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심야식당

1~15권

 

 연재가 되고있는 만화책은 한권 한권 리뷰하기에는 쓸 것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완결까지 읽고나서 한꺼번에 리뷰하기에는 언제 완결이 나올지도 모르고 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는데, 결국 현재 나온 것 까지는 다 읽은 후 한꺼번에 리뷰를 하고, 이후에 나오는 것들은 되는 대로 리뷰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개인적으로 그렇게 정해놓은 것이니, 책에 따라 언제 바뀔지 모른다. 한권 한권의 내용이 전혀 다른 만화책이라면, 따로 따로 리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아베 야로의 '심야 식당'이란 책은, 일본 만화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하다. 일본에선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나름 매니아층을 폭넒게 확보하고 있는 유명한 만화책이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화책보단 드라마가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요리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아베야로의 그림이 그렇게 식욕을 자극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절대 밤에 보면 안되는 드라마'라는 '심야식당'에 비해, 아쉽게도 우리 나라 음식도 아니라 그렇게 공감되지 않는 음식들을 보고 군침을 흘리게 할만큼 작가가 그림을 잘 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심야에만 문을 여는, 정식 메뉴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주문하면 재료가 되는 대로 뭐든 만들어 주는 식당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어 구분이 되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갖가지 사연들은 다양한 음식들과 연관되면서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준다. 호스트 클럽이나 불륜 이야기 같은게 너무 많이 나와 내용상 성인만화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딱히 엄청난 재미는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책을 놓지 못하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15권까지 다 사버렸고, 정신 차려보니 벌써 다 읽어버린 것이다. 남의 이야기로 수다를 떨듯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이라 그런가 보다.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심야 식당'. 지친 일상에 잔잔하고 따뜻한 위로와 감동이 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2권

 P.64


○-여자한테 우정은 없는 건가.

   -없어요! 이 세상에 남자가 있는 한!

 

 4권

 p.13

 

소스가 많다고 맛있는 게 아냐. 밸런스지.

 

 4권

 p.147

 

인기를 얻으니까 또 점점 예뻐지니, 여자란 신기하단 말이야.

 

 8권

 작가의 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자신을 자신 이상으로 내세우지 않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8권

 p.180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 야식의 매력은 '일말의 죄악감에 있다'고.

 

 10권

 p.101

 

 몇 살이 되든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학창시절의 친구는 그런건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와 악마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홍성영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사와 악마 1, 2


 

 댄 브라운이 이 작품에선 과학과 종교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과학에서는 '반물질'이라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종교에서는 바티칸과 교황이라는 신성한 소재를 선택했다. 댄 브라운의 여타 소설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구성과 긴박한 전개는 독자들의 손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역사적·문화적으로 유명한 장소와 예술품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에 얽힌 은밀한 비밀들을 알아가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댄 브라운의 여러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기호학자 ‘랭던’이 등장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과학과 종교를 다룬 이 책이 주는 메시지에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 역시 종교보다는 과학을 믿고 있었다. 우주의 탄생과 그때 생긴 힘들의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이 우주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신비로운 과학 말이다. 이 힘의 균형이 너무 완벽하기에, 우리 우주 말고도 수많은 우주가 명멸하며, 우리 우주는 그 중에서 운 좋게도 힘의 균형이 적절히 맞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연구할수록 설명하기 힘든 이 우주의 완벽함에 감탄한 나머지 우주의 존재를 ‘신’의 영역으로 맡겨 오히려 종교를 믿게 되는 과학자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런 설명을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로또보다 더 희박한,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정도의 확률로 탄생한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이 된다.


 이렇듯 우주의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점점 더 과학의 영역은 넓어질 것이며 결국 종교는 쓸모 없어지거나 나약한 이들의 마지막 도피처가 될 것이라고 믿은 나에게, 우리가 그 정도까지 ‘영적인 파탄’에 이른 것이냐는 궁무처장의 질문은 내 안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과학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영역이 꼭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꼭 종교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것은 유물론이 아닌 관념론이며, 이성이 아닌 감정이고, 과학과 기술이 아닌 인문과 사람의 영역이다. ‘영적인 파탄’이라는 궁무처장의 문제제기를 통해 나는 이런 것들에 전보다 훨씬 열린 자세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내 삶이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회 이외에도 깨달은 자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신을 찾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여러분은 과학 안에서 신을 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중력이나 원자의 무게가 조금만 변해도 이 거대한 우주에 생명체 하나 없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우주 안에 있는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없단 말입니까! 수십억 개의 카드 가운데 우연히 올바른 카드를 뽑았다고 믿는 편이 정말 더 쉽단 말입니까? 우리보다 더 위대한 힘을 믿느니 차라리 수학적인 불가능성을 믿는 게 낫다고 여길 정도로 우리는 영적인 파탄에 이른 겁니까?


