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인수첩 시인선 85
고두현 지음 / 여우난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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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에서 도래(到來)할 길을 상상하며

 

그리움의 이불 속에서

야밤을 지새운 채

깨어지기 전 새벽 이슬 녹을까봐

성급하게 달려나온 먹구름 속 마음이

남해산 유자와 죽방멸치의 언어로 번역된 채

삭풍을 타고 떨어지는 사선의 떨림을 전한다.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며 읽히는

고대의 심연에 갖힌 무수한 심정들,

그대의 창연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으로

허공을 날으며 시행간마다 시인의 우주가 읽힌다.

 

치열한 앎보다 낭창한 앓음을 사랑하다

현실의 질곡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는

진실의 곡절이 들려주는 울림이

짙은 잔향으로 며칠 째 남아있다.

 

사회에서 만난 가장 앓음다운 친구이자

언제나 시심과 시상으로 세상에서

뜻밖의 상상의 배움을

감당치 못할 화두로 던져주는 스승이기도 하면서

곡선으로 승부하라공저자이기도 한 고두현 시인의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를 읽는다.

 

언제나 변방에서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비켜간 시선에서 사고의 사선을 넘으며

메마른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선사해주는 시는

이번 시집에서도 변함없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한 때 남해 문학기행을 함께 다니며

시인의 탄생지를 순례했던 기억,

한 남해 횟집에서 시인의 작은 배려 덕분에

남해는 야해를 주제로

상상력 강의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추억이 몸속을 빠져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남해로 떠나는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고 싶다.

해마다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것은
햇살 잘 받는
남쪽 잎부터 자라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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