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 민주화를 넘어,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이 책을 다 읽은 날 공교롭게도 신문의 1면에는 국내 모기업의 인사발령 소식이 전해졌다.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할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닐건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왈가불가 하는 것은 그 회사가 국내 최고의 기업이고, 사실상 회사의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대단할 만큼 책의 내용과 흡사한 일이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책은 더이상 허구가 아니고, 현실은 책과 같은 허무맹랑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책과 현실의 경계는 더이상 없다. 조정래의 책 허수아비 춤에서만은 그렇다는 말이다.

 

아리랑,태백산맥,한강이라는 굵직한 대하소설에만 어울릴것 같은 작가의 작품.420쪽에 다다르는 장편임에 분명하지만 조정래 이기에 이 책은 무척이나 짧게 느껴진다. 그의 책은 읽어가는 내내, 줄어드는 책의 양이 아까울 만큼 독자를 잡아 끄는 힘이 엄청나다.1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신작 허수아비 춤 에서도 작가의 필력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방대한 분량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한 권의 책은 아쉬울 뿐이었지만,  한강 그 이후의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나에게 어느정도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 이었다. 책을 읽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조정래라는 작가가 있어 무척이나 다행이다.더 좋은  작품들을 오랜시간동안 만나고 싶다. 나의 욕심이다.

 

정치와 경제는 어느덧 한 몸이 되어버렸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고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절대로 분리되어 논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짧은 시간동안 놀랄만한 정치적,경제적 성과를 거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한몸화가 더욱 심화되어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은 배다른 형제가 아닌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운명적 교감을 나눈다. 운명도 그들을 갈라 놓을수는 없다.  허수아비춤을 읽는 동안 나는 만화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허영만 혹은 박봉성과 같은 만화가들의 기업극화를 떠올리며 조정래의 새로운 변화에 조금은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전작에서 치열하게 논했던 이념의 대립이나 민중의 아픔들을 이 책의 행간에서는 쉽게 찾아볼수가 없었다. 국내 제1의 기업이 되기를 꿈꾸는 한 재벌가의 전방위한 로비전. 그 이면에는 천문학적인 비자금 조성이 따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를 대대손손 세습하려는 불법 경영권 승계라는 음모가 진행된다. 탈세를 비롯한 불법행위는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노조탄압,노동력 착취등과 같은 인권유린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행위이다. 법조인,학자,언론인 등과 같이 이시대 최고의 두뇌 집단이 모여 행하는 모의는, 자신의 부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축척할 수 있는가하는 목적만이 유일한 뿐이다. 그에 반하는 행동은 어떠한 형태로든 용납할수가 없다. 마키아벨리도 울고 갈 그들의 군주론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하면서는 절대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 자신의 원활한 경제 활동을 위해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사람들.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 주야로 노력하는 이 시대 최고의 애국자들인 그 들 앞에서는 어떠한 논리도 무용지물일수밖에 없다. 가장 작은 투입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는 것이 경제논리의 기본이라면, 그들에게는 가장 작은 합법 행위로 가장 큰 불법 이득을 얻을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생존논리일 것이다.  이런 큰 원칙 앞에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허수아비일수 밖에 없다. 자기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야 하는 허수아비는 그 이름이 가져다 주는 허무함 만큼이나 존재감이 떨어진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겨울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는 무심코 지나가는 새들도 우습게 볼 수 밖에 없다.스스로를 로얄 페밀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부딪히는 모든것들은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또한 충분히 모욕스러울 만큼 철저히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돈 과 권력앞에 힘없이 허물어져가는 군상들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발견하기 힘들다. 양심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죄로,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은 한없이 가엾다. 과연 그들의 저항이 어느정도의 파장을 일으킬수 있을까 의문이 앞선다. 

 

잔인한 현실의 보여주기를 통해 작가는 처절한 모욕감과 박탈감을 유발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담담함 이상의 느낌을 받을수가 없었다. 어느덧 우리 현실의 부폐함이 더이상 충격적이고 놀랄만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일수도 있다. '그럴줄 알았다'라는 말은 '어쩔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 나는 이미 철저한 허수아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권력이라는 무서운 바람앞에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춤을 추어대는 심지어는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회.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허수아비들이 흥에 겨운 나머지 스스로가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까지 시기상조 일까?  나의 현실이 허수아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허수아비의 진정한 존재 의미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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