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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택배 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김희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7월
평점 :
‘택배’ 덕분에 누리는 인생의 ‘축배’, 그 고마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진정한 ‘대인배’다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를 읽고
“모든 삶은 물류다. 오늘도 배송 완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택배는 아무래도 주문한 책을 집으로 배송받는 서비스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빠르면 그 다음 날 새벽에 택배로 받을 수 있고 늦어도 2-3일 이내에는 원하는 책을 받아보는 순간의 기쁨도 누군가 대신 책을 배송해준 덕분에 누리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다. 택배가 도착한 문 앞의 그 책과의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가장 심장 뛰는 순간 중의 하나다. 만약 물류가 없다면 세상은 하루 아침에 정체된 상태로 주어진 장소에서 자가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근본적인 경제체제를 전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배송 완료된 그 택배 덕분에 나는 그걸 기반으로 내 삶의 또 다른 일상을 누리는 행복을 만끽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금까지는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다.
택배 기사 덕분에 내 삶에 경배하는 삶을 살다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는 한 젊은 친구가 우여곡절 끝에 택배 기사를 하면서 겪어낸 육체적 고통을 정신적 고뇌로 풀어낸 택배 기사 사투기다. 누군가에게 택배는 부르면 앉아서 편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배송 시스템의 한 부분이지만 그걸 직접 수행하는 택배 관련 관계자들에게는 땀으로 얼룩진 고된 육체노동을 대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 사는 고귀한 실천이다. 그들에게 택배라는 단어는 일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인간사의 음양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면서 엮여나가는 자기 삶의 내러티브다. 택배를 직접 몸으로 수행하는 택배 기사와 택배 기사의 고된 노동 덕분에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택배라는 단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강도와 의미의 무게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배송완료 메시지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땀이 흐른다.” 배송이 완료되기 까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까지 도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와 정성이 담겨 있는지를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많이 생산해서 소비자의 구매욕구와 소비 욕망을 자극, 보다 많이 팔면 되는 경제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내가 먹고 사는 과정에 관여되는 수많은 노동의 대가가 과연 얼마나 깊은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모두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중심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의 속도와 효율, 목표와 성과를 비롯 능률복음에 물들어 살면서 내가 누리는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만들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노동의 대가를 잊어버리고 산다.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기 위해 입구에 정렬된 카트를 끌고 쇼핑을 한다. 쇼핑을 마치면 주차장에 카트를 버리고 가거나 일정한 장소에 놓고 간다. 거기에 아무렇게나 놓인 카트는 다시 아르바이트생이나 해당 직원들이 다시 마트 입구에 가지런히 정렬해놓는다. 내가 지금 이렇게 편리하게 쇼핑을 하는 과정에는 내 대신 누군가가 힘들고 복잡한 노동을 대신해주는 수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스며들어 있다. 내가 경험하는 단순함이나 편리함은 나 이전에 누군가 복잡하거나 불편한 고된 노동 덕분에 누리는 행복이라는 점을 알면 사회는 더욱 인간적인 정이 오고가는 따듯한 공동체의 연대가 생길 것이다. 택배를 거의 매일 같이 이용하면서도 그 택배로 인해 내가 느끼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 누구 덕분인지를 잠시라도 생각해본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흔적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기적의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단어에는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실려있다
나에게는 ‘용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수많은 감정의 기복이 희로애락의 곡선을 타고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 단어에 담긴 내 삶의 흔적과 얼룩이 의미를 머금고 무겁게 짓누르는 단어가 바로 용접이다. 단어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기를 머금고 있다. 용접으로 회색빛 청춘을 보내고 용접으로 일생일대 전환점을 마련하는 운명과도 같은 단어였기에 용접이라는 단어를 저울에 달아보면 내 몸 속에 잠복근무하고 있는 단어 중에 가장 무거운 중력을 지닌 단어다. 그만큼 회색빛 청춘을 용접과 함께 보내면서 용접이라는 개념은 관념의 파편으로 떠돌아다니지 않고 고달픔 속에서 내 삶의 신념을 잉태한 아픔의 단어였다. 폭염을 능가하는 전기용접의 불꽃 온도를 몸으로 겪어냈던 한 여름의 용접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골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고 가슴팍을 휘저으며 끝없이 흐르는 땀의 정체는 내가 느끼는 용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적어도 나에게 용접은 용접봉으로 철판을 녹여 붙이는 접합 행위를 넘어선다. 나에게 용접은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가 목적지를 상실하고 뜨거운 쇳물 속에서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혼절(昏絶)에 가깝다.
