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대의
지젤 알리미 지음, 이재형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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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첫 번역출간된 지젤알리미의 저작이다. 원본은 1970년대에 출간된만큼 당시 지젤알리미의 주요 업적인 낙태처벌법 폐지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나온다.
사실 난 지젤알리미의 업적에 무지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책을 읽으며 여성주의에 대해 또한번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본인을 좌파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한 반식민반자본주의 운동가로서 그의 생애는 참으로 다채로운 업적으로 가득차 그를 잘 몰랐던 내가 민망할 정도였는데, 그의 생각 하나하나 모두 너무도 타당하고 옳아 연신 밑줄을 그으며 탐독했다.
사실 시작되는 부분의 옮긴이해설-개정판서문-초판서문만 읽는데도 박수가 나오는 문장이 많았다.

📎페미니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페미니즘은 어제 쟁취한 권리가 오늘의 테러에 굴복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이 타인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민주주의가 진정한 의미를 되찾도록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은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화국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도록 만들 것이다.

페미니즘 혁명이란 젠더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억압에 벗어나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휴머니즘 이라는 말이 좋았다.

1장 나의 삶으로 시작되는 저자의 출생과 유년시절, 프랑스에 건너가 시작된 고등교육, 그리고 임신중지 경험까지. 알리미는 낙태처벌법 폐지운동 전까지 겪었던 자신의 차별경험에 대해 차근차근 토로한다.
열아홉에 겪었던 임신중지와 모멸감, 여성 변호사로 일할때 겪었던 불합리, 출산은 신성한 것이라 떠들어대지만 정작 임산부에게는 그에 상응한 대우는 커녕 실력마저 깎아내리는 말들. 결국 과거와 다를바 없는 현재가 눈앞에 겹쳐졌다.

📎우리가 벌이는 투쟁의 중심축은 ‘여성 해방’이었다. 그중에서도 피임과 낙태를 합법화함으로써 여성을 짓누른 억압의 한 부분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1971년 보비니 재판으로 촉발된 낙태처벌법 폐지운동의 기승전결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사실 MLF의 노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이 사건에서는 지젤알리미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문에서부터 설파하던 법의 중요성, 현재 우리나라는 임신중지법 위헌 판결후 입법공백상태라는 사실이 다시한번 뼈아프게 다가오는.

📎법이 폐지될 때 달라지는 점은 억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낙태가 더는 불법이 아니게 된다. 지금까지 다니엘 메투아는 고발당했지만, 이제부터는 법이 폐지된 덕분에 고발도 기소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일까? 억압을 없애는 것은 여성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 나아가야 한다. 법과 제도까지 마련해야 한다.

📎심지어 형식적 자유의 틀 안에서도 법의 부재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자유라고 할 때 모든 것을 포함해서 생각했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자유란 경제적 자유에 불과했다.

📎억압받던 여성들에게 “이제 낙태는 불법이 아니니 병원에 가도 돼요.”, “낙태는 자유니까 알아서 잘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보비니에서의 외침처럼 실질적 분열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낙태 시장에서 ‘자유로운 시도’나 ‘자유로운 선택’은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다.

마지막 8장 투쟁의동력 파트도 흥미로웠는데, 개정판 서문에서 그가 언급한 “여성 혐오는 우파든 좌파든 어디에나 있다” 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알리미가 짚는 부분처럼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남성 모두에게 착취가 일어나고 공통착취에는 공통투쟁으로 대응하지만 여성에게는 과잉착취라는 계수가 추가된다는 점. 결국 여성은 계급억압과 성억압에 맞서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여성의 투쟁은 여성을 넘어서야 한다.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의 문제다. 여성의 투쟁이 기존 지배구조를 해체하면 여성은 객관적으로 완전한 해방에 이를 수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넓게 바라보면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곧 남성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뒷부분의 꼼꼼한 주석들과 부록들도 유심히 살펴볼만한데, 특히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률개정안 입법이유서를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나라도 임신중지법 관련 입법공백이 부디 더 길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수많은 변론들을 쓰고 말했을 그의 글솜씨는 당연히 유려했겠지만서도, 번역또한 잘되지않았나 싶다. 그리 쉬운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은 인문교양서를 읽으며 역자의 번역에도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제생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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