○당신들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의문이에요.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건 바로 의문이에요. 삶의 의미를 알고 싶기 때문에, 불안하기 때문에, 모든 건 더 큰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깨달은 자들이 말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교회로 가는 거예요. 하지만 세상에는 교회 이외에도 깨달은 자들이 있어요! 우리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신을 찾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심야식당'으로 유명한 아베 야로의 데뷔작이다. 그림체는 '심야식당'보다 더 안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심야식당'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단 한권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물론 요리를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보단 이야기의 확장성에서 한계가 있었을 것이기에, 단권으로 끝나는 아쉬움이 이해는 된다.

 

 누군가에게 귀를 맡긴다는건 굉장히 불안하면서도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귀 청소를 하고 싶어지다가 문득 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쉬워지는, 그런 책이다. 무척 황홀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히 누워 귀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그래서 단숨에 책을 읽어버리고, 오랜만에 귀 청소를 했다. 깨끗하게 된 것 같긴 하지만, 역시 누군가가 해주는 것 보단 못하다. '심야식당'보다 이야기들이 구체적이진 않지만, '심야식당'에 만족한 독자라면, 이 작품 또한 분명히 마음에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털 포트리스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지털 포트리스


 

 '댄 브라운'의 소설들은 구성과 전개가 거의 비슷비슷하긴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작가의 박학다식함과 더불어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느껴진다. '디지털 포트리스' 역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밀한 구성과 독특한 소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최신작인 '인페르노'보다는 전달하는 메세지가 크지 않지만, 흥미롭게 책장을 넘겨갈 수 있는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 다른 작품의 소재들보다 '정보'를 다룬 이 작품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미래에 더 많은 관련이 있다는 점도 이 책이 흥미로우면서도 약간의 긴장감을 갖게 하는 매력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 것만 같은 '비밀 조직', '거대 음모'와 같은 것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꿰뚫어 보고, 은밀히 자극하는 댄브라운의 통찰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왜 그가 소설계의 빅뱅이 되었는지, 왜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 열광하는지가 이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빈치 코드'로 댄브라운을 처음 접하고 난 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은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댄 브라운 식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도 반드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 읽기의 혁명 1, 2


 

 출간된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런 만큼 언론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책이다. 특히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나, 교지 편집부 등 언론 매체를 제작하는 일과 관련된 이들에게는 나름 필독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책이다. 물론 언론 및 출판에 관계된 일을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언론 매체를 구독하는 일반 독자들까지 누구나 읽어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 매체들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는 것은 기사에 담긴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기사가 어떻게 '편집'되어 있는지, 다시 말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시각 말이다.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의 영향으로 예전에 비해 지면으로 된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은 기사의 '편집'에 못지 않게 '내용'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언론 정보의 제공 매체가 다양해져, 관점의 형성과 정보의 판단에 있어 '신문 읽기'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많이 감소했다는 것도 상기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정보라는 것은 생산하는 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것이므로, 독자는 마치 한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이 편집에 숨어 있는 은밀한 의도를 파악해내고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해석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흔히 말하듯,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 기업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전통 언론들의 실패가 독자의 실패로까지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문 읽기'에 성공하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한번쯤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신문을 읽든 읽지 않든간에 말이다. 나 역시 신문은 거의 읽지 않지만, 기사는 종종 읽기 때문이다.

○차분히 한번 돌이켜보라.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과연 얼마나 독자적인 것이었나를. 혹 그 판단 자료의 대부분이 언론에 의해 주어졌거나 영향받은 것은 아니었던가.


○…문제는 신문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 신문을 어떻게 읽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올바른 신문 읽기란 곧 ‘기사 읽기’를 넘어선 ‘편집 보기’에 있다.


○뉴스 가치(News-value) 판단이야 말로 편집의 생명이다. 편집이 철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왜곡된 신문 편집 구조를 바로세우는 작업을 현직 신문 기자들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언제나 왜곡된 신문 지면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 터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편집의 실패 못지않은 독자의 실패가 될 것이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