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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쓰면 쓰임이 달라진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나서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회장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회장님의 글쓰기》를 냈고,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어 그분들의 입맛에 맞는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주는 《대통령의 글쓰기》가 나왔습니다.
저자는 이제까지 글을 썼지만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
남이 원하는 칼라와 스타일에 맞는 글을 썼습니다.
마라톤에서 자신의 레이스를 펼친 것이 아니라
주전 선수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즉 남을 위해 달리는 페이스 메이커로 달리는 사람처럼.
이렇게 남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다
자신의 칼라와 스타일을 반영하는
자기다운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축적된 내공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 책이 바로 《강원국의 글쓰기》입니다.
이 책은 그 동안 저자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면서
몸소 깨달은 체험적 교훈과 깨달음을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집대성한 그야말로 강원국의 글쓰기 방식입니다.
방식(方式)은 아무 때나 나오지 않습니다.
숱한 방랑(放浪)과 방황(彷徨)을 거쳐
자기만의 방향(方向)을 잡은 사람이
방도(方道)를 찾아서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비로소 자기만의 길을 가는 방식(方式)이 나옵니다.
글쓰기 ‘참고서’ 같기도 하고
글쓰기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세세한 지침과 충고를 주는 ‘안내서’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쓰기 책이지만
사실은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 행복한 삶이며,
그 행복한 삶을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강원국 작가의 인생 고백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글 쓰는 원천기술과 응용기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자세와 준비,
글 쓰는 과정에서 몰입하는 방법과
글 잘 쓰는 다양한 체험적 노하우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숨은 비결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저는 그런 소소한 팁과 기술보다
이 책 전체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네 가지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는 기법이나 기술의 문제보다
글쓰기에 필요한 경험적 재료로 나다움을 드러내는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글쓰기를 강연이나 글쓰기 책으로 배울 수 없다.
글쓰기는 글로 써야 배울 수 있다.
쓰는 게 곧 글쓰기의 왕도다“(31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책을 쓴 이유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저자 역시 쓰면서 배웠음을
몸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결핍된 요구(NEEDS, 결핍, 필요조건)를 충족하고
욕구(wants, 욕구, 충분조건)를 채우기 위해서 쓰다가
이제 내가 좋아하는(likes, 선호, 필요충분조건) 걸
찾아서 쓰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저자 역시 처음에는
총체적 난국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글을 잘 쓰겠다는 마음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다가,
아는 것 하나만 써야 하는데 알고 있는
다른 무엇까지 붙이려다 보니 횡설수설(橫說竪說) 꼬이고,
주제와 상관없는 멋진 표현이 생각나 억지로 넣다보니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지며,
잘 못 쓴 문장 하나 지우면 될 것을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일파만파(一波萬波) 번지고,
찾아놓은 자료가 아까워
이곳저곳 쑤셔 넣다 보니 중언부언(重言復言)하게 되고,
쓰는 도중에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꿰맞추려다 보니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이르러,
감동적인 마무리를 하려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끝이 났다”(293쪽).
둘째, 글쓰기는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알게 되는 겁니다.
“써 가면 알게 된다. 알아서 쓰는 게 아니다.
모르니까 쓰는 것이다”(17쪽).
배워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배우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배운다“고.
쓸거리는 써야 나온다..
.쓸거리가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 쓸거리가 생각난다.
처음 쓴 몇 줄이 실마리가 되어,
그것을 단서로 엉킨 실타래가 풀려나간다.
생각이 생각을 몰고 오고, 글이 글을 써나간다(234쪽).
우리는 뭐든지 시작하기 전에
너무 완벽하게 준비합니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냥 시작하는 겁니다.
시작하는 방법에 관한 책은 그만 읽어도 됩니다.
시작하면 실행 과정 속에 방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쓰기도 무조건 쓰기 시작하면 길이 보입니다.
셋째,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네가 살아온 경험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작가도 고백합니다.
“쓰는 것은 겪은 것을 넘어서기 어렵다”(246쪽).
이성복 시인도 《무한화서》에 주장합니다.
“내가 쓴 글은 내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확히 나의 글이다.
왜냐하면 내 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p.123).”
이 책에는 그 동안 저자가 글을 쓰면서
밑바닥에서 닦은 글쓰기의 3기가 나옵니다.
글쓰기의 기틀에 해당하는 기본과
그 위에 세운 기둥,
그리고 기둥을 바탕으로 발휘하는 기술입니다.
“글쓰기란 기본이란 기틀 위에,
기둥을 세운 후
기술을 써서 지붕을 얻고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다.
기본이 튼튼하고 기둥이 굳건할수록,
또한 기술이 능숙할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115-116쪽).
다양한 글쓰기 경험으로 농축해낸
글쓰기의 살아있는 깨달음의 보고입니다.
글쓰기 책도 글쓰기 경험을 자신만의
플랫폼과 플롯에 비추어 구조화시킨
채험적 산물입니다.
“글 잘 쓰는 비결을 말하라면 나는 ‘3습’을 꼽는다.
학습, 연습, 습관이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습관이다.
단순 무식하게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이다.
글쓰기 트랙위에서 자신을 올려놓고
글쓰기를 일상의 일부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다”(48쪽).
지겹지만 반복해야 습관이 생기고
지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매일 습관적으로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루틴은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안간힘이다.
글 쓰는 어려움을 달래는
스스로의 위로이자 고무 의식이다“(44쪽).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는
내가 삶의 무대에서 주연 배우로 연기하는 길입니다.
“글쓰기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올려놓고 연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개성을 발산하며,
아우라를 형성하는 장이다.
그것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글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영웅도 될 수 있고, 신화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148쪽).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애쓰기입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는 힘들고
지겨운 노동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남이 시켜서,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labor)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직업적 전문성을 살리는 작업(work)을 넘어
“나의 재능을 발휘하고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창조활동”(102쪽)입니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존감을 느끼고,
남에게 인정받으면서 성취할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자기다움을 드러내며 내가 누구인지를
실존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나은 보람을 느끼기 위해
뭔가에 탐닉하고 경험을 축적할 때,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걸 알고 깨우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행복감을 주는 게
바로 글쓰기라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글쓰기를 배운다는 건 저자에 따르면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법과 기교를 배우는 기술이라기보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를 드러내고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진행형입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강원국 작가가 하는 습관을 넘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나만의 리추얼과 루틴을 개발할 때
비로소 이 책은 독자에게 또 다른 저자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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