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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유기쁨 지음 / 눌민 / 2023년 4월
평점 :
애니미즘은 정령 신앙으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령 신앙”을 원시인들의 사고로 규정하였습니다. 저자 유기쁨은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의 『원시 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의 번역자로서 오랫동안 애니미즘과 생태주의를 연구해온 분입니다. 타일러의 책은 원시 문화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넘어서서, 역사에 등장한 제반 정령 신앙의 사고, 이에 대한 비판적 시선 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관심사는 과거의 정령 신앙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들이 상실한 영혼의 가치 상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원시시대에 출현한 애니미즘을 “낡은 애니미즘”으로 명명하면서 (400쪽), 현대 사회에 요청되는 생태적 사고로서의 새로운 애니미즘을 추적하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인간과 동물 (제 6장), 인간과 식물 (제 7장) 그리고 비-인간과 결부되어 있는 애니미즘의 새로운 의미를 생동감 넘치게 서술해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독자가 책의 앞부분보다는 뒷부분을 먼저 읽게 된다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자연에 대한 참신한 시각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책의 몇몇 문장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1. 인디언들은 "영혼은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띄는데, 그 본질은 수증기와 얇은 막 혹은 그림자의 일종이며,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89쪽)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을 “나비ψυχή”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육신에서 빠져나와 나비처럼 날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2. "데이비드 콰먼에 의하면 현재까지 알려진 전염병 중에서 60%가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 (202쪽),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건강은 동물의 건강과 직결되며, 인간의 질병은 동물의 질병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닙니다.
3. "사람의 뼈가 안에 들은 것처럼 나무도 그러하며/ 사람의 골수는 나무의 진과 같다." (우파니샤드 3장 9편 28절) (286쪽) 오래 전부터 나무는 인간의 생명체로 여겨졌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가 “물구나무선 여성”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는 대지의 생명이며, 모든 축복을 부여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4.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받드는 것에 감사하라/ 자신이 취한 것의 대가로 선물을 주라/ 자신을 떠받치는 이들을 떠받치라. 그러면 대지가 영원하리라." (인디언 포타와미족의 격언) (301쪽)
사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로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원래 견지했던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영혼적인 무엇 그리고 여성적인 무엇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육체 노동은 정신 노동과 분화되었고, 자연은 마구잡이로 활용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처녀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아가 여성의 존재는 전투적 수직적 남성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짓밟힐 수 있는 객체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사랑과 우정과 같은 영혼의 가치는 깡그리 사라졌고, 에로스는 무차별적으로 섹스로 변모했으며, 농업은 천시되고 상업이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사항은 가령 카를 폴라니의 사회 경제 이론이라든가, 이반 일리치의 젠더 이론 그리고 여러 페미니즘에서 여러 관점에서 논의된 바 있습니다.)
합리적 사고는 애니미즘을 저열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했습니다. 산업의 발전은 19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국가 이기주의와 세계대전을 부추겼고, 독점 자본주의와 함께 자원은 무한대로 착취당하게 됩니다. 생태 위기는 이러한 제반 사항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기쁨의 책은 자연과 인간 속에 자리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생태적 삶은 투쟁이 아니라, 평화이어야 하고, 파손이 아니라, 상생이어야 하며, 세계 앞에서 인간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는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지만, 결코 난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책에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어른을 위한 동화 그리고 웹툰 만화도 새로운 각도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책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며, 우리에게 절실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대립하는 동안 인류세는 종언을 고하려 합니다. 생태적 인간은 당면한 문제를 넘어서서, 원시안적으로 물질이 어떻게 서서히 파괴되는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 이후의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세계 속에서 영혼을 되살리려는 노력일지 모릅니다.
가령 특정 사물을 마치 신처럼 모시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페티시즘은 저열한 시각으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359쪽) 왜냐하면 원시인들이, 혹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애지중지하는 사물 속에는 치유와 회복력을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인용한 그레이엄 하비의 문장을 예로 들까 합니다. 이 말 속에 저자 유기쁨이 추구하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론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세계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세계와 함께 하거나, 자연과 세계 속에 내재하는 존재다."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