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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 개정증보판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6년 3월
평점 :
《관계의 물리학》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본적지’에 있습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p.21).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에 나오는 말입니다. 나는 이 문장을 ‘산책’이 아니라 ‘책’으로 바꿔서 읽습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인두같은 문장을 발견한다.”
나는 림태주 작가의 《관계의 물리학》을 읽으며 인 문장을 대입해서 읽었습니다. 《관계의 물리학》은 갓 삶아낸 고구마를 먹다 화상을 입을 정도로 기존의 앎에 상처가 생기는 인두같은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밑줄을 긋다 말고 자주 멈춰서서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가락을 여러 번 데이는 즐거운 고통을 감내하면서 한꺼번에 읽고 말았습니다. 읽은 게 아니라 읽고 말았으며, 읽어버렸습니다. 그대와의 바람직한 관계의 ‘목적지’를 찾아 끝까지 읽었지만, 그대와의 관계는 이미 내면 깊숙이 ‘본적지’에 존재한다는 소중한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문장이 담고 있는 관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유의 깊이가 심장을 파고들어 의미의 무늬를 남깁니다. 문장의 행간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속삭이는 데 생각지도 못한 울림으로 다가와 귀를 먹게 할 정도로 우렁찹니다. 다른 존재와의 낯선 마주침이 영롱한 이슬방울을 만들 듯, 다른 존재를 받아들여야 새로운 관계의 물리학이 생기는 사람과의 만남이 따듯한 봄날의 온기로 온몸을 스며듭니다.
열길 물속은 잴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을 알 길이 없습니다. 저자가 《관계의 물리학》을 기반으로 흔들리는 관계의 흐름을 헤아림으로 보살피면서도 관계의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이유없는 다정함과 소중한 마주침으로 건축된 깨우침의 향연입니다. 다름이 뒤섞이며 만드는 ‘관계의 화학’은 물론 빛보다 열 에너지로 풀어내는 ‘관계의 열역학’, 그리고 ‘관계의 윤리학’을 넘나들며 깨달은 일리있는 정문일침이 저자와 독자 사이를 밀고 당기는 다정함의 중력으로 작용하며 빠져들게 만듭니다.
동시에 이 책은 나의 확신으로 이해됨은 오해의 불씨를 키울 수 있고, 나의 비판이 안락한 과녁 주위만 맴도는 인식의 위험한 비난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진심으로 끌리는 관계의 미학으로 풀어냅니다. “동사는 주어를 만날 때까지 끝끝내 기다린다. 사랑은 동사의 의지다”(107). 오늘도 주어를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동사가 품을 의지를 어떤 의도로 전달할지 설렘을 참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끌어당기는 다정함의 중력을 가졌지만, 부딪혀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맴도는 별입니다. 한번 누군가에게로 향하기 시작한 마음은, 멈추려 애를 써도 자꾸만 네 곁으로 굴러가려는 관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내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작용을 하면, 내 마음속에서는 정확히 똑같은 크기의 따뜻한 파동이 일어나는 까닭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관계의 진리를 파헤친 《관계의 물리학》은 노벨 관계의 물리학상이 생기면 처음으로 수상작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듯, 인간은 관계의 그물로 지은 집에서 거주합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운명을 바꾸는 혁명적 사건이 될 뿐만 아니라 한 세상을 열어젖히는 전대미문의 관문입니다. 한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누군가에는 한 세상을 열어젖히는 운명적 사건이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관문이 열리는 위대한 출발입니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원리를 보이는 《관계의 물리학》으로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림태주 시인의 분투는 문장 곳곳에서 애쓰기의 흔적으로 잠복 근무중입니다. 사람은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 죽는다고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인 닥터 히루루크가 남긴 유명한 대사를 기억하면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잊혀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관계의 물리학》을 성찰의 거울로 삼아 우리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전망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봅니다.
누군가는 멀어지고 희미해졌지만 고단한 삶의 안쪽을 여전히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관계의 물리와 심리와 윤리를 통해 인간관계의 원리를 배우고 익히는 소중한 순간을 만끽하게 해준 림태주 작가님에게 마음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동사는 주어를 만날 때까지 끝끝내 기다린다. 사랑은 동사의 의지다"(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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