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그를 논란의 중심에 있도록 만든 악의 평범성이 처음 언급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유명합니다. 아이히만은 1939년에 전쟁이 발발하자 유대인 이주를 담당하는 제국중앙보안본부에서 근무했으며 강제이주를 위한 방안을 구상했습니다. 유대인 집단 학살인 최종 해결책을 효과적으로 이뤄졌고 덕분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서 나치는 유대인의 법적 인격을 파괴했고, ‘도덕적 인격을 뿌리 뽑았으며, 인간의 저항 능력을 박탈함으로써 개성자체를 말살했습니다.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인간이기를 포기 당했습니다.

.

아이히만은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가 형량을 줄이고자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달랐습니다. 역사의 객관적인 법칙을 찾기보다는 개별적 사건의 보편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한(이야기하기 방법) 아렌트는 그의 증언과 삶을 통해서 한 가지 치명적인 교훈을 찾았습니다. 바로 말과 사유를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악의 평범성이란 교훈입니다.

.

한나 아렌트에게 악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평범한 악을 일으킨 무사유는 무슨 의미인가요? 기존 철학적 전통은 악의 근원을 자만심과 질투심, 증오심, 탐욕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그 그곳에서 비롯된 악을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과는 다른 초월적인 악마성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가 마주한 것은 기존의 악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천박했습니다. 틀에 박힌 기계적인 사고,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문구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아이히만은 멍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악은 근본적 동기에서 일어나는 악이 아니었습니다. 무사유에서 비롯되고 멍청할 뿐만 아니라 그 동기 자체도 진부하기 그지없는 악은 최종해결책(유대인 학살작전명)’이 되었습니다.

.

사유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지성적 활동과는 다릅니다. 사유를 나와 나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아렌트는 사유가 언어를 매개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나와 내 친구는 대화를 통해 우정을 재확인합니다. 고독 속에서 이뤄지는 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는 (현상에서의)나와 (정신에서의)나 사이의 대화이며 친밀감과 우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나와 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경우 자기모순이 발생합니다. 그 예가 양심의 가책입니다. 하지만 이 양심의 가책마저도 없다면? 자기모순 자체를 폐기하고,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 자체를 단절시켜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하며 동정하는 모든 과정 자체를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친구 둘이서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건전한 우정이라 볼 수 없듯이, 나와 나 자신의 자기모순 과정을 버리고 폭력을 지향하는 것은 참된 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와 대화하지 않는 무사유이자 악의 평범성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

최근 박찬주 전 대장의 발언을 통해 그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악을 보았습니다. 자기와 병사의 관계를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비유하며 불공정한 명령을 정당화했습니다. 자신의 처가 저지른 폭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했으며, 군의 위계질서를 들먹이며 갑질을 합리화했습니다. 종국에는 삼청교육대가 지닌 이유도 모른 채 군인권센터장인 임태훈씨가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하며 논란만을 키웠습니다.

.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임태훈씨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난민일 필요는 없으며, 여권을 옹호하는 사람은 여성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군인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군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임태훈 소장은 아렌트의 의미에서 사유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입대하지 않았으면서도 성소주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군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나와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군인들의 처지를 생각했고, 비난에 대해 정치적 행위로 응수하는 인간입니다. 반면 박찬주 전 대장은 삼청교육대가 초래한 악행을 고려하지 않으며 군인이 사용할만한 상투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사유를 장악한 것은 20세기 군부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질서이며 반공 이념입ㄴ다. 사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치영역에 들어선 순간 공적영역은 파괴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치영역은 무사유적 인간의 등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

당신을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정치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