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논고 한길그레이트북스 15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한길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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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사상의 줄기를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한 이론가이다. 그는 정치를 종교와 도덕에서 분리했으며, 정치의 독자적인 영역을 요구한 정치가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독됐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그 텍스트로만 해석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어떤 의도로 그러한 생각을 내비쳤는지는 고려되지 않은 채, 마키아벨리즘은 “공익을 도외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관행”, 혹은 “정치라는 범주를 떠나 사회의 삶 속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처세방식”이란 형태로 해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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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키아벨리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홉스적, 플라톤적이라는 말에는 경멸적 의미가 거의 없지만, ‘마키아벨리적’이라는 말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악의 교사’로 독재자들의 정권 침탈을 정당화하고, 국가적 폭력을 합리화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아이젠하워 역시 마키아벨리를 이론을 비판하면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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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키아벨리의 대중적 이미지는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은 사적이익을 위해서 남을 거리낌없이 희생하는 방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치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가 총체적인 위험에 빠져 있을 때, 또는 국가 질서가 문란해지고 부패가 만연해 있을 때, 마키아벨리즘은 국가의 생존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국가를 위해’는 개인 혹은 특정 계급의 사사로운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라는 총체적 집단, 그 안에서 살아가는 대중 그리고 개인들의 삶이 보장받는 공동선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개별 인간들의 권리 전반을 총체적으로 파괴한 전체주의 국가나, 군주 혹은 귀족 집단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순수한 군주정 그리고 귀족정을 옹호하진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최상의 정치체제로 공화정, 그 중에서도 기원전 500년 경부터 450년 간 이어져 내려온 로마공화정을 으뜸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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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단연 『군주론』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출세를 위해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이며 ‘새로운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군주’의 처세가 담겨있는 『군주론』이 가장 대중적이기 때문에 혹자는 마키아벨리와 공화정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출세를 위해 서술했다는 점에서 온전히 그의 생각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은 『군주론』에 대해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일탈이거나, 군주의 위선을 폭로하여 인민이 군주에게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식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저술했다 거나, 혹은 군주정은 공화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바라봤다는 등의 해석이 제시한다. 『군주론』은 메디치 가의 환심을 사기위해 일시적 필요로 저술된 것이지만 『로마사 논고』는 마키아벨리가 다소 자유롭게 저술한 책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로마사 논고』에 마키아벨리 본연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모두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정치’가 담겨 있지만 『로마사 논고』는 군주정이 아닌 공화국에 대한 옹호를 담았다는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의 본연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사 논고』를 필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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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로마사 논고』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논고』는 3장으로 나눠졌다, 제 1권은 성공적인 공화국 수립과 그 유지 방법이 담겨 있다. 제 2권에는 로마의 팽창이 그리고 제 3권에는 로마 공화정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논고』는 『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무자비함의 유용성과 인간 본성의 악함을 더욱 정교하고 자세히 서술한다. 하지만 『논고』는 그 방법을 공화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법치질서를 확립하는데 집중한다. 마키아벨리는 혼합정부 형태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데,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지닌 성격을 모두 다 포함한 하나의 정체가 가장 견실하고 안정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여러 정부의 요소들이 함께 있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다. 이는 로마 공화정에서 원로원, 집정관 그리고 호민관의 형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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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고』는 법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입법가는 모든 인간이 사악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말에서 치국(治國)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사악함은 흔히 생각하는 싸이코패스적인 무자비한 폭력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생존추구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인간이 규제되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행동을 통해 생존하게 된다. 그 형태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사사로운 복수로 불법적인 방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국가 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 따라서 법에 의해 무분별한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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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군주, 귀족, 평민이란 계급적 차이, 혹은 그 사람이 나라를 수호한 영웅이든 상관없이 법은 공평한 저울이 되어야 한다.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적장을 모두 무찔러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며칠 뒤 누이동생을 살해했다. 로마인들은 그가 쌓아 놓은 공적과는 상관없이 그를 처벌하고자 재판에 회부했다. 마키아벨리는 제 24장의 제목을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라고 붙였다. 마키아벨리는 호라티우스의 사례를 통해서 공정무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만이 그 효력을 보장할 수 있고 공동선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피렌체의 정치를 극렬히 비판한다. 피렌체에선 사법적 권한을 외국인이 수행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쉽게 매수가 되어 영내 실력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이에 피렌체는 8인 위원회를 설치하여 사법 시스템을 개편했지만, 소수의 위원들은 항상 소수 실력자들의 앞잡이로 남아있었다. 법은 사람들에게 전혀 공정 무사하지 못했다. 기원전 로마 공화정이 알고 있었고, 마키아벨리도 중요시 생각한 공정한 법은 피렌체,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상관없이 이상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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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인민 그 자체를 믿진 않았다. 그는 평민이란 국가를 경영하는 자리의 적임자가 될 수 없고, 쉽게 자기기만에 빠진다고 말한다. 평민은 무리를 이룰 때야 대담해진다고 말하며, 개개인은 나약하다고 보았다, 또한 “광정에서의 정신과 시청에서의 정신은 다르다.”