지금의 매춘부와 같다는 편견이 지배적인 요즘 , 그들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거침없는 말투와 빠른 이야기 전개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또한 우리말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적절히 버무려진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작품의 말미로 갈수록 터질것 같은 눈물을 참기힘들게 하는 작가의 재주 또한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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