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lue0729 > [1강. 재현이란 무엇인가] 후기!
경어체 쓰지 못한점 정말 죄송합니다ㅠ 조금더 격식있게 써보고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2010. 1. 15. 첫 시간
1. 재현이란 무엇인가
-채운 선생님
천신만고 끝에 인문학스터디 1기에 참여하게 된지라, 강의를 듣기 전 완벽히 준비를 해야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교제로 지정된 ‘개념어총서’도 못 읽어보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첫 강의시작 전. ‘재현’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데 과연 강의를 잘 이해하고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에서부터 높은 경쟁률을 뚫고 1기가 되었는데 그 값어치를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강의가 끝난 지금, ‘책 주문하기’를 후다닥닥 누를 수밖에 없었다. 강의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감동적인 연설이었고, 적어도 나 하나의 인생관을 뒤흔들어 놓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분들이 대다수일 것이라 확언할 수 있다. 이 깨우침이 날아가기 전에 나름 강의를 정리해놓기로 한다.
1. 재현이란 무엇인가
최근 개봉한 영화 ‘아바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는 ‘이상향’을 꿈꾸며 산다. 모든 존재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무엇이 잘못 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 한다. 인간의 존재방식을 돌아보건대, 인간의 역사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과거에도 없었고 또한 미래에도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에 가까운 찬란한 문화 부흥의 시대였던 ‘르네상스’와 ‘영,정조시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반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문화 부흥의 시대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증거들을 보면, 그 시대를 완벽히 지배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향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배고파서 굶어죽은 거지가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라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재현의 특성이다. 아무런 의미도 인과도 없는 세상을 마치 그런 것 마냥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 이것이 재현이다.
2. 재현의 세계에 사는 우리
우리의 생존방식은 ‘개념’의 재현이다. 개념이 무엇인가 하면 세상만물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을 보고 ‘정말 비인간적이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비인간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를 인간적이라고 부르고 비인간적이라고 부를지 스스로 정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개인은 개인만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에도 세상 사람의 숫자만큼의 다다른 개념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위의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왜 괜찮은데?’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정의한 ‘개념’을 끊임없이 재현하며 산다. 자신의 개념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고, 가치판단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 푸코는 ‘모든 사람들은 투명한 어항 속에 갇혀 있다.’라고 말했다.
3. 재현의 커다란 함정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개념을 ‘진리’로 믿기 때문에 큰 오류를 범할 위험을 가진다. 꼭 진리로 믿어야지 라고 결심해서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는 메커니즘이 이미 그렇게 작동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모든 지배계층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회의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가 ‘국민을 위해서’ 라는 말이란다. 그런데, 정작 국민은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없다. 지배계층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국민’의 개념에 맞추어서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그래서 진리일 수는 없으나 진심일 수는 있다고 한다.) 지배계층은 끝없이 진정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하게 실패한다. 과학자는 단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탐구하지만 후학들에 의해 그 진리는 깨지게 된다. ‘재현’이 어쩔 수없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라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바로 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곧잘 생각한다. 애인과 매번 싸우고, 오해로 점철된 힘든 사랑을 하지만, 이상적인 사랑은 어딘가에는 있을 것 이라고. 이상적인 사랑, 즉 개념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믿음. 이것이 우리를 현실에 살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재현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면, 나만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이상향을 계속 재현하면서 진짜가 아닌 ‘가상현실’속에 사는 것이다. 진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세계의 진정한 모습인 ‘변화, 사건’을 무시한다. 그대로 즐길 줄을 모른다는 말이다. 나만의 이상향을 추구하기위해 현실을 희생한다. 괴로워도 참고, 힘들어도 그냥 한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진리는 없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는 흐름 속에 존재할 뿐이다.
