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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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들어진 진실

2016년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세계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다. 탈진실이란 “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현상”을 말한다. 즉 명확한 사실 전달보단, 정치와 경제 이익을 위해 조작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Facebook, 유튜브와 같은 SNS는 개개인의 물리적 거리를 해소하여 모든 것을 탈(脫)거리화 했다. 덕분에 무분별한 정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다가온다. 더는 진실과 거짓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사실(Fact)은 사람들 입맛에 맞춰지고, 가짜는 진실이란 탈을 쓴다.

가짜조차 완전히 가짜라고 말할 순 없다. 각 개인은 생물학적 본능이나 사회적 배경에 의해 각기 다른 렌즈를 갖는다. 이 렌즈는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 속에서는 일종의 ‘확증편향’이 자리 잡는다. 확증편향이란 새로운 진실이 기존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면 잘 받아들이고, 이와 대치되면 저항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내 의견은 자신의 신념과 받아들인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진실이 나의 소신과 대치될 때는 버려지며, 거짓된 정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수용된다. 즉 팩트에서는 여러 진실을 끌어낼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진실은 서로의 목적에 의해 수용된다. 『만들어진 진실』은 진실이 하나뿐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경합하는 진실’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경합하는 진실이 만든 조작된 현실을 진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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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팩트와 경합하는 진실

2016년 유니세프는 전 세계에서 1년도 살지 못한 채 죽은 아이들이 대략 42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은 많은 아동이 쉽게 목숨을 잃고 그 수가 400만 명이 넘어선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 통계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아동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15년도에는 440만 명이, 그리고 14년에는 450만 명의 아동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950년에는 1,440만 명이 사망했다. 단 하나의 수치만 놓고 봤을 땐, 그것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그 수치를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즉 420만 명이란 수는 1,440만과 비교했을 때 현격히 적다.

이 자료는 팩트다. 2016년에 440만 명이 죽었다는 것도, 그 수가 계속 줄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료를 근거로 제각기 다른 판단을 내린다. 어느 시민단체는 유아의 사망률을 더욱 낮춰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어느 정치인은 충분히 줄었으니 그 예산을 다른 곳에 투자해야 함을 역설(力說)할 수 있다. 이 중 누구도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자료를 근거로 자신이 믿는 진실을 만들었다. 이 진실이 바로 ‘경합하는 진실’이다. ‘경합하는 진실’이란 팩트에서 여러 진실을 끌어낼 수 있고, 그 진실에 합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합하는 진실은 자신이 지각하는 현실을 구성하며 자신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결정한다. 정보 발언자들은 자신들의 렌즈를 이용해 자료를 편집했다. 진실의 일부 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였다. “노련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온갖 분야에서 편집된 진실이나 숫자, 스토리, 맥락, 바람직함, 도덕성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은 완전무결할 수 없다. 그 진실은 ‘부분적’이며, 정보 제공자의 ‘주관성’에 의존하고, 목적에 의해 ‘인위적’이다.

저자 헥터 맥도널드는 경합하는 진실을 근거로 하여 정보를 생산하는 자들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옹호자’는 건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정확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낸다. 악의는 없지만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는 사람은 ‘오보자’이다. 그리고 사회에 치명적인 해악을 제공하는 사람은 ‘오도자’이다. ‘오도자’는 자신의 진실이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낼 것을 알면서도 추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팩트에 근거한 거짓말을 자행한다. 저자는 오도자들이 진실을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나열한다. 즉 오도자들이 우리를 속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완벽히 소설로 쓰인 가짜뉴스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팩트가 왜곡된 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에 ‘노련한 사람’들은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평범한 이들의 성향을 꿰뚫고 있다. 우린 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다소 비관적 전망으로 빠진다. 오도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정확한 현실 인식을 추구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더군다나 누가 옹호자이고 오도자인지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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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와 진리의 불편한 관계

오도자는 잘못된 현실인식을 만든다. 따라서 우린 그들이 제시한 진실 전반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싶어 하고, 인간 사회에서 작동하는 도덕적 진리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의 독창적인 공간인 ‘정치’는 진리와 조화되지 않는 관계이다. “거짓말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와 함께 존재해왔다. 진실은 정치적 덕목으로 간주된 적이 없었으며, 거짓말은 정치적 거래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도구로 늘 간주 되어왔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이민자 유입 문제, EU 분담금인 3억 5,000만 파운드만을 부각하면서, 대중을 브렉시트로 이끌었다. 여기엔 영국이 EU에 잔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단일시장을 통한 경제 협력, 학술교류, 연구기금 지원, 투자 안정성 확보 및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독립 억제는 배제되었다. 가짜뉴스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후로 미국의 모든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난민과 이민자가 미국 사회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그들의 퇴출을 주장하고 있다. 『만들어진 진실』에서 언급한 트럼프의 거짓말을 적기엔 여백이 부족할 지경이다.

우린 거짓말을 자행하는 정치가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치에서 올바른 진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과 큰 관련성이 없다는 의견을 견지한다. 새빨간 거짓말부터 시작해 국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동기는 나쁘지 않은 거짓말’까지, 정치는 거짓말과 함께 움직인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불신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한다면 자신은 완전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의견이 ‘확증편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란 점을 쉽게 입증할 수 없다. 그리고 진리는 ‘경합하는 진실’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거짓말에서도 그것이 완전히 가짜라고 확신할 수 없다. 실제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벌어졌다. 영국은 EU에 많은 분담금을 지급하지만, EU 내에서 목소리는 적은 편이다.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이민자 문제도 미국엔 골칫거리다. 단지 정치 지도자들은 난민과 이민자라는 ‘상상의 적’을 만들거나 진실의 다른 측면을 생략했을 뿐이다. 우린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올바른 것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터무니없이 제한되어있다.

