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그가 온전히(?) 귀국하고 내놓은 책이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다. 악역? 그가 맡은 악역은 어떤 역할인가? 그는 말한다. 프랑스사회라는 거울로 한국사회를 봐야 하는 것. 그리고 23년 전, 그 과거의 기억과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봐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맡겨진 악역이라고.왜 그것이 악역인가? 그의 책들(『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도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이 모두 프랑스사회라는 거울로 한국사회를 비추고 있다. 이 점이 한국사람들에게 때로 반감을 사거나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프랑스사회가 나에게 고마움과 부러움의 대상은 될지언정 비판 대상이 되지 않는 까닭은 우선 그것이 남들의 사회이기 때문(18)'이라고 말이다. 그는 프랑스사회라는 거울로 우리자신을,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과거의 기억과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보고 있는가? 별로 달라지는 않은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 '인간적 가치와 올바른 가치관은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에 별 영향을 주지 않(274)'음에 대해 인간적 가치를 끌어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수고를 기꺼이 하고자 함이리라. 프랑스사회라는 거울, 그리고 과거를 들여다보는 그의 거울은 한국사회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담고 있다.

그의 글은 언제나 한결같다. 한결같음이 미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함이 되기도 한다. 그의 글에 대한 지루함? 특히 조중동, 조선일보 문제­결국 이 문제는 우리사회의 변화와 진보에 관한 것이지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아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알아서, 이제 식상하기까지 한 그 조중동이 말이다. 나 역시 조중동 문제에 이젠 식상함과 짜증스러움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처럼 그 문제를 '이제' 파악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짜증과 식상함'만'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르는 채 남아 있다. 그는 바로 이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해준다.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면서 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타성은 '참여하지 않으면서 비판, 평가를 즐기는 타성'과 만난다. 스스로 정당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정치현상을 비판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255)'는 그의 말은 옳다. 나를 규정하지 않으며, 세상은 원래 그런 것으로 쉽게 단정하거나, 애써 체념해 버린다. 의식은 바뀌었을지 모르나, 몸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몸을 던지지 않고, 머리로만 판단하고 비판하는 셈이다.
그의 말처럼, 주장처럼 사회변화와 진보에 대한 모색은 당연히 '자신의 변화' 즉 '자신의 성숙'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덫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선 자기성찰이 일상적으로 필요(278)'하며,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우리의 그러한 학습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그러한 학습과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꺼이 악역을 맡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그들이 연대하기를, '연대를 사는 즐거움'을 진정 알게 되기를 바란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반성과 성찰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개선과 진보'에 동참하기를 노래하고 있다.그가 악역으로 부르는 노래는 우리사회를 밝히는 노래이며, '가장 아름다운 노래'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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