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페미니즘 My Little Library 8
박준우 지음 / 한길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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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나 집에 왔어. 오늘 되게 힘들었어.
차가운 것 좀 줘 그리고
발 좀 문질러줘, 먹을 것 좀 가져와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 만들어줘
나 쉬면서 TV 봐야 해.
Shania Twain(샤니아 트웨인), 「Honey, I’m Hom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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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익숙한 이야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어머님들이 가정을 위해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피로를 풀어주는 모습이다. 다만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란 차이가 있겠다.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만한 미러링이다. 거울을 통해서 반전된 세계를 보는 미러링은 페미니즘이 사용하고 있는 주된 운동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러링의 교본이 된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 역할이 반전된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여성의 억압받는 세태를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정교하고 철저히 연구된 페미니즘 이론보단 대중문화가 고발하는 현실이 사람에게 사회문제의 리얼리티를 보장한다. 이 리얼리티는 문화가 갖고 있는 ‘파워’다. 「노래하는 페미니즘」은 여러 가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들려준다. 음악 안에 내제한 ‘파워’는 명랑한 메아리가 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고 공유된다. 이것이 음악만이 맡을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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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달리
소녀들에게 결혼이 목표라고 가르치죠
왜 소년들처럼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하죠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평등을 믿는 사람입니다.
Beyonce「***Flawles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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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페미니즘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페미니즘 운동의 결론이 양성평등이라면 양성평등 운동이어야지 왜 여성주의 운동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 논리에 반대한다. 인종차별 폐지가 흑인 인권 운동이듯이, 현재 차별 받는 존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사회 운동은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보단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권 평등이라는 천부적 가치 아래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이란 방법을 채택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여권확장론)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하다. 만약 페미니즘이란 명칭이 양성 혹은 성평등 운동으로 바뀌어버릴 경우, 여성들에게 모든 사회적 변화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또한 목적과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운동은 소음이다. 수많은 외침은 그 목소리를 분명히 알 수 없게 만든다. 때문에 여성들의 권리 운동은 페미니즘이란 이름 하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통해서만 그들의 목소리를 깨끗하게 들을 수 있다. 사회운동은 선택과 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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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페미니즘도 이러한 갈래 안에 있다. “미국인 가운데 가장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이는 흑인 여성입니다.”라는 말처럼 백인 경찰에 의해 살해 당하는 흑인 중에서도 여성은 더욱 차별 받는 존재다. 자넷 잭슨을 시작으로 비욘세, 리한나 등으로 이어진 블랙 팝은 흑인 여성들의 삶을 고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주체성을 여실히 음악을 통해 드러낸다. “나는 내가 통제한다”라는 말처럼 자기결정권의 보장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미시시피주나 조지아 주 등에서 낙태금지법을 다시 제정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 지역의 세력이 백인 중심의 공화당인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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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든
난 제대로 가고 있어. 난 살아남기 위해 태어난 사람
흑인이든, 백인이든, 베이지색이든, 라티노든, 동양인이든
난 잘 가고 있어, 난 태어날 때부터 용감한 사람.
Lady Gaga, 「Born This Way」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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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종차별만이 차별이 아니다.
누구든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소외된다고 생각이 들면
차별받는 것이다.
계급차별은 새로운 인종차별이다.
The-Dream 「Black」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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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매력적인 점은 페미니즘과 더불어 인종,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밝힌다는 점이다. 음악은 사회비판정신을 담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도구이다. 따라서 레이디 가가의 가사처럼 의견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루페 피아스코는 힙합 문화의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꼬집고, 음악과 뮤직 비디오를 통해 위대한 남성성을 고발한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케이난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처절히 가사에 담았다. 흑인사회는 동성애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흑인 음악가들 중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프랭크 오션은 동성애를 터부시 하고 조롱하는 흑인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음악 속에서 흐르는 보편적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연대의 장을 마련해준다. 음악이란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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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저자는 비틀스의 해체를 오노 요코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반 아시아적이고 반 페미니즘적인 증오라고 말한다. 애초에 요코가 없었다고 해도 비틀스는 해체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맴버들의 갈등은 깊었다. 비틀스는 해체됐지만 존 레넌은 오노 요코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음악에 페미니즘과 반전평화 등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 음악을 작사, 작곡할 수 있었다. 오노 요코는 과소 평가 되었지만 그 또한 전위 예술가로서 또 음악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선보였다. Cut Piece라는 퍼포먼스로 성차별과 타자의 개입, 실존하는 개인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그리고 「Yang Yang」, 「What A Mess」 등의 음악을 통해 남성 중심 권력을 비판하고 여성해방을 노래하며 페미니즘을 이야기 했다. 분명 그의 행보에 논란이 될 만한 것은 있었지만, 비틀스라는 혼란의 시기에 함께하여 예술적 역량마저 저평가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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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른 이야기도 해볼까 한다. 저자는 마돈나가 성적,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깨부수고 성녀와 창녀 이분법을 거부하며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발한 도발적인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전혀 다른 평가도 존재한다. 「코르셋」의 저자 쉴라 제프리스는 마돈나가 성매매 되는 여자들의 복장을 하이 패션으로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마돈나는 단지 남자에게 지배력을 갖는 ‘여창’으로 분한 배우에 불과했으며, 실제 성매매 업소를 포함한 세상에서의 권력 행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돈나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이에 대한 통제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돈나가 보여준 포스트모더니즘적 경계(여성성 자체의 파괴)는 성매매를 정상화하고 패션, 광고 분야 전반에서 성매매를 대중적으로 문제 없게 만들었다. 제프리스는 마돈나가 코르셋을 덧씌움으로써 여성들의 패션을 남자의 색슈얼리티에 복속시켰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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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역설적인 점은 페미니즘을 외치는 팝 음악가들이 여전히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봐도 예쁘고 섹시하다는 점이다. 물론 섹시함이나 섹스어필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여긴다면 이는 하나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디어로 이를 접하는 수용자들은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여성 음악가들과 페미니즘을 소비하기 쉽다. 결국 팝 페미니즘이 성숙하려면 음악시상에 종사하는 다수, 또 이를 수용하는 다수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결론을 피할 수 없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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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이에 대한 문제를 피하지 않는다. 아무리 마돈나나 비욘세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가수의 의도완 무관하게 섹시한 여성, 예쁜 여성으로만 받아들이면 예술가들의 목적은 왜곡된다. 창작자의 의도는 관람자에 의해 재해석된다. 아이유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대한 재해석으로 「ZeZe」를 발표했을 때 소아성애에 대한 논란에 빠졌다. 아이유는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수용자들은 달랐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아이유를 로리타와 엮어 내렸다. 즉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이해의 벽이 존재한다. 비욘세가 코르셋을 장착하고 섹시함을 어필하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성이란 젠더의 벽을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의 범주는 넓기 때문에 이를 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포스트모던처럼),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여성성을 거부하려는 레디컬 페미니즘의 경우 비욘세의 페미니즘에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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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페미니즘을 음악에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은 아이린의 사례를 보더라도 공인이 페미니즘을 꺼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희망을 찾자면 난 소설과 웹툰을 꼽겠다. 물론 웹툰에는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것도 있지만 「내 ID는 강남 미인」과 같은 성형에 대한 편견을 부수거나 최근에는 「화장 지워주는 남자」처럼 화장에 대한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웹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물론 해석은 다양하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대중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려보는 페미니즘, 낭독하는 페미니즘은 대중성을 얻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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