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lue0729 > 역사에서 재현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
저번에 강의 정리글을 올린, 정말 어줍지 않지만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인문학에 관심만 많은 처자입니다.^^
나온 지는 꽤 되었지만 인문학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지금에서야 (도정일, 최재천 공저) '대담'을 읽고 있습니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의 사회, 정치, 문화와 같은 행동 양식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한 쪽은 재료를 제공하고 한 쪽은 설계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문학 스터디인 우리는 자연과학의 문제에도 꼭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로, 인문학에서 탈재현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인문학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듯이 보입니다. 개념에 대한 끝없는 비판, 반성이라는 측면에서 ‘철학하기’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재현적 사고를 하게 된다면, 탈 재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개별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적어도 사회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자신이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탈 재현은 결국 또 다른 이상향을 상상하는 ‘재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까?
대담을 보면 <인간의 이상과 꿈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존엄을 실현하자는 것이라면, 그 꿈을 향한 발걸음은 적어도 역사의 제한된 시간폭 안에서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인문학자 도정일님이 말하십니다. 노예제 사회가 폐지되고 보편인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채운님은 푸코의 예를 들어 <역사 속에서 발전이라는 개념은 없다>라고 일축하셨지만, 이상향을 그릴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그 결과가 어찌되던지 간에-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리는 능력을 통해 군주제부터 제국주의, 공산주의를 거쳐 민주주의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정치, 법, 규율 등 사회양식은 그 체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이상향을 그리지 않고서 어떻게 기존의 불합리한 사회체제에 맞서 구체적인 대안이 되는 사회체제를 제시할 수 있는지요.
이런 이상향을 그리는 능력도 채운님의 강의에 조심스럽게 따르자면, ‘재현’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탈재현의 논리가 재현의 ‘사회구성 기능’을 거세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질문이 참 논리적 비하에 빠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ㅠ 저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어디에서 제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재현은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채운 선생님 외에도 스터디를 같이하는 사우(師友)로서^^ 여러분의 의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