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참 이상한 게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영혼 어느 부분이든 실컷 꺼내놓지만 둘 이상이 되면, 둘 이상의 의식(意識)이 함께 하게 되면 내면 안에 있는 것 중 가장 생소한 것이 나온다. 다른 것들은 꽁꽁 숨는다. 때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어느 것이 드러나고 어느 것이 숨는지가 다르다. 긍정이 남든, 분노가 남든, 흥이 남든. 전면에 남아 눈앞의 타인에게 드러나는 그 하나는 그 순간 가장 생소한 것이 된다.
생소하지 않고 편하다면 좋을 텐데. 다른 이의 의식과 만나는 순간에 나타난 자신을 편하게 느낀다면. 얼마나 많은 소동들이 안 일어났을까.
예술가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꽤 알고 있는데, 이들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이들은 사회가 주는 자극을 매우 민감하게 느낀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수 천 수 만 의 빛깔과 소리들. 에너지의 파장을 구별하고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 현란함에 혼란스러워한다. 사회와 조응한 자신의 모습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사회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섬세한 감각기관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의식의 평정을 되찾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그래서 홀로 있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홀로 있는 의식은 내면의 분열과 소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 놓인다. 분열이 극복된 것인지 의식을 놓은 것인지 분간이 안 되지만. 사람들은 그를 흔히 "無我"라고 한다. '我'가 사라지고 눈앞의 대상 세계도 사라지는 그런 순간. 고통도, 쾌락도, 감정도, 의지도, 의식도 모든 것이 없다.
대상 세계와 나 자신을 동시에 없애는 것은 힘든 일이다. 生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대신 압도적인 자연 앞에 설 때 그나마 가장 가까운 그런 無我의 상태를 맛보곤 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 보잘 것 없는 나의 존재는 사라진다. 오로지 자연, 자연. 김영갑의 사진에는 자연이 있다. 자연, 다르게 말해 스스로가 사라지는 순간들의 연속이.
제주도에서 20여 년을 홀로 작업한 김영갑. 그의 사진은 도취의 순간들이다. 안개, 빛, 어둠, 그림자, 구름, 무엇보다 바람. 시간에 걸쳐 펼쳐지지 못하고 오로지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들. 김영갑은 황홀경에 빠져 영원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담는다.
그럼에도 순간은 흘러 시간이 된다. 시공간에 펼쳐져 있는 자의식은 또다시 혼자임을 인식한다. 홀로 있음으로써 나타나는 자신들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홀로되기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홀로 있을 때 나타나는 자신들의 전쟁보다는 차라리 타인과 마주쳤을 때 나타나는 생소한 자신을 선택하는지도.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허약한 인간의 의식.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자아를 핥으며 존재 확실성을 다잡는 것일까.
생소함을 단호히 거절하고 오로지 제주와 마주한 김영갑. 그의 사진 속에서 각 생명들은 자신의 무게만큼 움직인다. 바위는 선명한 선으로, 갈대와 풀들은 흔적으로, 오름은 굳건한 배경으로. 무게를 드러내는 매체는 바람이다. 바람이 모든 존재물들을 스침으로써 각자의 무게가 드러난다. 존재함이 드러난다.
그 바람을 함께 맞고 있었을 그. 그제야 자신의 무게를 느꼈으리라. 셔터를 누르며 그제야 느껴지는 자신의 무게에 그는 환희했을 것이다. 삶의, 생명의 무게에. 김영갑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