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식톤 콤플렉스 -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
김덕영 지음 / 길(도서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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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에리식톤 콤플렉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홍보 영상물의 주제는 이명박은 배고픕니다!”이다. 그는 ‘7·4·7’ 공약 즉, 7퍼센트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을 약속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공약의 핵심은 경제였으며, 그것은 다시금 살려내야 할 아주 절박한 대상이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문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살리고자 한 경제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먹지 못해서 생존에 허덕이는 그런 집단적 빈곤상태에 놓여 있단 말인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9년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여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GDP17천 달러로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불과 10년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모두가 허기진 허기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가 생각한 허기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허기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저자 김덕영 교수는 현대대한민국 사회의 자본주의 정신이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에리식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인물로 신의 저주를 받아 끊임없는 허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인해 자신의 몸까지 다 뜯어먹고 마침내는 이빨만 남는 비극에 처한다. 김덕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정신을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가능한 한 많은 화폐가치적 이윤을 추구하는 천민 자본주의와도 성격을 달리한다. 그가 말하길 한국 자본주의 정신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국가에 의해 주조되고,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재벌에 의해 구현되고, 조용기로 대표되는 개신교에 의해 성화된 에리식톤 콤플렉스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물질적 재화와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2.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서구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서 서구 자본주의의 정신이 청교도주의, 그 중에서도 칼뱅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했다. 칼뱅주의의 이중예정론(신도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사람들의 내적 고독감을 확산했고,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을 받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짐작하기 위해 소명으로서의 직업의식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이윤을 소비나 항락에 쓰지 않고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신의 영광을 드높이고 구원을 확증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확증사상이다. 여기서 신과 홀로 대면한다는 내적 고독감이 싹트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려다 보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와 세속적 금욕주의, 그리고 합목적적 사유 방식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이 체화됨에 따라 서구의 자본주의는 소비를 위한 이윤추구가 아닌 합리적 재투자를 위한 이윤추구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와 종교적 정신의 결합은 우연의 산물이었으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시민에 의해 추동된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일제강점기 시기 자본주의 정신이 외부로 유입되고, 국가 위주의 산업발전이 이뤄지면서 서구의 그것과는 성격이 달라졌다. 한국의 자본주의 성장은 서구의 시민계층이 자발적으로 이뤄낸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지도받는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 성장은 개인의 정신의 성숙을 담보로 하는 것이 아닌 오직 경제가 곧 근대이고, 경제성장이 곧 경제라는 환원근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경제 성장만이 근대화이며, 국가-기업이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개인은 도구화되고, 경제 이외의 근대를 반근대주의적 발상으로 간주하고, 문화적 전통주의 즉 유교를 극복하지 않고 그것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정권에 대한 정당성이 결핍된 상태였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했으며, 그것을 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는 빈곤담론을 성장담론으로 극적인 전환을 끌어낸다, 국민들에게 빈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하고, 빈곤을 민족 국가 수준으로 일반화하여 빈곤 극복은 사회적 통합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음을 말했다. 하지만 이 담론의 주체는 개인이 아닌 국가와 민족이었다. 빈곤담론의 주체가 민족이라면 성장담론의 주체는 국가, 그리고 그와 동맹을 맺은 재벌이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발전과 빈곤은 항상 상호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빈곤은 발전의 대립물이라기보다 그것의 부속물에 가까웠다. 당시 대한민국은 충분히 발전했지만, 여전히 후진하다고, 혹은 선진했다고 말 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전자의 경우 국민의 열정을 상실시킬 위험이 있으며, 후자의 경우 국가-재벌 동맹,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이 상실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은 자본주의 정신을 강화하여 사람들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포섭하는 한편 정당성을 마련하여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2경제이다. 이 개념은 잘 먹고 잘 사는 주체는 개인이 아닌 국가로 설정하여 국가 전체의 근대화를 실현하지 못하는 근대화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납득시키고자 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성장에서 중요한 주체는 개인이 아닌 국가였다. 따라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는 경제성장과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없으면 진정한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국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설득시켰고, 그들을 다시금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포섭되도록 만들었다. 조국 근대화는 이후 김영삼 정권에서 N만 달러 시대로 지극히 단순화되었다. 근대화를 규정하는 여러 요인들을 해체한 뒤 1인당 국민소득으로 간결하고 선명한 방정식을 마련했으며, 선진국과 꾸준히 비교하여 1만 달러, 3만 달러로 끊임없는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N만 달러는 방정식의 형태로 분명하게 표현된 에릭시톤 콤플렉스이며, 경제성장이 다른 모든 근대화 담론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재벌의 불면불휴, 그리고 교회의 성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한 축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빈곤-발전 변증법을 마련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불면불휴(자지 않고, 쉬지 않음)하여 선진국을 목표로 노동에 헌신함을 의미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풍부한 전통문화에 비해 경제는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근대화를 경제성장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그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반영한 문화적 근대화를 전면 거부하며, 오로지 경제적 성장만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근대화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세계에서 첫째가는 경제 대국 일본도 지금 주 46시간을 근무하는데 이제 겨우 국민소득 5천 달러인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노동시간은 노동법상 주 44시간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공휴일 수도 일본보다 우리가 더 많다. ... 일본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보다 적게 일해도 되게 법을 만들어 통과시킨 이들의 진의와 목적이 무엇에 있었는지 심히 유감스럽다. ... 자신들의 인기나 표를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만 악법이 아니다. 국가에 해를 끼치는 법도 악법인 것이다.”
p192~193

 

그는 이미 국민소득 5,000달러로 중진국에 진입한 지 오래인 한국이 노동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국가의 무한한 발전을 저해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빈곤한 상태이다. 그가 불면불휴의 생각하는 불도저로 만든 정신은 물질적 재화로 귀결되는 욕망, 즉 에리식톤 콤플렉스였다.

 

교회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에 경제적 주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전도사로서 이 두 세력과 동맹관계를 맺고, 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성화(聖化)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원로 목사인 조용기 목사는 기독교 신을 물질적 부의 신으로 환원하여 이 신의 축복은 번영과 부의 축복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본주의화 되고 기업화되면서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신의 축복으로 정당화했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들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들에게 물질적 축복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교회는 적극적으로 환원 근대의 이데올로그가 되고, 환원근대의 전도사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발전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다.

 

4. 진정한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은?

김덕영 교수는 진정한 한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위해 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모든 것을 경제성장으로 환원하는 환원 근대적 사고를 극복하고, 핵심축인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교에 기반한 전통적 집단주의 정신을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으로 대체함으로써 경제적 근대주의와 문화적 근대주의를 결합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개신교는 환원 근대의 이데올로그 또는 전도사의 역할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종교의 본연의 임무인 영혼의 구원에 헌신하는 것이다. 즉 개신교는 탈주술화해야 한다. 그는 국가가 국가답고, 기업이 기업답고, 교회가 교회다워짐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됨에 따라 합리적인 자본주의 정신이 표출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샐러리맨의 신화였다가 백 억원 대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이명박 대통령과, 60억 원대 자산가에 최고 권위의 대학교수였지만 사모펀드를 돌리고, 자식의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부정채용 의혹으로 논란이 된 김성태 전 의원, 상속세 문제로 소송을 걹 있는 한진가의 2세들 등 대한민국의 민낯에는 한 푼의 돈도 잃고자 하지 않는 권력자들의 에리식톤 콤플렉스가 담겨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기에 여전히 관대하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는 재벌 총수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법원은 재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 경영을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 같다. ... 그러나 재벌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갖추는 게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지 않겠느냐.”

 

너무도 당연하기 짝이없는 원론적인 해결책이지만 그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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