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마이클 슈왈비 지음, 노정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바위: 교묘한 수법으로 남을 속여 돈을 따먹는 노름.

 

Rigging the Game이라는 원제를 <야바위 게임>으로 번역 해 출판한 출판사의 창의력에 우선 감탄한다.< 야바위 게임>의 저자 마이클 슈월비는 현대사회를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라고 평가하며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자 한다. 소득과 자산을 소유한 부자와 소유하지 못한 빈자 사이의 양극화가 극대화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부자를 중심으로 지배계층이 만들어놓은 게임규칙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토록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애초에 우리가 지배계급에 의해 조작된 게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인 구조다. 역사적으로 강자들이 부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인 절도, 약탈 그리고 착취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교묘한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절도, 약탈, 착취를 게임을 조작하는데 이용한다.

 

‘소유권이 인권에 우선한다.’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명령은 자본주의에서 기본원칙으로 수행된다. 먼저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은 행정수단을 차지함으로써 규칙을 만들고 해석하고자 한다. 그 과정은 경제집단이 국가 권력층에 로비를 하는 정경유착의 형태로 수행된다. 실제로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규칙들을 미국에서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복잡하게 만들어 사전에 차단하는 ‘테프트-하트리 법’, 흑인들의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을 경계 대상으로 삼아 융자나 보험 인수을 거부하는 노골적인 ‘레드라이닝’이 있다. 그리고 신분증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미국의 배경을 이용하여 신분증을 발급받을 여유가 없는 피억압자(흑인 빈곤층, 이민자 등)의 투표참여를 배제하고자 ‘투표자 신원확인법’을 제정해 신분증이 없는 미국 시민들의 투표를 차단하고자 했다. 선거는 시민들이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조차도 어떤 집단에 의해 장악되고 조작되는 일이 교묘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상상력을 훼손하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인 동물이다.’라는 경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인간본성론은 사람이 경쟁과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덜 떨어진 인간, 노력하지 않는 인간, 착취할 만한 인간을 타자로 규정함으로써 차별을 고착화하고 폄하를 정당화한다. 미국에 자리잡은 ‘성취이데올로기’는 남보다 앞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열등감과 자괴감을 겪게 만들고 스스로를 탓하게 하여 불평등을 고착화하는데 기여한다. 애초에 사람들은 동등한 자원을 갖고 출발하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자리도 없다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은 그 사람이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임은 개인에게 떠넘겨 진다. 특히 ‘대안은 없다’라는 비관적인 이데올로기는 현실이 그나마 낫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킨다. 이 작업은 대안을 추구하는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고착화한다.

 

조작자들이 일반 서민들의 상상력을 훼손 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어떠한 행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차적인 이득이나 혜택을 의미하는 ‘개평’은 사람이 현실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체성’은 개인을 시민으로, 노동자로, 학생으로 규정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든다. 정체성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일관성을 부여해준다. 하지만 정체성이 부정당하게 된다면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타자가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타자의 위치는 불안과 차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위험을 담고 있다. 개인은 자신의 역할이 집단의 역할 전반에 얽혀있다는 ‘책임의 그물’안에서 개인은 집단의 책임과 맥락을 같이한다. 집단이나 공동체 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서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냐에 따라 자신이 용납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진다. 그 책임의 그물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싶다는 사람의 욕구는 현실을 더욱 고착화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젠더와 인종차별과 함께 더욱 악화된다. 저자는 불평등에는 근본적인 위계가 있다는 ‘억압의 위계’를 반대한다. 불평등을 양성하는 모든 원인들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상호작용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남성의 우월함을 주요한 헤게모니로 간주하는 미국에서는 여성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한다.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역시 환상에 기반한 인종적 구분을 통해 흑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착취를 정당화한다. 가난한 백인들은 여전히 백인이라는 정체성 덕분에 지배계층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며 흑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에 앞장선다. 인종주의는 백인 노동자 계층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도피처를 마련했으며 인종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대통령을 선출하게 만들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방식으로 게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었으며, 일반 사람들 조차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반대자들은 신뢰할 가치가 없는 바보들이며 오직 자신의 이기적 목표만을 갈구한다. 현존하는 체제를 폐기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재 지도자들은 현명하고, 경험이 많으며, 모든 사람들의 최선의 이익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야 한다. 제안된 변화는 무질서와 혼돈으로 향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말썽꾼들이 주장하는 무책임한 극단적 변화가 아니라 약간의 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P329

 

불평등의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개인들의 의식변화를 요구한다. 타자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모순을 향해 질문한다. 타자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들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생활에 다시 빠져드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항상 ‘만약에?’ 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모순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대안은 없다’라는 현실도피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조작된 게임을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연대의 문화를 통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정치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정치적 영역의 재생산은 지배계급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협동 조합을 만들어 내며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 근간에는 마르크스주의가 담겨있다. 사회문제의 근간을 착취로 바라보았다는 점, 국가 질서는 지배계급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저자의 주장에는 여러 한계를 담고 있다. 불평등의 문제를 너무 구조적인 측면에만 치중했다는 것, 연대의 사회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을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는데 만 치중하는 탐욕적인 돼지로만 바라본 것 같다. 이는 현실을 너무 단편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저자는 적절한 현실 사례와 직접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책의 이해를 돕는다. 어떻게 우리사회에서 불평등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는 통계를 봐서는 잘 알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수업에서 학생 열명에게 사회에서 부가 배분되는 비율에 따라 종이접시를 나눠주었다. 결과는 최상위층으로 대표되는 첫 번째 학생이 대부분의 종이접시를 가져갔다. 이는 저자가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과장하기 위해 시도한 자작극이 아니다. 현실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불평등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면 지배계급의 놀음에서 희생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주장 곳곳에 담겨있는 ‘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책 어디에도 아렌트는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폭력과 권력을 구분한 점에서 아렌트의 저서 폭력론 의 핵심 주장을 엿볼 수 있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비판하며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은 서로 다른 것이며 권력은 정치적 행위자들의 공동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슈웰비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펜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기 때문이다.”

P237



"진정한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펜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기 때문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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