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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책 이야기
장희창 지음 / 뿔(웅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책은 다섯 장 (문학, 역사, 제국, 자연 그리고 21세기)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많은 동서양의 책들이 빼곡히 소개되어 있다. 서양 문학은 물론이고, 동양의 고전 또한 빠져있지 않다. 저자의 시각은 폭넓고 원시안적이지만, 자그마한 세부적 사항을 놓치는 법이 없다. 저자의 입장은 몇 가지 사항으로 확정되지 않고 유연함을 견지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를 관망하는 저자의 시각이 유연하고 관대하다는 뜻이다. 장희창 교수의 강점은 문체에 있다. 장희창 교수의 글은 간결하고 힘차다. 단어 하나 허투루 사용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필자가 지니지 못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책의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별반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저자의 서문을 일부 인용하려고 한다.
“(...) 서울대 신림동 인근의 고시촌은 청운의 꿈을 안은 고시 지망생으로 북적댄다. 오만명 이상의 고시생들이 좁은 방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각종 법전을 달달 외워대고 있다. 열기와 규모 면에서 아마도 세계 정상급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지옥의 관문을 통과하는 고시생의 비율은 십 퍼센트 미만이다. 그 나머지 패배자의 운명은? 청춘의 몸과 영혼을 바쳤던 시간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헛발질로 끝나고 만 청춘의 귀한 시간을 이처럼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인가? (...)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그러한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을 마음껏 조롱했다. 장원급제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답안지에 낙서를 해 제출해버리고 학문에 전념했고, 때가 오자 조선 땅을 떠나 중원으로 향했던 연암. 결국 조선에 빚을 진 것은 권력투쟁에 눈이 멀었던 권력 동물들이 아니라, 아수라장을 뒤로 하고 드넓은 세계로 떠났던 연암이었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고시생들 중에서 만 명 정도만이라도 법전을 달달 외우는 소모성 열병에서 건져내어 우리 문화를 살찌울 생산적인 일에 종사케 한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문화 대국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