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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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꽃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1931년 태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고 2011년에 선종하기까지 한국의 현대사와 함께했다. 그의 소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자전적인 소설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꽃과 함께했다. 문학에 대해서조차 문학은 내 마음의 연꽃이라고 꽃에 비유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는 꽃의 이름뿐만 아니라 꽃에 대한 묘사, 꽃을 주인공의 성격이나 감정에 이입하는 방식이 넘쳐난다. 그를 꽃의 작가로 부르고 싶은 저자의 말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박완서 작가는 꽃을 허투루 표현하는 법이 없다. 능소화를 보곤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라고 말하거나, 동생을 보곤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 오는 복사꽃잎을 떠올린다거나,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목련 나무의 비명 등, 작가는 꽃을 통해 인물과 시대적 환경을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한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의 중심주제 속에서 작품과 꽃의 관계성을 말한다. 또한, 저자의 노고로 직접 찍은 꽃 사진과 그 꽃의 생태와 생김새를 설명해주면서 꽃의 의미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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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은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접해본 기억이 있다. 특히, 해바라기가 등장한 옥상의 민들레꽃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아파트 투신자살을 다룬 이 책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벌어졌던 일이기에 인상 깊게 읽었다. 특히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하는 와중에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민들레를 보곤 그 의지를 꺾은 장면은 한참 동안 내가 길거리에서 민들레를 찾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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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흙에서 자라난 민들레만큼 효과적으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메타포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민들레가 쉽게 내 눈에 띈 것처럼, 꽃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도 변변찮은 꽃들마저도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란 말은 이름을 통해서 그 사물에 타인들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작가의 숙명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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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설에 친숙하지 않다. 소설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렵다. 여러 수사법을 이용해 그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가 메타포로 사용된 소설 속 소품들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존재의 형상을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소설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옥상의 민들레꽃에서 민들레는 그것의 생김새나 생태를 잘 알고 있기에 의무부여가 쉽게 와 닿았다. 하지만 동생을 시냇물 위로 떠내려오는 복사꽃잎로 표현하거나, 결혼과 이혼문제를 석류나무나 노란 장미로 표현하고 죄의식의 상징으로 채송화를 사용했을 때,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목마른 계절에서 칸나를 잎새조차도 푸르지 못하고 붉은빛이 도는 핏빛 칸나도 마치 오랜 한발 끝에 지심에서 내뿜는 뜨거운 화염처럼 처절한 저주를 주위에 발산하고 있다.”라고 묘사했을 때 그나마 직접 붉은색을 묘사해줬기에 망정이지, 만약 핏빛이란 문구가 없었더라면 그것이 전쟁의 참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는데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철학이 개념적 언어로 고된 읽기를 선사한다면 소설은 메타포를 해석하고 그것과 서사의 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고된 읽기이다. 소설가가 이름 없는 꽃에 이름을 부여하여 존재의 의미를 제공해주듯이, 그것을 읽는 독자는 그 꽃의 생태, 형태들을 알아야 진정한 소설 읽기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이 게으른 독자들이 있는 것처럼,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는 이 게으른 독자들에게 좋은 해석서를 제공해준다. 꽃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소설가가 있듯이, 이 책은 소설 속에서 꽃의 사용법을 알려줄 도감이 되어줄 듯싶다. 결국, 의미를 다시금 부여하는 사람은 작가를 넘어선 독자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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