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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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에 손이 갔다. 바로 김 훈이 작가다. 


그의 소설, 칼의 노래와 그의 일련의 에세이들에서 보여준 단어와 문장력들이 내게는 큰 매력으로 남아 있었기에 저만치 혼자서도 부담없이 읽어 나갔다.


그의 글 속에서는 삶과 죽음이 마치 살아 숨쉬듯이 널을 뛰며, 길지도 않고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들이 콕 찍어서 내게로 달겨든다. 역시 이 짧은 듯한 이야기 속에서도 그의 문장은 그의 냄새, 그의 색깔을 짙게 드리우며 낯설지 않은 얼굴로 다가섰다.


충남 어느 지역, 가창 오리떼가 머물다 떠나는 그 곳 언저리에 세워진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에 대한 이야기 이다. 수녀원의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서부터 수녀들의 헌신과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길지 않지만 어떠 했을지의 느낌은 그 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문체로 서술해 나가고, 늙고 병들어 하느님 곁으로 어서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는 수녀들의 마지막 나날들, 천주교 교리에 따른 그 곳 어촌 주민들의 고해성사와 죄의 사함,순교자 집 안 출신의 장분도 신부의 분주한 삶, 이런 이야기들이 맞물려 가며 구성되어, 질기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생의 마지막 모습과 죽음과의 조우, 참 잔잔하게 묘사되고 있다.


역시 작가의 문장 속에서는 삶과 죽음에 관한 특정 단어들로 표현하는 특색이 있고 여기에서도 닿아오는 그 단어들의 익숙함 덕분인지 내용이 전체적으로 그다지 밝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삶과 죽음을 묘사하는 구절들이 어떻게 환하게만 밝혀질 수 있으랴...


그만큼 가볍지 않고도 단순하지 않은 것이 죽음 앞의 삶의 무게 때문이리라.


연고도 없고, 살았을 적의 소유했었던 물건들 조차도 하나 둘 셋, 가짓수를 헤아릴 만큼 단촐하고도 간단했던 그녀들, 뒤에 남김 조차도 금방 잊혀져 갈 한 낱 사소한 듯 보여지는 개별적인 삶, 그럼으로써 짓눌리지도 않았던 삶 앞에서 다시 한 번 더 삶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에 뒤돌아 보게 한다.


소유에 생각이 깊고 오늘 하루의 삶 보다는 내일, 또 내일의 삶을 내다보며 성큼성큼 내 딛어 가는 걸음걸이 속에서, 한낱 스치듯이 내 앞에 잠시 머물렀다 갔던 그녀들의 삶이 내게는 조그마한 거울로써 아롱졌다가 사라졌다.


책의 크기나 두께는 비록 작고 얇지만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단편소설은 가히 한국 문학을 대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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