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이 이 작품에선 과학과 종교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과학에서는 '반물질'이라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종교에서는 바티칸과 교황이라는 신성한 소재를 선택했다. 댄 브라운의 여타 소설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구성과 긴박한 전개는 독자들의 손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역사적·문화적으로 유명한 장소와 예술품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에 얽힌 은밀한 비밀들을 알아가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댄 브라운의 여러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기호학자 ‘랭던’이 등장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과학과 종교를 다룬 이 책이 주는 메시지에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 역시 종교보다는 과학을 믿고 있었다. 우주의 탄생과 그때 생긴 힘들의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이 우주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신비로운 과학 말이다. 이 힘의 균형이 너무 완벽하기에, 우리 우주 말고도 수많은 우주가 명멸하며, 우리 우주는 그 중에서 운 좋게도 힘의 균형이 적절히 맞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연구할수록 설명하기 힘든 이 우주의 완벽함에 감탄한 나머지 우주의 존재를 ‘신’의 영역으로 맡겨 오히려 종교를 믿게 되는 과학자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런 설명을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로또보다 더 희박한,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정도의 확률로 탄생한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이 된다.
이렇듯 우주의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점점 더 과학의 영역은 넓어질 것이며 결국 종교는 쓸모 없어지거나 나약한 이들의 마지막 도피처가 될 것이라고 믿은 나에게, 우리가 그 정도까지 ‘영적인 파탄’에 이른 것이냐는 궁무처장의 질문은 내 안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과학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영역이 꼭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꼭 종교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것은 유물론이 아닌 관념론이며, 이성이 아닌 감정이고, 과학과 기술이 아닌 인문과 사람의 영역이다. ‘영적인 파탄’이라는 궁무처장의 문제제기를 통해 나는 이런 것들에 전보다 훨씬 열린 자세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내 삶이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회 이외에도 깨달은 자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신을 찾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 ○여러분은 과학 안에서 신을 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중력이나 원자의 무게가 조금만 변해도 이 거대한 우주에 생명체 하나 없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우주 안에 있는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없단 말입니까! 수십억 개의 카드 가운데 우연히 올바른 카드를 뽑았다고 믿는 편이 정말 더 쉽단 말입니까? 우리보다 더 위대한 힘을 믿느니 차라리 수학적인 불가능성을 믿는 게 낫다고 여길 정도로 우리는 영적인 파탄에 이른 겁니까?
○당신들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의문이에요.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건 바로 의문이에요. 삶의 의미를 알고 싶기 때문에, 불안하기 때문에, 모든 건 더 큰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깨달은 자들이 말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교회로 가는 거예요. 하지만 세상에는 교회 이외에도 깨달은 자들이 있어요! 우리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신을 찾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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