4. 지배담론이 재현을 통해 구성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재현은 1. 재인식 2. 상식(양식)이라는 논리를 가진다. 먼저, 재인식은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을 불변한 것으로 보고, 같은 방식으로 인식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나도 변하지 않고 너도 변하지 않으니 판단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런 불평들을 한다. 하루하루가 지겨워, 오늘도 어제와 별다를 거 없어, 비슷비슷해 등등. 그러나 매우 놀랍게도(?) 인식의 주체인 ‘나’도 매일매일이 다르며 인식의 대상인 ‘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계속계속 변화한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개념을 항상 수정해야 할 것인데, 우리는 지적으로 게으른 동물이므로 그냥 내버려둔다. 그러니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자신만의 고정관념에 빠져 그 세계에서만 살게 되거나,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전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발생한다. 내가 가진 것(가진 것이 있기는 한가!)들이 시간이 흐르면 또 변한다는 사실. 사실 내 삶이 재인식의 연속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두 번째로 상식(양식)의 논리이다. 개인들이 재현에 한번 쯤 의심을 품지 못하고 습에 젖어 살아가는 막강한 파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보편적인 것이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다수가 전부를 대표한다는 말이다. 재현의 기준이 되는 개념은 이렇게 ‘상식’선에서 결정된다. 너도 나도 저 사람도 믿으니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냐는 논리인 것이다. 분명 최다수는 경향을 말해주지만 그것을 진리로 볼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혹은 내 개념이 틀렸다는 것을 나중에 인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경향으로서만 인정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5. 재현의 세계에서 탈주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재현의 세계에서 탈주 할 수 있는가. 재현은 인간이 가진 어쩔 수없는 특성인데 어떻게 그를 벗어난단 말인가. 우리는 스스로를 감시하는 철학자가 되어야한다. 철학자는 어떠한 개념과 현상에 ‘왜 그런데?’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믿고 추구하는 것에 맹목적이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먼 거리에서 조망하며 ‘그게 정말로 맞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자세. 이것만이 재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당연히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것을 부수는 작업이므로 허무함과 괴로움을 동반한다. 그렇게 부술 거면,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부정할 것이라면 왜하느냐! 라고 비관하고 비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는 과정 자체가 삶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 외로움, 분노, 절망 등 온갖 고통을 당하겠지만 반면에 행복, 뿌듯함, 감사, 즐거움, 짜릿함 등의 온갖 달콤함도 맛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체를 즐기는 자세. 그 가운데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 이것이 재현을 벗어나 분명한 나로 사는 길일 것이다.
6. 청중과 선생님의 질의&응답
(1) 강의를 들으며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나의 ’가치관’을 부정한다는 도전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개념과 가치관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 매우 비슷하게 느껴져서 혼동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개념은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그냥 하는 행위의 메커니즘이고 가치관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의지적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재현을 탈피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말이다. 바람직한 가치관은 꼭 필요하다.
(2) 많은 ‘자기개발서’들은 선생님의 강의에 의하면 재현적 삶을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향인 ‘꿈과 비전’이 없으면 삶의 방향성을 잃게 되는 것 아닌가?
-> 우리는 꿈, 비전이라는 말을 잘못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야. 라고 비전을 정했다면, 연극 영화과에 진학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충무로에 가서 영화를 찍고 그 영화가 크게 성공해야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코스를 밟아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지 비전이나 꿈이 아니다. 비전이나 꿈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디쯤의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그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경우는 ‘내가 받은 도움을 지적 활동을 통해 만인들에게 모두 봉헌하는 것’ 이것이 나의 비전이고, 보시다시피 지금도 그 비전을 계속 이루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채운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이해한 내용이다. ‘개념어총서 재현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놓은 글 밖에 되지 않을 듯하지만, 나 나름대로 정리했다는데서 만족감을 느낀다. (나중에 부정되더라도 지금 즐기려는 것?) 강의가 끝난 후 정말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모 쿵푸스’를 읽고 난 뒤, 앎의 코뮌을 형성해 지(知)를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갑갑증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 그 실체를 낱낱이 파악했고 철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벌써 다음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