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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 ㅣ 리더스 클래식
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평점 :
이 책은 이후에 겪어야 할 지적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2학기 학부 수업 중 존 롤스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를 공부하기 때문에 준비운동이 필요했다. 「정의론」은 교수님이 인정했을 정도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책이다. 정의론에 조금 쉽게 다가가고자 고른 책이 바로 황경식 교수님이 쓴 「존 롤스 정의론」이다. 황경식 교수님은 「정의론」 번역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롤스의 철학을 깊게 이해하고 계신다. 그분이 직접 정의론 해설서를 출판하셨으니 믿고 읽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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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수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서점가를 장악했다. 미국에서는 고작 10만 부 남짓 팔리는 정도였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크게 인기를 끌면서 100만 부 이상을 돌파했다. 많은 사람은 정의를 물었다. 기득권은 자신이 가진 이익을 놓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금수저들의 금빛은 점점 화려해지는 데 반해 흙수저들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운동장은 기울어지고 있으며, 기득권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화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과거에 저질렀던 행위, 불법은 아니었지만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행위가 왜 비난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부정의함에 대해 특히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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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스승이자 ‘정의’ 문제에만 파고든 ‘단일 주제의 철학자’인 존 롤스는 다소 급진적이라고도 느낄 수 있는 정의론을 펼친다. 우리 사회는 의무의 연속이다. 우린 타인에게 물리적 심리적 부채를 갖고 있다. 그 부채는 나 자신의 지속과 발전을 요구할 권리임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에 대한 의무로 이어진다. 만약 부채를 무시하고 개인의 지속과 발전이 사회의 그것과 평행선을 긋는다면, 개인은 사회에 의무를 다하지 않는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그는 합의 사항에 따르지 않고, 사회 유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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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둔 자유방임적 사회는 자연적 운(재능)과 사회적 운(부)을 방치하여 행운아와 불운아 사이에 심연을 만들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자유주의 사회는 사회적 이익과 불이익을 조정하여, 동등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유사한 기회를 얻도록 만들었다. 이 사회는 편향된 이득을 얻는 기득권을 배제했다. 복지 사회와 유사하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평등체제는 사회적 요인만 제한하는 데 성공했지, 자연적 자질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롤스는 반문한다. 자연적 자질에서 오는 차등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로버트 노직은 나에게 주어진 능력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해서 사회가 그것을 공유할 권리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사회가 자연적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사회일 뿐이며 결과적 불평등이 초기 조건으로 주어진 불평등의 함수에 불과하다면 도덕적 주체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점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p56
여성과 남성에겐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이 차이를 근거로 남성과 여성의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대 사회의 직업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령 근력)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남성이 하는 일도 충분히 여성이 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이 자연적 능력을 근거로 하여 차별과 제약이 생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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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가 제시한 정의로운 사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한 기회균등과 관련된 광범위한 기회 체계를 인정하고, 사회적 출발점과 자연적 자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차이와 다양성을 용납한다. 두 번째는 이 노력 이후에 비 자유방임적 방법으로 그 최종 결과를 사회 성원 중 최소 수혜자의 관점에서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 ‘민주적 평등체제’는 자연적 운과 사회적 운을 완화하고 최소 수혜자를 최우선 배려하는 사회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해 자연적 사회적 여건을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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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는 사유실험을 실행한다. 인간이 출신 배경, 가족 관계, 사회적 지위, 재산 상태 등 자신의 위치나 입장을 전혀 모른다는 ‘무지의 베일’ 뒤편에서 인간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 때문에 재능과 능력, 인종, 젠더 등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원초적 입장’이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을 통해 합의한 결론이 정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린 원칙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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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원칙: 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 2원칙: 차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편성되어야 한다.
a)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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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는 결과의 평등을 말하지 않았다. 인간에겐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긍정했다. 롤스는 다양한 삶의 양식과 가치관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그 가치관을 지키면서 다채롭고 풍성한 문화를 만들고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롤스는 평등이 아닌 자유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강제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주의였다. 최대한 개인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 그리고 그 기준을 최소 수혜자로 세울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정치에서 소외되는 약자를 신경 썼으며, 정치적 도덕을 이야기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어 롤스의 정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롤스의 철학에 한 걸음 다가가도록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