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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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젊은 거장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유년기를 소설로 담았다. 나의 투쟁 4 유년의 섬은 그 이전의 저작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꾸민다. 1권은 아버지의 죽음, 2~권은 연애와 결혼과 같은 어른의 세계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그의 순수하고 힘이 넘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덕분에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뮨재 없었다. 오히려 어른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유년의 삶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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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삶에 대한 그의 묘사는 노골적이라고 할 만큼 사실적이다. 유약하다고 할 만큼 눈물을 자주 흘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서 어리숙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곤 어린 시절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의 행동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젠 종교에 심취해 을 근절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포르노 잡지를 보고, 어떨 땐 바위섬에서 불장난을 하거나 지나가는 자동차에 돌을 던져 차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장난도 서슴지 않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무대에서 락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들은 유년이기에 가능했던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 마냥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 유년의 삶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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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유년기의 삶이 항상 낭만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의 적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존재는 동양 고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다른 유럽국가보다도 빠른 시기인 1913년에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 국가조차도 가부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폭군 그 자체였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화부터 내고 보았다. 그는 여러 금기 사항으로 자식들을 통제하는 엄격한 가부장적 인물이었다. 칼 오베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상한 우유를 억지로 마셨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도 같이 우유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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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우유가 상했잖아! 에잇!”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의 눈빛은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화를 내는 눈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눈빛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을 때 볼 수 있는 의아함과 놀라움을 담고 있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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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부모로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아들이 왜 상한 우유를 참고 마셨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눈치를 극도로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반성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동을 고치고 억압과 강압이 아닌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멍청했다. 그는 아들의 입장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행동을 고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지 못함이 불러놓은 악이란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칼 오베는 가부장을 재생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자식은 아비를 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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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쁠 대학교 3학년, 지금의 삶을 챙기느라 바쁜 나머지 과거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이미 의미를 상실한 것만 같은 유년의 삶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어렵다. 그때 그 시절 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봤지만, 단지 깨져버린 유리조각 마냥 굴러다니는 파편만 남아있다. 그것들을 모으면 아름답게 꾸며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거나 괴이한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본래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유년의 삶은 극단의 대칭이 이뤄진 천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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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유년의 삶을 떠올려봤다. 그다지 기억나는 건 없다. 기억난다고 해도 추억거리라고 할 만한 건 극히 일부만 남았다. 난 칼 오베와 상당히 닮아있다. 성격은 유약했고 잘 울었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의 손쉬운 표적이었고, 폭력에도 쉽게 노출되었다. 지금은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지워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경험이 모든 극단을 피하고 중용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폭력을 동원하는 행위 대부분에 거부감을 느낀다. 친구 중 몇몇은 이런 나의 가치관에 답답해하고 나를 회색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 이런 내가 싫진 않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겪어오며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칼 오베가 아버지를 통해서 아비의 역할을 깨우쳤던 것처럼, 나 또한 폭력의 위험성을 그들로부터 배웠을 뿐이다. 난 이렇게 만들어진 나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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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칼 오베와 달리 내 유년기에 아름다운 스테인그라스를 남겨준 부모님의 사랑에 깊은 은혜를 느낀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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