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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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다양한 민족들이 떠돌아다니며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자 시도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을 건 투쟁은 토착민들에 의해 부정되고, 그들은 안타깝게 폭력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된다. 토착민들의 폭력은 이민자들이 제공하는 익숙하지 않음에 공포를 느껴 저지른 과다망상증 환자의 어리광일까? 아니면 혹시나 모를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 나름 근거가 있는 보호 본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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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6 권리를 갖지 못한 자가 겪게 되는 최초의 상실은 고향의 상실…… 두 번째 상실은 정부의 모든 보호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어떠한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P52 정치체 자체의 상실만으로도 인간은 인류에게서 축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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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인 난민 중 하나였다. 그는 미국에 도착하고 난 뒤로 무려 18년이란 긴 시간동안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정치사상 전반에서 정치적 약자들이 겪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지니지 못한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태, 즉 자신이 머물 정치영역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순간순간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어느 누구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그들의 삶,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행복자체가 사치인 그들의 삶은 세계 인류 어느 누구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한다. 세계 속에서 축출당한 인간이 겪는 고통은 일반적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그들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는 정착한 인간은 난민들이 겪는 공포 이상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그들에게 부여하여 혐오하고 배척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정당화된 혐오는 으로 똘똘 뭉친 악인들이 만들어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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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3 슬픈 진실은, 선하려고도 악하려고도 마음먹은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최악의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P114 사실적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일관되고 총체적인 대체의 결과는 이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진리가 거짓으로 폄훼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각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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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선하디 선한 사람들은 내 가족과 이웃, 마을 그리고 국가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거짓에 쉽게 휘말려버리고 비판의 목소리를 숫자로 압도하여 묵살시켜버리는 애국자들의 모습은 공포에 절감한 광기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편견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포로 인해 폭력을 파괴하는 힘으로 변질시켜 현실에서의 타자를 배제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는 이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공포와 권리 사이의 두 명제의 균형을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맞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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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한편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수백 명의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다 죽는 것을 봐도, 어떤 행동에도 나서지 않고 고래를 돌린 후 즐겁게 저녁을 보낸다. 오히려 광기에 빠진 사람들보다 이렇게 모든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인간미조차 사치인 현대인들의 삶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행동하는 정치적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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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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