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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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성배라고 하면 인디아나존스나 몬티파이튼부터 떠올리는 얄팍한 정도만 겨우 아는 사람인데, 어찌되었든 성배전설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고있는 사람도 재밌게 읽을수 있는 소설이었다.
특히 나는 소설의 삼분지 일 쯤 읽었을때 결말이 너무 궁금해져버린나머지, 마지막장을 펼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는데 놀랍게도 스포일러를 밟았는데도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적 그로기 상태에 빠져 다시 앞장부터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나머지 삼분의 이를 다읽고나서야 앞서 이해하지 못했던 마지막장을 읽었을때 그제서 둑이 터지듯 계속 키들키들 웃었다.

신체에 소켓을 삽입해 기계와 플러그를 연결하여 직접노동을 하는 사이보그 노동자가 기본값인 32세기의 성간사회를 지켜보며 그리깊게 생각해본적 없던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32세기엔 아무래도 소멸된것으로 보이는 내직업은 나름 현장노동의 최전선에 종사하는 직군인데, 과연 나는 내손으로 만들어내는 변화를 보며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있는가(그다지…) 애슈턴 클라크가 빛을 볼수 있었던 24세기 즈음에는 어떤 위대한 자본가가 그와 함께 했기에 소켓삽입술을 시행한 노동자에게 기꺼이 기계 플러그를 내어줄 생각을 했는지. 내가본 21세기의 자본가들은 고작 이삼백년쯤 흘렀다고해서 충분히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개선하기위해 굳이 쥐어줄 필요없는 비용을 소모해 사회에 기여할 생각을 안하는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건 내가 고작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대착오적 인간이라서일까. 어쨌든 32세기에도 여전히 프린스레드같은 놈은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놀랍지않게도 이녀석은 소켓미설치자였다.

성운과 성운을 넘나들며 직업을 갈아치우는게 예삿일인 성간사회는 이미 전통적 의미의 사회가 해체된지 오래다. 문화적정체성이라는 말도 이미 사어가 되어버렸을 시대에서 마우스가 연주하는 시링크스-공감각을 연주하는 악기-를 필두한 예술의 의미가 꽤나 각별하다는 점도 흥미로운 생각할거리였다.

트리톤 부둣가를 서성이던 눈먼 댄의 주정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빛없는방에 앉은 로크의 모습으로 마무리가 되는동안, 나는 천년뒤의 어떤세계속에 반쯤 같이 모험하는듯한 기분이었다.
현상유지와 전진 중 나는 무엇을 택할까. 전진일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건 내가 낙오되는 무리가 아닐거라고 확신하지 못하기때문일것이다. 물론 현상유지 속에서도 낙오될수 있겠지만.
소설을 다읽고나서 어둠속에 잠긴 로크선장이 기사 퍼시벌처럼 느껴졌다. 여운이 깊게 남는 로망스를 읽은듯한 기분이다.

아 라링크스 대신 시링크스로 노래하는 마우스의 연주를 나도 감상해보고싶다😭

폴라북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제공받아 읽고 제 감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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