고된 택배 노동을 통해 하루치 삶을 견뎌내고 그것으로 젊음의 낭만과 청춘을 상쇄시켜 비루한 일상에서도 비상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택배 기사의 책에서 택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택배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실감(實感)으로 다가오지 않고 체감(體感)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저마다 다른 택배의 무게를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나르면서 흘리는 눈물과 땀의 얼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역시 택배를 평소에 많이 활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을 때 무턱대로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이야기 했던 순간이 떠올라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얼굴이 화끈거려서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다. 한 사람에게 택배는 내가 겪어낸 용접만큼이나 인생에서 고단함의 무게가 고스란히 박혀버린 가장 무거운 의미로 온 몸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택배가 오늘 몇 시쯤 도착할 예정이니 배송 장소를 저장해달라는 메시지가 올 때 언제나 나는 문앞이라고 저장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문앞보다 경비실이나 1층 택배 보관 장소로 저장을 해야 택배 기사는 보다 많은 택배물건을 배송할 수 있고, 그 결과로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뒤늦은 후회를 한다. 수백개의 택배를 주어진 시간 안에 배송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에는 언제나 심리적 압박감과 가중되어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를 앞두고 발걸음은 언제나 더욱더 무거워질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택배 기사의 무거운 배송 노동의 일부라도 절감해주기 위해 문앞이 아니라 1층 경비실에 저장하는 문자로 답신을 보내면서 부가적인 메시지로 “오늘도 당신들 덕분에 행복합니다”라고 써놓고 싶어졌다.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를 쓴 육체노동자 택배기사의 삶은 몸이 중심을 잡고 배송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사지만 사실 그에 못지않게 정신노동의 비중도 생각보다 크게 차지하는 일상이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러니까 택배 기사 따위나 하지”라고 심한 갑질 발언을 한 어느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들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같은 대학교수지만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사람이 택배 기사의 고된 노동을 인정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해도 되는지 한참 동안이나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새로 옮긴 주소로 쓰지 않고 예전 연구실 주소를 입력해놓고 왜 자기 택배가 안 오느냐고 정말 상식이하의 발언을 하는 갑집 고객 중의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설을 퍼붓는 사람이 대학에 있다는 건 국가적 낭비이자 부끄러움이다. 그럼에도 측은지심으로 감싸안고 심하게 손상된 감정의 뒤안길을 어루만져 다시 힘을 회복한다. 그렇게 내면으로 그리고 밑으로 축적된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새로운 지혜가 싹튼다
웨이터 법칙이라고 있다. 웨이터가 와인을 따르다 실수로 고객의 옷에 와인을 흘렸을 때 두 가지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한 고객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매니저 나오라고 해, 너 해고될 수도 있다”는 폭언으로 웨이터의 실수를 꾸짖는 경우다. 또 다른 고객은 전혀 다른 반응으로 웨이터의 실수를 인정하고 오히려 자기 잘 못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제가 오늘 샤워를 안 하고 나와서 다행이다. 집에 가서 옷을 바꿔 있고 세탁한 다음 샤워도 같이 하면 더욱 상쾌해질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은 웨이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하면서 미안해할까.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서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게 웨이터 법칙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모든 경우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경우 다른 사람의 힘든 노동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다.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를 쓴 김희우 작가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불평불만의 소리를 들으면 잘못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서 찾는다. 내가 잘 못했으니 거울을 바라보면 반성하고 성찰하며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작은 일의 성과나 실수도 늘 기록하고 반성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심판자의 질문을 던져 상대를 야단치거나 나무라지 않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이전과 다른 관문을 찾아 나선다. 대학교 총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기숙사에 배달되는 택배 분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해달라고 부탁, 분실사고를 혁신적으로 줄이거나 없앤 일이나 코로나가 한참 창궐할 때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1층에 택배를 배송하는 서비스를 설득 끝에 실현, 서비스의 질은 물로 효율도 함께 올리는 혁신적 사고를 몸으로 실천한다. 꾸준한 기록과 성찰이 기적을 부르고 통찰을 일으킨다는 점을 몸으로 보여주는 일상의 혁명가가 바로 김희우 작가다.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이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지혜가 싹튼다.
특별하지 않아도 대체불가능하게 특별하다
내가 잘 못했든 고객이 잘 못했든 항상 생각대로 풀리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고객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를 해봐야 어제와 질적으로 다른 판단착오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의 관문을 열수 있음을 몸으로 실천하며 삶의 가치를 두 배로 올리며 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계영배(戒盈杯)다. 김희우 택배기사가 삶의 실천 덕목으로 몸에 배게 반복하는 미덕이 바로 계영배의 가치다. 계영배란 "잔이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욕심과 탐욕이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던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은 전체 술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가득 채우려는 욕심을 포기하고, 즉 100%를 다 가지려는 탐욕을 내려놓고 최소한 30%는 나에게 도움을 제공헤준 모든 사람에게 돌려주라는의미다. 혼자 독차지하려다 가진 것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고, 술잔이 가득차는 지도 모르고 계속 술을 따르다 술이 흘러 방바닥을 채우는지도 모를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택배로 더 많은 돈을 벌수록 그걸 모두 자기 노력의 산물로 생각, 다 차지하려는 욕심보다, 내가 이렇게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공을 돌리는 미덕이 계영배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만족을 얻고 안주하는 방법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가지 대안이지만, 지금 여기서의 삶에 안주하는 순간,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은 없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내 일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면 질문도 많아지고 더 좋은 가능성의 관문도 열린다. 세상은 택배 기사가 매일 경험하는 것과 같이 생각보다 생각만큼 세상은 바뀌지 않고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때 사람은 이전과 더 낮은 자세로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잡고, 어제와 다른 나로 변신을 거듭할 수 있다.
“땀을 흘린 만큼 돈이 들어오는 정직하고 투명한 일, 나쁜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228쪽)이 택배라고 고백하면서 저자는 누구나 자기 몸으로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의 의미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택배는 인생 밑바닥을 기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에서 자기 삶의 보배를 택배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겪어본 경험담이 몸을 파고드는 신체성의 메시지로 들린다. 생각만 해본 사람은 당해본 사람을 못 당한다. 직접 겪어본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등불을 밝혀주는 경전이다. 당해본 사람의 육체적 담론, 겪어본 사람의 신체성의 언어가 정처없이 표류하는 관념의 파편과 머리의 언어를 이긴다. 오늘도 택배를 통해서 인생의 축배를 들고 있는 김희우 작가가 고백하는 말, “나는 남들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228쪽)하는 수준을 넘어 대체불가능한 김희우의 원본대로 살아가면서 오늘보다 명랑하고 행복한 코나투스를 따라가는 멋진 도전 여정이 무한대로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땀을 흘린 만큼 돈이 들어오는 정직하고 투명한 일, 나쁜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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