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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랑한 것 - 지금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11월
평점 :
나는 너에게 물들어 사랑이 되고, 너는 나에게 물들어 시가 된다
작가가 쓴 모든 문장은 당연한 것,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시비를 걸고 질문을 던지며 한눈 팔다가 한 눈에 반한 ‘오늘 사랑한 것’에 대한 감각적 언어의 향연이자 의미의 식탁이다. 확정된 의미로 문장을 건축하지 않고 기존 단어의 의미와 결별을 선언하고 낯선 의미를 잉태시켜 기정사실에서 불편한 현실을 만나고 숨어있는 진실을 캐낸다. 그래서 작가가 쓴 행간에는 언제나 기존 사유체계를 전복하고 낯선 생각을 잉태시키는 혼란의 격전장이 펼쳐지고 ‘오늘 사랑한 것’이 안타까움과 처절할 정도로 간절한 사연을 품고 헤아릴 수 없는 사유의 깊이로 파고든다.
작가는 뜨거운 문제의식보다 뜨거운 문제를 만나 자기 몸이 온통 화상을 입을 때까지 세상과의 불화를 의도적으로 시작, 그 불화에서 불협화음(不協和音)을 일으키며, 작가가 포승으로 묶인 ‘기존 앎의 암(癌)’을 치료하기 위해 항암치료도 거부한 채 햇빛에 털어 말리고 흩날리는 바람에 일부러 휘둘리며 구름 속으로 끌려간다. 기존 ‘앎’이 걸린 ‘암’에 회생 불가능한 사망선고를 내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앎의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진통을 하루 일과로 지부하지만 진지한 반복을 통해 의미의 반전을 꿈꾼다.
작가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언제나 낯선 비유를 사용한다. 비유가 달라지면 사유의 관문은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새롭게 열린다. 작가는 “언어를 불에 달구고 정념의 모루에 얹어 두드리고 식히고를 반복”(245쪽)하며 타성에 젖은 고루한 관념의 파편을 담금질한다. 행간과 행간의 사이는 “단어가 단어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쑤셔” 넣고, “뒤따라 온 문장이 앞 문장의 몸통에 뿔을 박아” 넣어 “생사를 넘나드는 축축한 긴장과 대치, 그 압축된 메타포(245쪽)가 예고 없이 곳곳에서 격발되는 개념의 전쟁터이자 느닷없는 사랑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어찌할 수 없는 해일에 가깝다. ”그리움은 수증기 같아서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지만, 외로움은 갈증 같아서 삶의 수분을 빼앗아 말라 죽게 만든다“(258쪽)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비틀리고 엇갈리다 평정을 찾아가는 안간힘의 글쓰기 향연이 펼쳐진다.
“나는 너에게 물들어 사랑이 되고, 너는 나에게 물들어 시가 된다”(112쪽). 이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단어가 다른 단어를 붙잡고 애정하는 장면이 느닷없이 급습해서 맨정신으로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기 어렵다. “가을의 우울은 생리통”(78쪽) 같다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곳에 안개가 다녀가면 담쟁이 덩굴이나 화살나무 잎들에서 푸른 웃음기가 빠져나가고 갱년기 같은 불그레한 반점이 번집니다. 푸름을 탐하는 안개의 욕망은 추하고 노골적이어서 앞산의 상수리 나무들이 밤바다 문단속을 심하게 합니다”(78쪽)라며 가을의 낭만에 취하며 “그리움의 감도”(78쪽)를 한껏 드높인다. “찰나의 감탄이 아니라 육중한 감동의 서사”(121쪽)는 사계절을 시인의 서가에서 “육신을 헐어가며 썼고, 시간을 긁어가며 더디게 썼다”는 몸부림의 흔적이자 고뇌의 얼룩이다. 모든 단어에 서린 ‘사연의 무게와 깊이’가 ‘사유의 무게와 깊이’를 결정한다.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고 멈춤의 시간적 여유 없이 읽고 말았다. 가을 서녂하늘에 걸려 있는 노을에 그을린 그리움이 온몸으로 스며들며 심장박동을 가속화시키는 공감의 파장이 일어나고, 작가가 품은 ‘오늘 사랑한 것’들의 색감으로 내 몸은 심하게 물들어버렸다. 오이가 피클로 바뀌며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가 일어났다. 육신의 고통으로 건져올린 단어들의 꽃이 나에게도 꽃이되어 꽂혀버렸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평범하지만 비범하고 비장한 한 문장을 남긴다. “내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다는 뜻”이어서 “내가 살아있는 것이 네가 살아가는 일에 기여하는 것(307쪽)임을 잊지 말자는 먹먹하고 엄숙한 선언과 주장이 의미를 심장에 꽂아 묵직한 감동으로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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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물들어 사랑이 되고, 너는 나에게 물들어 시가 된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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