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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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으로서 책은 항상 손에 쥐고 살았다. 역사, 철학, 사회 분야의 책들이 온통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략 5년 전인가... 어느 순간 과학을 잘 모른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교양과학 책들. 어떤 책부터 읽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 펴내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양장본에 두께도 있는, 그러나 왠지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흥미로운 제목들. 이거다 싶었다. 단단하고 알찬 책부터 시작해 단 번에 과학 교양을 쌓고야 말겠다는 자신감에 시리즈 1권부터 짚어 들었다.

 

그렇게 <<생명 최초의 30억 년>>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명의 진화사를 흥미로운 이론과 증거를 바탕으로 엮어내는 깊은 내공에서 비롯한 훌륭한 글솜씨는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렇게 과학책 읽기가 독서 편력에 추가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과학’의 매력을 한껏 전해준 ‘앤드루 H. 놀’이란 저자는 기억 속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 뒤로 그의 다른 책들이 번역되길 기다렸다. ‘이 정도 필력이면 번역될만한 책들이 꽤 있을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그간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게 원서가 2020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이 책 <<지구의 짧은 역사>>가 번역되었다.

 

판형이 작다. 300쪽이 넘지 않으니 분량도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지구의 기나긴 45억 년이라는 역사가 담겨 있다. 제목답게 1~8장까지 매 장의 제목에 ‘지구’가 들어간다. 그렇다고 지구의 특징이 하나씩 나열하는 구성이 아니다. 태양의 하나의 행성으로 생성된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지구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되, 지금의 지구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 지리적, 물리적, 생화학적, 진화적 특징을 뼈대로 1장 화학적 지구부터 8장 인간 지구에 이르기까지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전 책(<<생명 최초의 30억 년>>)과 비교해보면 보다 폭넓은 독자를 초점으로 삼은 듯하다. 지구 내부 구조, 판 구조론, 탄소 순환, 지질 연대, 지구 대산소화 사건, 여러 번의 대멸종 등의 중요한 과학의 발견과 이론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핵심을 짚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더 나아간 독서를 하도록 지적 자극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7장 격변의 지구’에서 잭 셉코스키의 해양생물 다양성의 시대별 변동을 중심으로 지구 역사상 여러 번 있었던 대멸종의 사례를 살피는 것이 가장 흥미로워, 참고 문헌 목록 중 번역되어 있는 마이클 벤턴의 <<대멸종>> (이 책도 위에서 언급한 오파비니아 시리즈 중 한 권이다)을 읽을 작정이다.

 

저자인 앤드루 H. 놀은 역시 대가답게 대단한 솜씨로 지구 역사의 큰 뼈대를 그리면서도 핵심을 빠뜨리지 않는다. 지금도 발견되는 과거에 형성된 ‘철광층’은 산소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가 지구가 탄생한지 20억년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약 24억 년 전임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현재 산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명의 시작 또한 그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라는 종은 이러한 지구 대산소화 사건 이후 이어져 온 생명 진화의 한 사례일 뿐임을 알게 된다.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번성은 백악기 운석 충돌에 의한 대멸종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1~7장까지 기나긴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훑은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인간이 등장한다. 그래서 ‘8장 인간 지구’의 메시지는 더욱 인상적이다. ‘40억 년에 걸친 물리적 및 생물학적 유산 위에 서 있는’(267p) 지구라는 세계가 인간에 의해 심각하게 바뀌고 있음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장구한 지구 역사의 끄트머리에 진화한, 길어봐야 700만년 전부터 시작된 호미닌(사람족) 중 한 종에 의한 인위적 탄소 순환의 잘못된 되먹임은 이전 대멸종의 연결고리이자 ‘죽음의 3인조’인 ‘지구 온난화, 해앙 산성화, 산소 고갈’을 불러올 수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의 시급함을 설명하는 이러한 지구사적, 자연사적 호소는 매우 묵직하게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행동해야 함을 촉구한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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