“하늘에서 진리는 하나이지만 지구에서 진리는 여러 개다.” 난민은 인권 영역 안에 있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정치가 결정한다. 지구 온난화를 다루는 문제, 경제 문제, 노동 문제 등 인간 사회를 결정짓는 모든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다뤄진다. 이 영역에서 의견은 어느 정도 거짓을 품는다. 브렉시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정치적 진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끔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실을 양보해야 한다. 여기에 거짓이 섞인다. 하지만 그 거짓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향을 제공하며, 사람들의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 “거짓말하는 능력과 사실을 변화시키는 소질, 즉 행위 하는 능력은 서로 결부되어 있다.” 만약 어떤 정치인이 진리만을 말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440만 명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가정은 정치적 의견에 달려 있다. 통계에 대한 해석은 예측과 과장, 그리고 거짓이 섞여 있다. 거짓말과 정치는 서로 불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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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를 파괴하는 거짓말

이렇게 말을 하니 마치 정치 활동에서 모든 거짓말을 긍정하는 것만 같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당연하기 때문에 브렉시트에서 국민에게 오도된 진실을 제공한 정치인들이나,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적 사고 전반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규탄하는 일부 극우 진영의 입장조차도 정당한 정치적 의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당성을 따지지 않는 의견은 존중받을 수는 없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관여된 사건이나 상황과 관계한다.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 확립되고, 증거에 의존한다.” ‘만들어진 진실’은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역사적 사실이 그 예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조선이 식민지배 당했다는 사실은 반박될 수 없는 역사이다. 식민지 시절이 어땠는지에 대해 여러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6.25 전쟁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있어도, 북한의 남침은 부정될 수 없다. 즉 자명하지 않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 인식을 견지해야 한다. 만약 반박될 수 없는 사실이 거짓으로 조작된다면 정치적 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 거짓은 정치영역에서의 모든 의견을 변형하는 폭력 수단이다.

아렌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기밀문서인 <펜타곤 문서>를 통해 새로운 거짓을 이야기한다. <펜타곤 문서>에는 전문가들이 정보와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밝히기보단 의회를 기만하고 허위 보도를 통해 전쟁을 선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최강이란 이미지에 힘입어 자신들의 권력에 심취했으며, 이 이미지가 소위 ‘문제 해결사’들의 분석 결과라는 신빙성이 작용해 반박 불가능한 진리가 되었다. 하지만 기만전술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확신했던 전문가들처럼, 기만은 자기가 만든 이미지를 스스로 확신하게 하고, 사람들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것은 기만의 자기기만이며 현실 세계를 외면하고 자기 거짓말에 스스로 속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 논리는 정치를 훼손하는 선전도구가 되며, 다른 이들의 의견을 배제한 독단적 논리가 된다. 그 논리는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부메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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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옹호자들의 진실, 그리고 매력적인 진실

현대사회에서 정치영역의 파괴로 이어진 거짓말은 사실의 범람에서 비롯된다. 넘쳐흐르는 정보와 사실들을 수용하기엔 인간의 범위는 매우 한정됐다. 더군다나 인간의 확증편향과 일반화의 오류, 체리피킹 등은 합리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며, 타인이 의견을 제시할 권리마저 부정한다. 동질적 집단 사이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타인의 의견을 배척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폭넓고 다각화된 정보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삶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겐 시간적 여유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정보를 편향적으로 얻는 것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얻기 위한 현대인의 생존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오도자들의 정보를 제한할 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들의 주장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어서 성급한 법 제정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난 이 책임을 옹호자(advocate)에게 맡기고자 한다. 옹호자는 건설적인 목표를 위해서, 정확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내는 진실을 추구한다. 그들은 오도자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그들은 정치영역을 복원하기 위한 공적 행위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진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정보는 우리가 쉽게 노출되고 기억에 남을 만큼 충분히 인상적이어야 한다. 정치에서 네이밍이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진실이다. 정치에서 네이밍은 결국 프레임 싸움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에 작용하는 프레임은 결국 사람들의 인식을 뒤바꾼다고 말한다.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 보험법’은 서로 같은 법안임에도 사람들은 ‘오바마케어’를 더욱 싫어했다. 사람들은 ‘오바마케어’가 정부 주도로 자유와 생명이라는 도덕적 영역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명칭이 달라지면 일반적으로 그 지시물도 달라진다. 레이코프는 나의 가치와 목적에 맞는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함을 역설한다. 극우 진영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프레임을 파악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프레임을 재구축한다고 해서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의 전향을 기대할 순 없다. 이미 그들은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어서, 그들을 전향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큰 의미가 없다. 옹호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아직 정치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대다수의 중간자다. 그들은 정치적 입장에 대해 확증편향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매력에 따라 자기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사람들이다. 진실에 대해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프레임을 재구축하여 그들에게 정보를 노출 시켜야 한다. 낙태 금지 운동이라는 명칭보단 생명 지지 운동이 훨씬 큰 호응을 얻는 것처럼 자칫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제공하는 프레임보다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유익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정보세력의 비대칭성은 상호 대등한 정치적 세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는 대등한 의견 교환이 아닌 한 세력이 주도로 하여 오도된 진실로 폭력을 집행할 배경을 마련한다. 프레임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짓을 담보한다. 하지만 거짓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당화된 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거짓이란 이유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진실은 어떻게 이용하느냐 따라 건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도, 자기기만의 칼날이 될 수 있다. 오도자의 정보편집기술을 깨우치고, 옹호자가 활동할 수 있는 정치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지지층을 끌어모아 대등한 세력을 만드는 것, 이것이 건설적 사회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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