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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틂 창작문고 24
이제니 지음 / 문학실험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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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낸 이제니 시인의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그의 시 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두드러진 개성은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생성되는 흐름에 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그 연결은 단순히 앞과 뒤를 잇는 차원을 넘어선다. 시집 전체가 ‘영원’과 ‘미래’라는 거대한 시간의 축 위에서 서로를 비추고, 번져나간다.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 이 시집이 다소 버겁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집 속으로 들어갈수록, 시인이 구축한 ‘영원’의 깊이를 느끼게 되었다.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는 소중한 존재(어머니)의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사라진 이를 침묵하는 풍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견해내며, 우리를 자신이 거니는 ‘영원의 세계’로 이끈다. 그곳에서는 있음과 없음, 몸과 영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존재와 부재를 나누는 것은,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얇은 막에 불과하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말도, 영원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감각 속에서 시인은 ‘없음’을 응시하며 ‘있음’을 발견한다. 무덤, 소멸, 어둠과 같은 이미지들은 분명 부재를 가리키지만, 그것은 공허한 결핍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비어 있음은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이는 자리로 확장되고, 사라진 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삶은 없음 없이 지속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며 진동한다. 


그러나 없음에 이르는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존재는 몸을 벗어나고, 색채와 형태를 잃으며, 더 이상 오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존재를 향해 손을 뻗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슬픔을 통과해야 한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기억에 대한 슬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잃어버릴 미래뿐이라는 예감의 슬픔. 시인은 이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으며, 없음과 있음의 경계가 사라진 영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시인은 오래도록 그리워해온 존재를 다시 만난다. 한때 비어 있다고 여겨졌던 미래는 더 이상 공백이 아니라, 다시 만난 존재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공간이 된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대상은, 실은 잿빛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함께 걸었던 풍경과 건네받았던 말들, 삼켜야 했던 울음과 꿈을 다시 마주하며, 새로운 ‘되기’의 순간에 도달한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진 당신의 세계 속으로 너와 나는 작고 투명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되기-들판의 삼각형> 중에서


삶을 지속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은 감각하고, 존재하는 일이다.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는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감각하는 동시에, 그 죽음을 통과해 다시 삶 속에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오히려 죽음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삶의 깊이로 우리를 데려간다. 없음은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너머를 오래 바라볼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사라진 것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여전히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나러 가는 사람이 되어 걸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 감은 눈의 안쪽으로부터 걸어오고 있는,

어느 날의 무채색의 사람이 있어….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으므로

이제 당신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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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신 지연 -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338
나하늘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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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시


내가 작아지면 나의 슬픔도 같이 작아지고 나의 사랑도 같이 작아진다 사랑은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다시 커지는 법에 관해서는 단 한 가지만이 알려져 있다 한 사람이 작아진 사람과 함꼐 작아져 주는 것이다

- 〈작아지기〉 중


이것은 버려진 비유를 주워서 업싸이클링한 문장이다

-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집〉 중


베란다로 가서


ㅁ을 열었다

- 〈ㅁ〉 중


시집 리뷰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무언가 되기, 구체적인 무언가가 되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오히려 사라짐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시집이어서 좋았고, 그러면서도 읽는 내내 기묘하고 서늘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시대의 강박에 대응하는 부드러운 회피를 보여주었고, 읽으면서도 누군가 남긴 희미한 자취를 따라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복합적인 경험을 주는 시집이었다.


이 시집의 기본적인 정서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사라짐'의 미학을 기반으로 한다. <사라지기 - 막>에 나타난 것처럼 시인은 이 삶이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에 나를 숨겨줄 작은 공간 하나, 혹은 사람 한 명만큼은 꼭 있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이 말하는 작은 공간, 혹은 사람은 어떤 물리적 장소나 실존적 존재보다는, 내게 중요한 서가 하나 또는 어떤 존재에 가깝게 느껴졌다. 삶을 견딜 수 없을 때, 누구도 모르게 잠시 소멸했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인 셈이다.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특히 도시라는 공간에서의 존재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 걸까? 수없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수많은 이들이 개성을 잃고 삶의 방향을 도시의 방식에 빼앗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슬픔을 드러내는 순간, 생존의 논리에 맞지 않은 방식으로 치부되며 유령이 되며, 슬픔을 숨기려고 하다가 결국 투명해지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런 도시의 방식에 대해, 시인은 다양한 이야기로(가끔 시를 이야기로 바꿔 부르면 훨씬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자신의 사라지기 방식을 보여준다. 시집 전반에 걸쳐 있는 <사라지기> 1-막 부터, 무정한 세계로부터 회피하는 이야기(<작아지기>), 생일에 자신답게 살 수 있게 용기를 얻는 이야기(<마녀의 생일>) 등 (특히 도시의 삶에 적응해버린 사람들에게) 신비하지만, 명료한 방식으로 도시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들은 불친절하고, 난해한 방식이 아니라 각각의 세계를 투명하게, 최대한 가까이 드러내고 있다. 


읽으면서 다소 실험적이고, 형식적 시도를 보여주는 시들도 분명히 있었다. <제목> <c/0> <ㅁ> 등의 시를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는데, 최근 출간되는 시집들이 실험적인 시들을 조금 배제하는 편이어서 어색하게 느껴졌을 뿐이지, 시집 전반적으로는 완성도가 높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 방면에서 느낄 수 있고 같이 고민하기 좋은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는 것 같았다. 삶에 위로가 되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집들도 많지만,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시인의 이야기와 철학이 돋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산다와, 어떻게 살아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의 삶을 정의하는 것이 단순히 형용사에 맏길 것인지(하지만 형용사의 방식 역시 중요하다) 아니면 '사라지기'와 같은 행동으로 자신만의 살아있기를 증명할 것인지의 차이일까? 


고고학자는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도시를 찾는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을 찾는 것일까? 자신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처에서 나를 만들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버려지기 마련이다. 그런 자신을 다시 주워서 사라질 수 있게 하는 건, 자신만의 방식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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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점점 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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