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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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허삼관 매혈기

지은이 : 위화

옮긴이 : 최용만

펴낸곳 : 푸른숲 / 1999년 초판 / 342쪽




아마도 중국 소설은 처음 접해본 것 같다.

왠지 모를 벽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주 가까운 나라이고, 우리 네 문화와 그다지 틀리지 않은 생활권이기에 쉽게 대할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으로 그동안 읽어보지도 ,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특히 근,현대 작품은 그네들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전무한 지식으로 인해 더욱더

읽기가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여러사람들의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날 문득 읽고 싶다라는 생각에

주저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 이런 작가도 있었구나 하는,

아주 즐거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항상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작품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은 정말 유쾌한 일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모택동에 의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는 1960년대이다.

그 당시 문화대혁명의 의미라든지, 중국인민들의 생활 상등에 대해 자세히 알면 좋겠지만

그것에 대해 문외하다고 해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상당히 희화적이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발언이나 , 행동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결혼 후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아내 허옥란은 분만의 고통에 빠져있을때

본인 허삼관은 분만실 밖에서 히죽댔다는 이유로 삼형제의 이름을

일락,이락,삼락이라고 지었다는 등의 내용을 보면서 이사람 참 재밌는 사람이구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허삼관은 엉뚱하면서도 때로는 무척이나 깍쟁이같고, 모질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첫째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고는,아내 허옥란과

아들 일락이에게 대하는 행위는 정말 저래도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고,

오랜 가뭄으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던 중 자신의 매혈로 인해 온가족이 오랜만의

외식을 하면서도 유독 첫째 아들 일락이만을 빼놓고 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뭐 저런xx가 다 있냐는 말을 하기도 할 정도였다.













허삼관은 무식할줄은 모르나 정직하고 평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문화혁명의 커다란 흐름에서 자신의 아내 허옥란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되자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전전긍긍 하면서도,

하루종일 서있는 아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저잣거리에 그녀의 식사를 챙겨다주며, 마치 어린시절 우리네 도시락을 보듯 맨밥밑에 몰래 반찬을 숨겨다 주기도하고,

자식들 앞에서 엄마의 지난 과거를 비판하는 자리에서도,

엄마 뿐만 아니라 자신도 외도를 했음으로

엄마와 똑같이 자신도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분연히 자식들 앞에서 내보이며

엄마를 증오한다면, 나도 마땅히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릴정도로

평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허삼관은 따뜻한 사람이다.

자신의 몸속에서 흐르고 있는 피만큼이나 따뜻한 사람이다.

자신의 몸속에서 흐로고 있는 소중한 피를, 자신이 아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한없이 퍼주는,

그것이 비록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 번이라도 더 팔수 있을까 고민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 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지요.

이젠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스물한 살 먹어서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 봤으니

사람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허삼관은 불쌍한 사람이다.

평생을 타인을 위해서 피를 팔아왔던 그가,

정작 자신을 위해 그 깟 돼지 간볶음 한접시와 황주 두되를 먹기위해

피를 팔려고 했을 때에는

아무도 그의 피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피를 팔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매혈로 인한 수입원이 없어진 차원이 아닌,

그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할수있을것이다.

허삼관이 인도를 따라 걷는데 문득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 판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서 피를 빼낸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는 일임이 자명할진대,

자신의 몸에서 피를 빼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이 없어진 것으로 한탄할 수밖에 없는 이 아이러니 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평생을 자신의 매혈로만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무능한 가장의 당연한

말로라고 결론짓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내 피가 빠져나간 내 몸속에는 어느덧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허허 웃으면서 책을 읽고난뒤 어느 새 벌개진 내 눈을 보며, 무심코 담배 한대를

피워문다.

내 피를 팔면 돈을 얼마나 줄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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