고 말하며 대중들의 정치적 의사표시와 실제 정치과정의 괴리를 분명하게 내비친다. 하지만 그는 다중은 군주보다 더 현명하고 더 안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 외의 다른 역사가들은 다중은 비굴하거나 거만한 속성을 갖고 있다며 그들을 폄하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다중을 비난하는 결함은 군주에게도 적용되며, 법률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자는 통제되지 않는 다중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즉 그가 비판하는 존재는 법 위에 서있는 통제되지 않은 자들이다. 마키아벨리는 잘 정비된 제도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인민은 군주만큼 침착하고 신중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악한 군주의 위험성을 말한다. “인민의 결함은 말로써 치유되지만, 군주의 사악함은 칼로써만 치유된다.” 는 말의 의미는 인민은 설득할 수 있지만 사악한 군주는 아무도 말릴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죽이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군주보다 인민의 입장을 수정하는 것이 훨씬 위험부담이 적고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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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군주와 인민의 역할을 구분한다. 군주는 국가를 창업하는 일이지만, 군주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군주의 리더십으로 유지되는 국가는 지배자의 공백상태에서 쉽게 무너진다.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새로운 법제도를 설립하여 자신의 후대를 고려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민들은 이미 조직된 법을 보존함으로써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군주와 인민의 ‘비르투(능력, 역량, 탁월함)’가 합치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생존을 영위할 수 있다. 법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는 개별적인 선이 아니라 공동선을 이끌어 오기 때문에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부패한 시대에는 자유가 전복된다. 국가가 설립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법의 관습과 관례는 점차 깨지기 시작한다. 이렇듯 법이 제공하는 활력이 점차 꺼지고 부패가 축적되면서 공화국은 전복된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을 보전하는 인민들이 강력한 법 집행을 정기적으로 실행하여 사람들에게 법의 실효성을 상기시키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들이 종법(從法) 태도를 유지하는데 성공해야만 공화국은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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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관심 분야가 바뀌었더라도 마키아벨리의 기본기조는 현실정치이다. 이탈리아의 혼란을 바라본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국가는 대체 무엇인가?” 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강력한 국가를 찾고자 했지, 정당하고 도덕적인 국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의 질서가 우선 보장되어야 하고 국가적 행위에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데 있었다. 그 방법은 엄격한 통치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 제국의 공화주의적 질서를 통해서 강력한 국가, 이탈리아를 통일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혼란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마키아벨리의 고뇌를 고려하지 않고, 그의 정치이론을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반영하는 정치가 아닌 철저한 공익을 추구했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여러 독재자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권력, 명예, 재산을 탐하는 것과 달리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지도자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존재이다. “절대적으로 자기 조국의 안전이 걸린 문제일 때, 정당한 것인지 정당하지 않은 것인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양심의 가책을 제쳐 놓고 인간은 모름지기 어떤 계획이든, 조국의 생존과 조국의 자유를 유지하는 계획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라는 말에서 마키아벨리는 완전하고 완벽한 국가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정치 이상향은 두려운 면이 있지만, 법치 하에서 삶을 보전하는 건, 사적 이익에 몰두한 엘리트들에 의해 조작되거나 무질서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최악을 피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현실정치의 무자비함을 꿰뚫은 인물이 마키아벨리인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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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동양에서도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수준의 합리성을 보여준 인물이 있다. 바로 ‘상앙’이다. 중국의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 사이의 시기)는 외교와 권모술수, 하극상이 빈번했다. 또한 각 군주는 패권쟁탈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국강병론을 현실정치에 반영했다. 군주는 현실정치에 적합한 경세가들을 등용했으며, 그 중 법가는 각 국에 진행된 개혁조치들을 시행함으로써 현실정치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진(秦)나라에서 활동한 상앙은 자기확신에 찬 철인의 내면을 보여주면서, 법치에 의한 강국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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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은 법을 통해 낙후된 현실을 타파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한 개혁을 진행했다. 상앙은 인간이란 자기중심적이고 극단적인 이기심에 몰두하는 존재로 파악했다. 따라서 이 이익추구가 무한정 방치될 경우 무질서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통치가 필요함을 직시했으며, 형벌을 통해 인간이 평균적인 합리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상앙은 금지규범을 관장하는 법과 군주를 세워둠으로써 중앙 집권적인 군주제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재민지배 체제가 수립했으며, “종법은 종군이다.”임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법을 통해 자율적인 인간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무위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법가의 최종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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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상앙은 상당히 겹친다. 마키아벨리는 분열된 이탈리아를, 상앙은 분열된 중국대륙을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를 찾고자 했으며, 이는 뛰어난 리더와 완벽한 법, 그리고 철저한 공동선 아래에서 추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을 절대적으로 도덕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기본적 전제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근거로 법에 의한 통치를 정당화했으며, 인간 전반의 행동을 규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의 철저한 국가주의는 보편적 인민들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요직에 앉지 못한 채 쓸쓸히 죽었고, 상앙은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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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편적인 도덕이 작용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이상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더 이상 명분은 작용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해야 할 때는 도덕적인 수단과, 정당화된 결과는 어떤 의미도 제공하지 않다. 국가가 어려울 때, 우유부단한 태도를 버려야 할 때 도덕은 부차적이다. 오로지 실리, 무엇이 국가이익인지 파악하는 문제만이 중요하다. 명분에 사로잡혀 우유부단한 태도로 기회를 놓쳐 버릴지, 공공이익보다는 사적이익에 사로잡혀 정치영역에서 이전투구의 행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태를 보면, 우리는 현실정치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 합리성이 고대, 근대의 인물들보다 뒤떨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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