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세번 읽었다. 첫번째 읽었을 때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두번째는 서평대회에 참가할 목적으로 책을 읽었다. 마이클 샌델은 답을 준 것이 아니라 질문을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번째 읽은 것은 EBS에서 방송한 '하버드특강_정의'를 시청하고 나서였다. 총 12강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은, 마이클 샌델의 실제 강의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과제나 학점에 대한 걱정 없이 편한 마음으로 그들의 토론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 강의를 듣고 나서 책을 읽었을때야 비로소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철학들의 무게감과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금융위기 이후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장은 우리의 일상에 남김없이 침투하면서 그 역할과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제목의 이 책에는,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와있지 않다. 오히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없어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돈으로 사면 안되는 것들'혹은 '돈으로 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논의를 하는 책이다.
만약 누군가 '돈으로 살 수 없는게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도 우정·사랑 같은 감정은 돈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 '그렇게 보이게'는 만들 수 있다. 결혼식 가짜 하객이나, 애인대행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우리에게도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센델은 의미심장한 질문까지 던진다. '당신은 시장이나 우정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다고 진정으로 믿는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다루는 내용은 주로 경제와 관련된 문제들이라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철학적 논의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경제란 우리 삶과 가장 깊이 연관된 것이기에 훨씬 가깝게 와닿는다. 책을 읽다보면 이미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시장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시장의 규범들은 비시장 영역의 밀어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공정한 합의에 의한 거래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사회에 해가 없다면 무엇을 거래하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반박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공정한 합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공정성에 대한 문제), 둘째, 어떤 거래는 그 자체가 부패와 타락일 수 있다는 것(도덕성에 대한 문제)이다. 책 전체에 걸쳐서 먼저 시장이 비시장 영역에 침투한 예가 제시되고, 그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생각, 그리고 위의 두가지 반박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첫번째인 공정성에 대한 반박은 간단하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서의 모든 거래가 거래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라 가정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와 상관없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 강압적으로 거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공정성에 대한 반박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반박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특정한 상황에 의지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만약 그 상황이 '정말로 자유로운'거래 상황이라면 어떤 거래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두번째 반박은 근본적이다. 우리에겐 시장의 규범으로 대체될 수 없는 비시장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거래하면 안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시장이 특정 영역으로 침투함으로써, 이타주의·관용·시민정신 같은 도덕적 규범이 쇠약해지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박에 따를 경우, 시장이 침투해선 안되는 도덕적 규범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남는다.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거래하면 안되는 것들'이 무엇이며,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고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이 침투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센델은 말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숙고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라고. 토론하는것. 자기 생각의 끝까지 가보는 것. 대화를 통해 자기생각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른 의견의 유용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거쳐 자신의 철학을 정립해 가는 과정. 이것은 민주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그 중요성만 강조될 뿐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토론이란 상대방을 이기려는 말싸움이고 내가 설득을 당하면 지는 것이 되는 게임이다. 논리가 확장되고 사고가 유연해지며 가치관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집만 굳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샌델이 강조하고 강의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성숙한 토론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작되었으면 좋겠다.
책 말미에 감수자인 김선욱 교수의 해제가 수록되어있다. 샌델의 정치철학을 명쾌하게 서술해 놓았다. 정의 중심의 정치 철학과 행복 중심의 정치 철학, 그 양자를 종합한 샌델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이다.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샌델의 책은 쉽지만 어렵다.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두번, 세번 읽어야 했던 적도 많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보면 무겁고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쉽게 풀어쓴 샌델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없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샌델의 질문에 공감하고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 p.7 |
| ○경제학도 이제, 경제의 주체인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입자가 아니라 탐욕과 공감이 교차하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뉴턴 경제학의 시대가 저물고 다윈 경제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_추천사,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 | p.29 | | ○현대 정치학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논의다. | | p.116 | | ○어떤 재화를 상품화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과 분배 정의 이상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 | p.131-132 | | ○재정적 인센티브에 의존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려면, 이러한 인센티브가 보호해야 할 태도와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 | p.180 | |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더욱 발달하고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 | p.257 | |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반박은 첫째, 경제적 필요로 인한 강압이지 사실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 그것 자체가 부패와 타락이라는 점이다. |
| p.272 |
| ○광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 | p.274 | |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 | p.275 | |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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