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천국의 몰락
리처드 던컨 지음, 김석중 외 옮김 / 인카운터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현재의 신용자본사회가 1964년 미국이 달러화의 금 보장제를 폐지하면서 생겼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라웠다. 이전에도 없지 않았겠으나 본격적인 신용의 산업화가 이루어진 게 고작 30여 년밖에 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후 미국은 거대한 부흥을 누렸고, 그 결과로 엄청난 금융 위기를 겪었다.

1913년에 제정된 금 보장제는 달러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연방준비은행이 화폐발행량의 40%를 지급가능액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법인데, 말하자면 1달러를 발행할 때 40센트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달러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화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채권이라는 의미다. 금 보장제가 강제하는 40%의 금 보유는 점점 줄어들어, 1968년 연방준비은행은 고작 25%의 금만을 보유하다가 금 보장제 폐지법으로 그러한 강제마저도 사라졌다. 달러는 본질적으로 상환 받아야 할 채권이기 때문에 상환 받을 수 없다면 부도가 난 것이지만, 달러 자체가 가치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상환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채무를 탕감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한 화폐만큼 미국 경제의 가치가 증대했을까? 1968년부터 2010년까지 연방준비은행은 유통 화폐를 20배나 증가시켰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은 아시아 국가의 수출 주도 성장을 위해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이 벌인 빚잔치가 온 세계를 뒤흔들게 됐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자원은 재화를 창출한다. 그렇다면 화폐라는 자원 또한 가치를 창출하도록 한 것이 금융 산업일 것이다. 그런데 자원이 창출한 재화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남지만 금융은 그 자신의 몸집만 불릴 뿐이다.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금융 산업의 발명 자체에 있을 것이다. 

금융 바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화폐량은 측정할 수 있지만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원을 재화로 만들었을 때,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었을 때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화폐량이나 신용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늘어나는 재화의 가치를 수용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공급자는 재화에 대한 대가를 제값으로 받지 못하게 된다. 경제 대공황은 허구다. 단지 고성장에 대한 반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저성장 시대에 적용하는 조직과 개인만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화폐를 더 찍어내지 말고 신용의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에는 이를 수 있겠다. 이 책의 원제가 Creditipia, 제목처럼 신용천국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몰락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IMF를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미국은 이제 겨우 한 차례의 위기를 겪었을 뿐이다. 다양한 위기 요인이 미국과 세계 경제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든 사람들은 살아간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저성장 시대에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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